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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반갑도다, 훈민정음 원본의 나타남이여!"

송고시간2020-07-1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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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ㄱ'부터 차례로 자음의 발음을 설명한 대목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ㄱ'부터 차례로 자음의 발음을 설명한 대목이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훈민정음 반포 후로 500년 동안의 실록에 훈민정음 간행 기록이 없고, 최세진·신경준·유희 같은 한글학자들도 그 원본을 보았다는 기록도 도무지 없다.…진정한 원본의 나타나기를 고대함이 간절하더니, 천만뜻밖에 영남 안동에서 이런 진본이 발견되었음은 참으로 하늘이 이 글의 운을 돌보자고 복 주신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 반갑도다, 훈민정음 원본의 나타남이여!…여태껏 도무지 형체도 없고 말도 없던 훈민정음의 원본이 그 정연한 체제로써 나타났음은 한국 최대의 진서임은 물론이요, 또 그 해례로 말미암아 종래 정음학의 여러 가지 의혹의 구름안개를 헤치어 줌은 우리 심정의 둘도 없는 시원스러운 일이요, 과학 정신의 최대의 만족이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가 훈민정음 원본의 발견을 두고 감격해 자신의 저서 '한글갈'(1940년)에 쓴 글이다. 조선일보는 1940년 7월 30일 자에 "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 원본이 494년 만에 경북 어떤 고가에서 발견돼 시내 모 씨(전형필)의 소유로 돌아갔다"는 기사를 싣고 이날부터 5회에 걸쳐 책 내용의 일부를 번역해 소개했다.

훈민정음 원본(해례본)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실은 1940년 7월 30일 자 조선일보 지면. 국어학자 방종현과 홍기문은 이날부터 5회에 걸쳐 훈민정음 해례본 해설 기사를 연재했다.

훈민정음 원본(해례본)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실은 1940년 7월 30일 자 조선일보 지면. 국어학자 방종현과 홍기문은 이날부터 5회에 걸쳐 훈민정음 해례본 해설 기사를 연재했다.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일컫는 훈민정음 원본은 세종이 훈민정음(한글)을 지은 취지를 밝힌 서문, 세종이 간략하게 문자 운용 원리를 설명한 예의(例義),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활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해례(解例), 정인지가 쓴 후서로 구성됐다.

80년 전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글 창제 원리를 알지 못했다. "國之語音 異乎中國…"으로 시작되는 한문 서문을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란 우리말로 옮긴 언해본(諺解本) 일부만 전해왔을 뿐이다.

2018년 4월 9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세종 탄신 621돌 및 즉위 600주년 특별전 '소리×글자:한글 디자인'에서 김은재 학예사가 한글 창제 원리를 보여주는 그림을 배경으로 '한글 조합 체험판'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4월 9일 서울 용산구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세종 탄신 621돌 및 즉위 600주년 특별전 '소리×글자:한글 디자인'에서 김은재 학예사가 한글 창제 원리를 보여주는 그림을 배경으로 '한글 조합 체험판'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다 보니 세종이 창살 모양을 보고 만들었다거나 고대 문자를 본떴다는 등의 각종 억측이 난무했다. 해례본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음과 모음은 각각 발성기관과 천·지·인 삼재(三才)의 모양을 따서 만들고 음양오행의 이치를 응용해 음절을 구성하도록 한 과학적이고도 철학이 담긴 문자임이 입증된 것이다.

한글날도 바뀌었다. 1926년 조선어연구회는 1446년 9월 훈민정음을 반포했다는 세종실록 기록을 토대로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고 그해 양력 11월 4일 한글 반포 48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1934년부터는 1446년 9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28일을 한글날로 기념하다가 1945년 광복 이후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후서에 적힌 '9월 상한(上澣)'이란 구절을 근거로 9월 상순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을 한글날로 지정했다. 북한은 1443년 12월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기록에 따라 12월의 양력에 해당하는 1월의 중간인 1월 15일을 조선글날로 기념한다.

거금을 들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입해 소장해온 간송 전형필. [연합뉴스 자료사진]

거금을 들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구입해 소장해온 간송 전형필. [연합뉴스 자료사진]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한 이는 국문학자 김태준의 제자인 이용준이었다. 그는 처가인 경북 안동의 광산 김씨 종택 긍구당 서고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스승에게 알렸다. 김태준은 제자와 함께 안동에 내려가 확인한 뒤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에게 구매 의사를 타진했다. 간송은 곧바로 은행으로 달려가 1만1천 원을 찾아 책값 1만원에다 수고비 1천원까지 얹어주었다. 당시 서울의 기와집 10채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고 오늘날 물가로 환산하면 3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간송은 광복을 맞을 때까지 해례본의 존재를 철저히 감췄다.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국어학자들을 탄압하던 일제가 어떤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6·25가 터져 피란할 때도 이 책을 가장 먼저 챙겼을 뿐 아니라 배게 밑에 두고 잠을 잘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1946년에는 조선어학회(한글학회) 간부들을 초대해 영인본을 만들도록 허락했다. 현재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어 간송본이라고 불린다.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됐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2019년 10월 9일 고교생들이 경북 상주시의 배익기 씨를 만나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국가 반환을 촉구하는 서명과 손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년 10월 9일 고교생들이 경북 상주시의 배익기 씨를 만나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국가 반환을 촉구하는 서명과 손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08년 7월에는 간송본과 똑같은 진본이 경북 상주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이 알려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고서 수집가 배익기 씨가 집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며 안동MBC에 제보한 것이다. 한 달 뒤 골동품상 조 모 씨(2012년 사망)가 "이는 경북 안동시 광흥사 나한상 안에 들어 있던 복장유물(腹藏遺物)인데, 1999년 문화재 도굴범이 내게 팔아넘긴 것을 배 씨가 훔쳐 갔다"고 주장해 소유권 다툼이 벌어졌다. 배 씨는 상주본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지금까지 행방은 물론 존재의 유무에 관해서도 입을 굳게 닫고 있다.

시민단체 우리문화재지킴이와 문화재자리찾기가 2015년 10월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대한민국 국보 1호 국민 선호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64.2%는 숭례문(20.0%) 대신 훈민정음을 꼽았다. 특허청이 2017년 SNS(사회적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가장 많은 33.2%가 '우리나라를 빛낸 발명품'으로 거북선, 금속활자, 온돌 등을 제치고 훈민정음을 첫손에 꼽았다.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지수가 손톱에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을 새긴 네일아트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지수 인스타그램 캡처]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지수가 손톱에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을 새긴 네일아트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지수 인스타그램 캡처]

한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사람·시기·방법이 밝혀져 있고 가장 우수한 문자로 평가받고 있다.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울 뿐 아니라 스마트폰 문자 입력에서 보여주듯이 IT(정보기술)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그 가치가 빛을 발하고 있다.

이용준·김태준과 간송이 아니었다면 훈민정음 해례본이 불쏘시개나 벽지로 쓰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일 그랬다면 한글 창제 원리를 밝혀내지 못해 한글의 가치를 온전하게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발견 80주년을 맞아 세종대왕의 애민·자주·실용 정신과 시대를 뛰어넘는 혜안을 되새기고 간송의 문화재 사랑에도 경의를 표한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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