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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한센인·노인에 40년 이발 봉사한 김태식씨

송고시간2020-07-1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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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끊겨도 봉사 계속…동료 이발사 10여명 봉사팀 이끌어

한센인 3만여명 머리 다듬어…색소폰 배워 멋진 음악도 연주

김태식씨
김태식씨

[촬영 한지은]

(산청=연합뉴스) 한지은 기자 = "해가 저물면 여기로 오세요. 머리 잘라드릴게. 끼니도 해결하고 가요"

1973년 경남 산청군 김해이용원을 개업한 김태식(73) 씨는 당시 이용원 근처를 맴도는 한센병 환자를 외면할 수 없어 이렇게 말했다고 18일 회상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던 시기, 이들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은 커녕 머리 한번 다듬기도 힘들었다.

그때부터 김씨는 늦은 밤 커튼으로 내부를 가린 뒤 한센인의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얼마 가지 않아 밤마다 한센인이 김씨의 이용원을 드나든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용원을 찾는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기고 과장된 소문이 돌면서 김씨는 매장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래도 봉사를 멈출 순 없었다. 애초에 그만둘 생각도 없었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그만하자'는 생각은 안 했어요"

김씨가 본격적으로 한센인 공동체 시설인 성심원을 찾은 것은 1993년이다.

휴일이면 김씨는 그곳을 찾아 가위질하고 한센인의 말벗이 됐다.

한센인의 머리를 다듬으며 묵은 상처를 듣고 마음을 나누는 일은 김씨에게도 큰 위로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500명에 가까운 한센인의 머리를 혼자서 정리하는 일은 버거웠다.

찾아갈 때마다 열심히 가위질했지만, 손이 부족했다.

온종일 가위질을 해도 대기 줄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한계를 느끼고 동료 이발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1998년 당시 한국이용사회 산청군지부 지회장을 맡고 있던 김씨는 긴 설득 끝에 10여명가량 봉사팀을 꾸렸다.

김씨를 중심으로 한 미용 봉사팀은 지금까지 3만명이 넘는 한센인의 머리를 다듬었다.

요양원에서 미용 봉사하는 김태식씨
요양원에서 미용 봉사하는 김태식씨

[김태식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씨는 한센인뿐만 아니라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이발 가방을 들고 어디든 찾았다.

그는 여전히 장애인 시설과 요양 시설, 복지회관 등을 찾아 따뜻한 손길을 나누고 있다.

거기다 미용가위를 들지 않을 때면 부지런히 움직여 동네에 위험한 일은 없는지 둘러봤다.

2004년부터 3년간은 범죄예방 위원으로 활동하며 청소년 선도에 앞장서고 야간순찰을 하기도 했다.

남들 눈에 띄려고 봉사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세상이 먼저 그를 알아봤다.

김씨는 2012년 국민훈장 동백장과 2017년 아산사회복지재단 자원봉사 대상을 받았다.

이렇게 주어진 시상금은 다시 이웃에게 돌아갔다.

김씨는 시상금으로 가전제품을 사 성심원과 복지시설 등에 기탁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생필품을 선물했다.

몇 해 전부터 김씨는 미용 가방과 함께 색소폰을 챙긴다.

한센인, 노인 등에게 멋진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서다.

연주를 듣고 기뻐하는 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한 곡 한 곡을 익힐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고 한다.

"나누면 나눌수록 마음이 채워지는 걸 느껴요. 힘닿는 데까지 봉사하고 싶어요. 머리도 다듬어주고, 음악도 들려주고, 말벗도 되면서요"

김태식씨
김태식씨

[촬영 한지은]

contact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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