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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중고품 팔아 13년 기부…광주 대인시장 정안식·김선옥씨

송고시간2020-07-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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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4시간 기부 상점 '장깡' 운영…30여명에게 장학금 4천여만원 지원

기부를 위한 상점 대인시장 '장깡'
기부를 위한 상점 대인시장 '장깡'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지난 25일 오전 광주 대인시장 '장깡' 상점에 13년간 가게를 함께 일궈온 정안식·노순애씨 부부와 김선옥씨가 함께 모였다. 2020.7.26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올해 일흔다섯인 정안식씨의 하루는 오전 4시 30분부터 시작한다.

채소와 부식품 판매점을 하는 아내 노순애(65)씨가 도매시장에 다녀오는 사이 정씨는 광주 대인시장 상점 '장깡'의 문을 연다.

장깡은 장독대의 전라도 사투리로, 장독대 위에 투박하지만 오랜 수고가 담긴 장독이 놓여 있듯이 장깡에도 세월의 흔적이 담긴 물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정씨는 하루 14시간 넘게 장깡을 운영하며 자전거를 타고 가게 주변을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거나 물건을 손질하기를 쉬지 않는다.

네댓 평 남짓한 가게에는 그릇, 여성 옷, 중고 전자제품은 물론 오래된 문짝과 도자기, 재봉틀 등이 진열돼 무엇을 파는 곳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장깡은 정씨 부부와 맞은편 식당 주인 김선옥(56)씨 부부가 힘을 합쳐 2008년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30여년간 대인시장에서 터를 잡고 살아온 두 부부는 2000년대 들어 침체했던 전통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우리 애들을 키워낸 시장과 이웃들을 위해 무언가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기부만을 위한 가게인 장깡을 만들어 13년째 수익금을 기탁하고 있다.

정씨가 고물상이나 물건을 주겠다는 곳까지 찾아가 자전거로 실어오고, 판매는 정씨와 김씨가 번갈아 가며 했다.

잘 손질한 중고품은 버리기는 아까운 물건에서 누군가가 필요로 할지도 모르는 상품으로 재탄생한다.

옷과 신발 1천원을 비롯해 물건들을 헐값에 내놓기 때문에 큰 수익은 안 나지만 덕분에 꽤 많은 사람이 장깡을 찾는다.

정씨와 김씨는 2008년 9월 처음으로 수익금 109만5천200원을 털어 소외된 이웃에게 신발·양말·아동복 등을 전달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홀몸노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거나 상인들과 함께 담근 김치 수천 포기도 기부했다.

8년 전부터는 동사무소나 동네 통장, 학교 교사, 장애인협회 관계자 등에게 추천을 받아 3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이들은 중·고등학생에게는 30만∼40만원, 대학 가는 학생에게는 50만원가량을 지원하고 대학에도 100만원 안팎의 장학금을 기탁해왔다.

한 해에 적게는 3차례, 많게는 7차례씩 기부한 금액만도 4천만원을 향하고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닥친 데다가 시장 주변의 대형 아파트단지와 관공서 공사가 본격화하면서 정씨의 고민이 깊어졌다.

전통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60∼70%나 줄어 월 18만원의 상점 임대료를 내기 힘든 달이 더 많기 때문이다.

특히 정씨의 가게에는 장을 보러 온 손님보다는 관광객들이 많아 타격이 더 크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선뜻 헌 옷이나 쓸 만한 물건을 가져가라고 하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

13년간 중고품 판매하며 기부 실천한 정안식씨
13년간 중고품 판매하며 기부 실천한 정안식씨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지난 25일 오전 광주 대인시장 '장깡' 상점에서 정안식(75)씨가 지난 13년간의 기부 활동을 얘기하고 있다. 2020.7.26

정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올해는 아직 기부금을 전달 못 했다고 아쉬워하며 "올해 중에 해줘야 원칙이지"라는 말을 반복했다.

정씨에게는 기부가 생계만큼이나 필수이자 삶의 원칙이 된 듯했다.

부인 노씨는 "남편은 장사는 저 뒷전이다. 장사 안되는 걱정보다 기부 못 하는 걱정을 더 많이 한다"고 타박 아닌 타박을 하면서도 결국에는 함께 장학금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씨는 요즘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면 손님들이 다시 늘어날 것을 기대하며 쓸만한 물건을 찾아 직접 고물상이나 지인들의 가게를 돌아다닌다.

지름 35cm가 넘는 도자기와 80년이 넘은 재봉틀은 얼마 전 정씨가 발품을 팔아 사 온 비교적 고가의 상품이다.

정씨 부부와 김씨 부부는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들을 한두 명이라도 도와줄 수 있도록 경기가 회복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정씨는 "나도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고 때로는 물로 배를 채우며 학교에 다녔다"며 "마음껏 배우지 못하고 어렵게 살았지만 애들 셋을 다 키워놓고 나니 주변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시작한 게 벌써 13년째"라고 회고했다.

그는 "이따금 할아버지 어떻게 지내시냐고, 고맙다는 전화가 온다. 감사 인사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전화를 받을 때면 기분은 좋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기부 걱정을 하던 정씨는 "싸게 줄랑께 마스크 잘 쓰고 시장 와서 가져가시오. 한 명한테라도 장학금 줘야제"라며 유쾌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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