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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지뢰 캐내며 황무지를 옥토로 일궜는데 갑자기 떠나라니"

송고시간2020-07-0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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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유정리 농민들 40년간 농사짓던 땅 졸지에 빼앗길 처지

농민 "장기 임대 또는 수의계약" vs 농어촌공사 "규정 없어 어려워"

철원 유정리 농지 가리키는 농민
철원 유정리 농지 가리키는 농민

[촬영 양지웅]

(철원=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저 멀리 전봇대 보이지? 저기부터 이곳 비닐하우스 너머까지 다 야산이었어. 40년 전에 농민들이 돈과 땀을 바쳐서 옥토로 일궈놓은 것이지."

9일 오전 강원 철원군 민통선 마을인 유정리에서 만난 농민 김경묵(69)씨는 손으로 넓은 농지를 가리켰다.

김씨의 설명만으로는 드넓은 논이 산이었을 것이라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철책과 맞닿은 드넓은 평야에는 오대벼가 뙤약볕을 쬐며 푸르름을 더하고 있었다.

기자가 "정말 산이었냐"고 되묻자 김씨는 "내가 1975년도에 여기 6사단에서 소 관리인으로 근무했다"며 "야산은 공동묘지였고 인근 풀숲에 소 먹일 꼴을 베러 갔다가 군인들로부터 '지뢰밭에 들어가 죽을 작정이냐'고 호되게 질책받았다"고 회고했다.

식량 증산이 국가안보만큼 중요시되던 1980년, 당시 여당인 민정당과 지역 영세 농민들은 당시 무적지 임야인 산40번지 일원을 개간하기로 계획하고 이민섭 국회의원과 유재수 군수와 함께 육군을 설득해 6사단으로부터 개간 동의를 얻었다.

철원 유정리 농민들
철원 유정리 농민들

[촬영 양지웅]

이에 농민들은 1년 동안 개간 작업을 거쳐 이듬해 첫 농사를 짓게 됐다. 하지만 개간지에서의 농사는 쉽지 않았다.

쟁기를 끌다가 '터걱' 소리에 돌아보면 논바닥에서 관뚜껑이 걸려 올라왔다. 농사 중 인골이 나오면 두 번 절을 하고 따로 모셨다. 지뢰도 수두룩하게 나왔다.

황무지였던 땅은 힘이 약해 아무리 비료를 붓더라도 벼가 웃자라지 못했다.

쌀을 제법 거두기까지는 5년가량 걸렸다.

갖은 고생으로 황무지를 옥토로 일궈낸 농민들은 40년 만에 땅을 뺏길 처지에 놓였다.

이들은 한국농어촌공사로부터 매년 임대료를 내고 농사를 지어왔는데, 공사가 지난 5월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올해를 끝으로 토지를 공개 매각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해당 농지는 6만7천여㎡ 규모로 20필지다. 13개 농가가 벼농사를 짓고 있다.

유정리 농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농민 김학진(62)씨는 "공문도 아니고 덜렁 전화 한 통으로 이제 땅을 가져가겠다는 얘기를 듣고 손이 떨려 농사일을 하지 못했다"며 "이는 농민의 고생을 전부 무시하는 처사"하고 하소연했다.

이어 "전기도 안 들어오는 땅에 전봇대를 세우고, 인근 농가의 거센 항의를 들어가며 멀리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와 농사지을 땅으로 만든 농민들의 노고는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 농민은 "사기꾼들이 위조서류를 만들어 이 땅을 등기하려 할 때도 농민들은 고증 노력을 거쳐 신청을 기각시키며 이 땅을 지켜냈다"며 "현재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농어촌공사는 무슨 노력을 했냐"고 말했다.

농민들은 땅을 일구고 지켜온 자신들의 노고를 인정해 공개 매각이 아닌 장기 임대 또는 수의매각을 공사에 요구하고 있다.

철원 유정리 개간 농지
철원 유정리 개간 농지

[촬영 양지웅]

이에 농어촌공사는 농민들의 요구를 당장에 모두 들어주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현재 유정리 농지 매각은 검토 중이며 확정한 사항은 아니다"며 "안정적인 용수 공급과 시설물 유지 관리를 위해서는 일부 자산을 매각해 재원으로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의매각 요구에는 "공개경쟁 입찰이 원칙이며 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 등 규정에 따라 수의매각이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농민 사정을 모르지 않지만, 최초 농지 개간에 기여한 이들이 현재까지 해당 토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지에 대한 사실 확인도 어렵다"며 "농민들이 제출한 서류를 검토해 토지 매각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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