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3년 전 터진 둑 이번에 또 터져"…천안 병천천 주변 농민 분통
송고시간2020-08-04 14:57
"올 농사 모두 망쳤다" 비닐하우스 안 멜론·오이 진흙으로 뒤범벅
축사 안도 상태 심각…침수된 재래시장은 제 모습 찾아가
(천안=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3년 전 폭우에 터진 둑이 이번에도 또 터졌습니다. 이게 부실 공사가 아니고 뭐란 말입니까?"
4일 폭우가 휩쓸고 간 충남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병천천에서 만난 안이근(60·장산3리 이장) 씨는 울분을 쏟아냈다.
이번 폭우로 불어난 하천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이 일대 병천천 둑 3곳이 폭 30∼50m 넓이로 처참히 무너졌다.
둑 위 노면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어지럽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안씨도 병천천 주변 비닐하우스 20동에서 멜론을 재배하고 있다.
그는 "이달 30일이면 멜론을 출하할 수 있었는데, 물이 하우스 지붕까지 차올라 모두 못쓰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병천천 둑이 터지면서 수해를 입은 주민은 안씨뿐만이 아니다.
이 일대에서는 130여 농민이 비닐하우스에서 오이와 멜론을 재배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지붕 꼭대기까지 전날 차오른 물의 높이를 짐작하게 하듯 붉은 황토색을 띠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잎사귀마다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오이와 멜론이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비닐하우스 17동에서 오이 농사를 짓는 김모(51) 씨는 "한창 수확 중인데 이제는 상품 가치가 없어 폐기해야 한다"며 울먹였다.
수년 동안 애써 키운 인삼밭에 토사가 쌓여 하루아침에 못쓰게 된 곳도 눈에 들어왔다.
전날 마른 볏짚을 흰 비닐로 돌돌 말아놓은 소먹이가 둥둥 떠다녔던 농장 안의 외양간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축사마다 전날 밀려든 물이 완전히 빠지지 않아 고여 있었고, 진흙탕 안에 서 있거나 누워있는 어린 소는 힘이 겨워 보였다.
반면, 전날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어른 무릎 높이까지 물이 들어찼던 재래시장인 천안중앙시장은 외견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상인들이 이른 아침부터 나와 물건을 진열하는 등 다시 힘을 내는 모습이었다.
오는 5일까지 충남 북부에 100∼300㎜의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상인회장의 요청으로 시청 직원이 물이 들어차지 않도록 시장 입구 쪽에 모래주머니를 쌓았다.
물이 들어차 통행이 두절됐던 천안 시내 지하차도는 모두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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