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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훈의 골프확대경] 생애 최고 샷이 보기 된 람, 논란 속 세계 1위

송고시간2020-07-2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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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축하받는 람.
아내에게 축하받는 람.

[AF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 최종 라운드가 벌어진 20일(한국시간) 욘 람(스페인)은 천당과 지옥을 몇번이나 오르내렸다.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그는 5번(파5), 7번 홀(파5)에서 버디를 잡으며 순항했다.

공동 2위로 시작한 라이언 파머(미국)가 8번 홀까지 2타를 잃어 람은 무려 8타차 선두로 내달렸다.

파머와 같이 공동 2위로 출발한 토니 피나우(미국)는 8번 홀까지 6타를 까먹어 아예 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다.

경기는 일찌감치 람의 우승으로 끝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람이 10번 홀(파4) 보기, 11번 홀(파5) 더블보기로 순식간에 3타를 날렸다.

파머가 12번 홀(파3)에서 버디를 잡아내자 4타차로 간격이 줄어들었다.

14번 홀(파4)에서 람이 또 보기를 적어냈다.

3개 홀을 남기고 3타차가 되자 느긋하던 대회 관계자들이 바빠졌다. 연장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흐름은 람에게 불리했다. 쉬운 홀에서 계속 타수를 잃었고 남은 3개 홀은 타수를 줄이기는커녕 지키기도 쉽지 않아서다.

16번 홀(파3)에서 람의 티샷이 그린을 넘어가 러프에 빠지자 우려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볼이 떨어진 러프가 깊고 질긴 데다 그린 뒤쪽에 꽂힌 핀이 그린이 시작되는 지점과 워낙 가까워 파를 지켜내기는 건 몹시 어려워 보였다. 자칫하면 더블보기도 나올 판이었다.

람이 살짝 띄워 보낸 볼은 핀 앞에 떨어져 몇 번 구르지 않고 거짓말처럼 컵 속으로 사라졌다.

파머마저 박수를 치며 축하할 만큼 멋진 샷이었다.

람은 "내 생애 최고의 쇼트게임 샷"이라고 자찬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좋은 샷을 몇 번 했지만 이번 샷은 정말 믿기지 않는다"면서 "딱 내가 원하던 샷"이라고 말했다.

TV 중계 화면에는 2012년 타이거 우즈(미국)가 같은 대회 같은 홀에서 기적 같은 칩샷 버디를 잡아내고 포효하는 장면이 나왔다. 당시 우즈는 그 칩샷 버디로 메모리얼 토너먼트 다섯번째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람은 4타차 리드를 잡았고, 더는 추격할 동력을 잃어버린 파머는 17번 홀(파4) 보기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람의 칩샷 버디만큼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위원회는 람이 16번 홀 칩샷을 하기 전에 웨지 헤드로 볼 뒤쪽 잔디를 여러 번 누르는 과정에서 볼이 움직였다고 확인했다.

이 장면은 TV 화면에도 또렷하게 잡혔다.

2벌타가 부과됐고, 람이 최종적으로 제출한 스코어카드에 16번 홀 성적은 버디가 아닌 보기였다.

람이 우승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5타차 우승이 아닌 3타차 우승으로 수정됐을 뿐이다.

람은 "공이 움직인 줄 몰랐다"면서 "그랬다면 벌타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논란의 여지가 남았다.

16번홀을 마치자마자 벌타를 부과했다면 경기 흐름이 바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람과 파머는 2타차라는 사실을 알고 17번 홀 티박스에 올랐을 것이다. 4타차라는 여유 속 17번 홀을 맞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람은 압박감이 더해졌을 것이고, 파머는 역전의 희망이 솟구쳤을 게 틀림없다.

16번홀에서 람의 칩샷 모습.
16번홀에서 람의 칩샷 모습.

[AP=연합뉴스]

2017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ANA인스퍼레이션 최종 라운드 때 선두를 달리던 렉시 톰프슨(미국)은 12번 홀을 마치고 경기위원한테 4벌타를 부과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3라운드 때 오소 플레이와 스코어카드 오기가 뒤늦게 확인돼 각각 2벌타씩을 더했다는 통보였다.

졸지에 선두에서 5위로 순위가 바뀌자 감정이 복받친 톰프슨은 눈물을 훔치며 경기를 이어갔지만 끝내 선두를 되찾지 못했다.

앞서 2016년 US오픈 최종 라운드에서는 더스틴 존슨(미국)은 5번 홀에서 어드레스를 하다 공이 움직인 것 같다고 자진 신고했다.

경기위원회는 "벌타를 줄 상황인지 검토하겠다"고만 했을 뿐 끝내 벌타 부과 여부를 알려주지 않았다.

존슨은 자신의 최종 스코어가 어떻게 될지 모른 채 경기를 해야 하는 상황을 이겨내고 우승했다.

그는 나중에 스코어 카드를 제출할 때에야 1벌타를 통보받았다.

경기 도중에 벌타 부과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가능한 한 신속하게 통보한다'는 원칙이 있을 뿐이다.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 김용준 경기위원은 "애매하면 벌타 부과 결정을 빨리 내리기 어렵다. 결정이 내려지면 바로 통보했겠지만 결정이 늦어지면 통보도 늦어진다"고 설명했다.

요란스러운 하루를 보냈지만 람은 이번 시즌 첫 번째자 통산 네 번째 우승에 활짝 웃었다.

그는 2017년부터 해마다 1승씩을 거뒀다.

20억원이 넘는 우승 상금보다 그를 더 기쁘게 한 것은 세계랭킹 1위에 오른다는 사실이었다.

스페인 선수가 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건 세베 바예스테로스에 이어 두 번째로 무려 31년 만이다.

창의적 골프로 명성이 높은 바예스테로스가 1989년 세계랭킹 1위에서 내려온 이후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가 가장 세계랭킹 1위에 근접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람은 "세베(바예스테로스)와 함께 스페인 골프 역사에 이름을 올리다니…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어머니, 할머니, 모든 가족에게 감사하고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감격을 숨기지 않았다.

kh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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