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톡톡] 아무튼 '여름 휴가철' 입니다.
송고시간2020-08-01 06:30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작가 한정원-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열심히 일했지만 아무 데도 마음 편하게 떠나지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창이었을 올림픽 열기에 흠뻑 젖어 들 수 있었다면 괜찮았을까요? 전염병으로 올림픽까지 연기될 거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당장에 코앞으로 다가온 여름 휴가 계획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을 일은 더더욱 상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모바일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의 여파로 국민 10명 중 6명은 올해 여름 휴가를 가지 않거나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캠핑, 차박, 호캉스, 홈캉스 등 휴가철 유통업계의 갖가지 낯선 유혹에도 쉽사리 허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습니다. 처음 맞는 코로나 시대의 여름휴가에 이대로 어리바리하게 대처하다가는 이번 여름휴가 정말 망치고야 말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 확신마저 현실이 될까 불안해집니다.
위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국외 여행을 따져보았을 때 국내로 여행을 떠난다는 응답자가 98.0%로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합니다. "올해 해외여행 가기는 글렀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합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이 최근 자가격리 조건 없이 한국인을 입국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여행 규제를 완화했지만, 귀국 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므로 일반 직장인들에겐 현실적으로 어려운 선택입니다. 누군가는 일 년을 버티고 난 후 단 한주의 휴가로 다음 일 년 일터에서의 생활을 버팁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이 보통 잔인한 일이 아닙니다. 고단했거나 갑갑했던 일상을 다시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늘 있던 여기가 아닌 낯선 여행지로의 일탈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크게 기대할 것이 없으니 출근을, 업무를, 야근을 쉽사리 놓아주지 못하고 나날이 뜨거워지기만 하는 여름에 몸도 마음도 힘에 부치기만 합니다.
제주도는 80년대 부모님 세대가 그랬듯 요즘 가장 핫한 신혼여행지입니다. 신혼여행에도 레트로 열풍이 분 걸까요? 아닙니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제주도 신혼여행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본의 아니게 신혼여행지도 요새 트렌드에 맞게 레트로 열풍을 타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 박 모(33) 씨의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입니다. 스페인이나 크로아티아에 가고 싶었다고 합니다. "일하면서 자유롭게 휴가를 낼 수 없었던 탓에 신혼여행에 대한 로망이 더더욱 컸는데 코로나19 사태가 금방 끝날 것 같지가 않아 국내로 가려고 한다"며 "오래 꿈꾸었던 것을 이루지 못해 아쉽고 슬프다"고 합니다.
아쉬워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뭘 할 계획이냐는 물음에는 잔뜩 기대를 내비칩니다. "부모님 세대 때를 재연하게 되는 것 같아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며 우선은 "나 잡아 봐라"를 외치며 바다를 뛰어다닐 거라고 합니다. 그리곤 성산 일출봉에서 함께 잘살아 보자는 기도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듣다 보니 '신혼여행지'에 대한 아쉬움은 사실 그다지 크지 않아 보였습니다.
"물 반 사람 반". 여름 휴가 시즌에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입니다. 해운대 해수욕장, 한강공원 수영장 등 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콩나물시루'를 연상케 할 만큼 인파가 몰립니다. 다만 올해는 기억에서만 꺼내 보아야 할 풍경입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올여름 한강공원 수영장과 물놀이장을 운영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시설 특성상 방역수칙 준수에 한계가 있어 집단감염이 우려되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합니다. 전국 최대 피서지인 해운대해수욕장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최대 3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강력한 조치가 시행됩니다. 전국 대형 해수욕장들이 속속 개장했지만, 발열 체크, 거리 두기, 출입명부작성부터 예약제 시행까지 코로나19는 수십년간 한결같이 낭만만 가득했던 여름 해변 풍경까지도 단숨에 바꾸어놓았습니다. 인파가 붐비는 피서지를 찾기 꺼리는 피서객들은 이름도 낯선 작은 해변, 주소도 알기 어려운 숨은 피서지를 찾아 나서며 저마다의 휴가에 '색다름'을 더합니다.
여행에 대한 아쉬움도 달래고 대리만족도 할 수 있는 '랜선 투어'도 새롭습니다. 화상회의 앱을 이용해 베테랑 가이드가 해외 관광지를 설명해주는 상품도 등장하고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락이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직장인 이 모(37) 씨는 매주 토요일마다 영국의 각 도시를 여행합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과거 여행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포스팅해 감상하며 친구들과 공유합니다. 방구석에서 하는 '추억여행'입니다. "'코로나 블루'로 마음이 피폐해지기 쉬운 요즘 과거를 되돌아보는 행위를 통해 기분전환도 하고 마음껏 여행 다닐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추억 여행의 효과가 있냐는 물음에는 괜스레 먹먹해지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지나고 나면 다 아름답더군요."
SNS, 넷플릭스도 없고 해외여행도 쉽지 않던 시절에서도 어쩌면 이번 여름휴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겠습니다.
최병길 기자가 촬영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제목의 사진입니다. 지난 2009년 경남 진해 시내 한 천막 가게를 운영하는 노부부가 모처럼 여름휴가를 맞아 고향 집에 놀러 온 손녀를 위해 가게에 멋진 간이 그네를 설치해 즐거운 시간을 갖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습니다. 이 그네는 천막 가게를 운영하는 할아버지가 심심해하는 손녀를 위해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직접 설치했으며 할머니는 손녀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행복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모르면 불행이 닥치는 순간 절망에 빠지게 된다."
한정원 작가는 '시와 산책'이라는 책에서 프랑스 사상가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 중 사랑에 관한 한 기록을 인용하며 행복에 관해 말합니다. 그리고는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라고 적었습니다.
2020년 여름. 당신의 가슴에는 어떤 노래가 남게 될까요?
pdj663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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