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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강사·음악가·파일럿·비행사CEO' 화려한 이력의 재미동포

송고시간2020-07-1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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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비행회사 설립해 아프리카 아동 돕는 이광진 '플라이 하이' 대표

미국 애리조나에 비행회사 '플라이 하이' 대표 이광진
미국 애리조나에 비행회사 '플라이 하이' 대표 이광진

[이광진 제공]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학력만이 전부가 아니더군요. 살면서 꿈이나 목표도 바뀔 수 있습니다. 뭐든 늦었을 때는 없는 거 같아요. 중요한 것은 생각에 머물지 않고 도전하는 겁니다."

베이시스트, 재즈 콘트라베이스·트럼펫 연주가, 영어학원 강사, 파일럿, 비행회사 CEO(최고경영자), 자선사업가….

미국 애리조나의 비행학교 교관이면서 비행회사 '플라이 하이'의 대표인 이광진(31) 씨의 이력서에는 다양한 경력이 기재돼 있다.

다재다능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 분야를 섭렵한 그는 14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화려한 경력처럼 보이지만 사실 실패를 그만큼 많이 겪었다는 증거"라며 "수많은 좌절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기에 후배들에게 지레짐작으로 포기하지 말고 직접 부딪쳐야 얻는 게 많다고 조언한다"고 이같이 말했다.

대구 출생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고뭉치였던 그는 부모가 정신 차리라고 보낸 서부 아프리카의 중서부 지역 라이베리아에서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수도 몬로비아에 있는 선교센터가 세운 학교에 다니며 그는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또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알았고 인내도 배웠다. 전기가 안 들어와 밤에는 촛불을 켜야 했고, 식수 부족에 풍토병·해충·더위와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내전이 심해져 1년 만에 귀국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베이스기타를 배워 대구예술대에 합격했다. 뒤늦게 배워 동기 중에 가장 실력이 뒤처졌 고민하던 그는 휴학 후 콘트라베이스로 전공을 바꿔 네덜란드의 왕립음악학교인 '프린스 클라우스 콘서바토리움'에 지원해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이 씨는 "실기면접이 끝난 뒤에야 입시정보를 알았지만 1년 뒤를 기다리지 않고 학장에게 기회를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뜻밖에도 규정에 없는 영상 심사를 해준 덕택에 입학할 수 있었다"며 "그때의 경험 덕에 뭐든 늦었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생활비 등 부족한 비용은 저축한 돈으로 충당했다.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당구장·배달 알바 등 닥치는 대로 하면서 모아둔 덕분이었다.

어렵게 얻는 유학 기회지만 그는 중도에 방향을 바꿨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밴드를 뒷받침하는 콘트라베이스보다 앞에서 이끌어가는 솔리스트 악기인 트럼펫이 더 끌려 전공을 바꾸려고 휴학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다시 준비해 군악대로 입대해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했다.

제대 후 대구예술대에 복학해 2학년을 마친 뒤 다시 계명대학교 경영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이때 결혼을 하게 되면서 연주자로서의 꿈을 접고 사업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라이베리아 초등학교 후원하는 이광진 대표
라이베리아 초등학교 후원하는 이광진 대표

이광진 '플라이 하이' 대표는 2018년부터 라이베리아 북쪽 포야지역의 오지마을에 자리한 현지 학교를 후원하고 있다. 학교 건립을 도운 이 대표에게 감사의 글을 적은 현수막을 들고 촬영한 학생들. [이광진 제공]

라이베리아와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며 영어로 고생을 해봤기에 어떻게 하면 빨리 영어를 습득할 수 있는지 가르칠 자신이 있었던 그는 학원강사와 과외를 하면서 영어학원을 준비 하던 중 재미동포 2세인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25살에 결혼한 그는 부인이 첫째를 임신한 2015년 처가가 있는 미국 애리조나의 주도 피닉스로 건너갔다.

지금껏 배운 실력이 별 쓸모없는 상황에서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애리조나는 날씨가 건조하고 하늘이 맑아 비행학교가 많았고 한국인 학생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결심해 2015년 1월 '웨스트 윈드'라는 비행학교에 입학했다.

8만∼9만달러(1억원 내외)가 드는 비싼 학비를 대느라 고생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한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 수업과 과외였다. 시작부터 학생이 몰렸고 맞춤형 수업이라는 입소문도 퍼져 학비를 벌 수 있었다.

학비가 저렴한 '플라이 굿이어'로 옮겨 모든 과정을 마쳤고 2018년 1월에 파일럿 자격을 취득했다. 내친김에 좀 더 어렵다는 비행교관 자격에도 도전해 합격했다.

곧바로 '플라이 굿이어'의 교관으로 취업한 그는 샐러리맨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를 차렸다.

이 씨는 "항공사 파일럿이 되려면 미연방항공청(FAA)에서 발급하는 자가용 비행 면장(PPL), 계기 면장(IR), 상업비행 면장(CPL), 다발프로펠러 비행 면장(MEL) 등 4단계 자격을 모두 취득해야 한다"며 "한국인 학생들이 영어 실력 때문에 필기나 실기보다 2시간 넘는 구술 면접을 어려워하는 것에 착안해 '플라이 하이'를 차리게 됐다"고 소개했다.

'플라이 하이'는 한국인 학생을 위해 기숙사 시설을 갖추고 영어 과외도 병행해 학교 적응을 돕는다. 교습용 비행기도 1대 보유해 비행 경험도 쌓게 한다.

그의 회사는 '플라이 굿이어'와 파트너십을 하고 한국인 입학을 주선하고 학생 관리까지 한다. 그는 '플라이 굿이어'의 교관이면서 총괄 매니저이기도 하다.

이 씨는 "처음 사업을 제안했을 때 선례가 없음에도 미국인 대표가 한번 해보자고 받아들였다"며 "아이디어와 실행력보다 중요한 게 먼저 문을 두드리는 거란 걸 또 한 번 실감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사업수완 덕분에 '플라이 굿이어'는 한국인 학생이 급속히 증가해 비행기도 2대에서 15대로 늘었다. 졸업한 한국인 파일럿이 아시아나, 제주항공 등 한국 항공사에 10여명 취업하는 성과도 냈다.

5천달러 들고 미국에 건너온 그는 5년 뒤 번듯한 직업과 회사를 가졌고 집도 사고 둘째 아이도 낳았다.

이광진 대표 경험을 담은 '플라이 하이'
이광진 대표 경험을 담은 '플라이 하이'

이광진 대표는 라이베리아 유학에서부터 미국 파일럿이 되기까지 좌절과 성공이야기를 담은 '플라이 하이'를 최근 출간했다. [이광진 제공]

그는 비행교관이 된 이래로 3년째 라이베리아의 초등학교를 후원하고 있다. 적은 금액이지만 운영비를 지원하거나 학용품·교육용 기자재 등을 꾸준히 보낸다.

이 씨는 파일럿 자격 취득 전 과정을 교육하는 굴지의 비행학교를 세우려는 목표 못지않게 다른 꿈도 꾼다.

라이베리아에 제대로 된 학교를 세우는 일이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라이베리아에서 만난 또래 아이들이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들의 자립을 돕겠다고 맹세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중도에 접어야 했던 학업의 꿈도 다시 도전해 지난해 서울 디지털 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연애·결혼·출산·집·경력을 포기해 '오포세대'로 불리는 한국 청년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전하려고 자신의 경험을 담은 '플라이 하이'라는 책도 얼마 전 출간했다.

그는 성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믿기에 바쁜 일정을 쪼개 강연 요청에 꾸준히 응하고 있다. 이 씨는 "아프리카를 돕는 일에도 비행 조종간을 잡듯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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