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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정성태 "강제이주 후 향수 간절한 고려인 삶 기록"

송고시간2020-08-06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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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등 CIS서 1만여 컷 촬영, "아픈 역사 치유 위해 기억해야"

고려인 삶 기록하는 사진작가 정성태
고려인 삶 기록하는 사진작가 정성태

6년째 고려인의 삶을 촬영해온 사진작가 정성태 씨는 서울 중구 KF갤러리에서 열린 '한-우크라이나 현대 사진전'에 참여했다. [정성태 제공]

(서울=연합뉴스) = "1937년 강제이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 내팽개쳐진 고려인은 대를 이어 모국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채 살고 있습니다. 타향살이의 고통과 부유하는 삶을 사진에 담아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사진작가 정성태(50) 씨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렌즈로 담는데 몰두하고 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의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사진 작업에서 시작해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피해지역으로 돌아와 사는 주민, 중앙아시아 곳곳으로 흩어져 사는 고려인을 촬영하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서울 중구 KF갤러리서 개최 중인 '한-우크라이나 현대 사진전'에 한국 작가로 참여한 그는 5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고려인은 우리 아픈 역사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라서 잊히지 않도록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즈베크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정 알렉세이 가족
우즈베크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정 알렉세이 가족

정성태 작가가 촬영한 정 알렉세이 가족. 정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우크라이나 드니프로로 이주해 살고 있다. 우리말을 잊지 않고 있는 그는 모국 방문이 꿈이다. [정성태 제공]

고려인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3년 체르노빌에 사는 주민을 촬영하고자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을 때 고려인 통역사를 만나면서부터다.

정 씨는 "체르노빌 주민 모두가 고향을 등졌지만 70대 이상의 150여명이 귀향해 살고 있다. 이들을 자발적 정착민이라고 해서 '샤모설리'라고 부른다"며 "방사선 피폭 위험이 여전하지만 죽더라도 고향에 묻히고 싶은 간절함이 고려인과 닮은 구석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샤모설리'를 촬영하러 우크라이나를 오가며 고려인을 만났고 이산의 아픔과 귀향의 꿈을 저버리지 못한 모습에서 가슴이 미어져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촬영을 동기를 말했다.

이후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곳곳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에서 고려인 가족을 카메라에 담아 1만여 컷을 찍었다.

정 작가는 첫 작업으로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최 갈리나 할머니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한다.

"강제이주를 겪었던 최 할머니를 촬영하는데 기다림에 지친 듯 표정 없는 얼굴로 먼 곳을 응시하는 눈동자에서 그리움, 덧없음, 회귀본능을 느꼈죠. 고려인 가족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듣는데 아픔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두 달 뒤 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늦기 전에 이분들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습니다."

그는 인물을 촬영하는 사진 작업은 관광지 기념촬영처럼 몇 분 만에 끝나는 것과 달리 끝없는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는 "한국 공관이나 현지 고려인협회의 협조를 받아 촬영에 동의를 얻고 고려인 가정을 방문하는데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며 "처음으로 모국에서 온 사람을 만난 반가움과 더불어 경계심·어색함도 있기에 시간을 들여 대화를 나누고 설문조사를 하면서 소수민족으로써 겪은 아픔 등이 드러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소개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는 고려인의 삶과 한국사의 굴곡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사진에 드러냈고, 몇번의 전시회를 통해 고려인의 삶을 국내에 소개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박 아뚜르 가족
우크라이나 고려인 박 아뚜르 가족

정성태 작가가 촬영한 박 아뚜르(41) 가족. 박 씨는 구소련 해체 후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박 씨는 작가와의 만남을 계기로 가족이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약속했다. [정성태 제공]

그가 매달리고 있는 주제는 '정주와 이주'다. 고려인은 1937년 강제 이주로 중앙아시아에서 살다가 구소련 해제 후 다시 러시아로 흩어지는 등 정주와 이주를 반복해와서다.

특히 인물사진을 찍을 때 거주 공간을 배경으로 삼는 이유에 대해 "삶의 상흔이 묻어있는 공간이라 이들이 보내온 세월과 한민족의 숨결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촬영을 위해 만난 이들과의 특별한 기억들이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소개했다.

2016년 촬영 후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난 강제이주 1세 김 피레르트 씨는 일본 패망 소식을 들었지만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모국에 가보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라고 털어놓았고, 키예프에 거주하는 70대 중반의 고 알라 씨는 유일하게 기억하는 한국어가 '한국'과 '고마워'였다.

키예프 근교에서 만난 김 젠나 씨는 조부모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리워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한 아나톨리도 같은 말을 했다. 만나는 이마다 모국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정 작가는 경일대에서 사진영상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쳤고 2006년 첫 전시를 시작으로 12회 개인전을 열었다.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년작가상, 2018년 대구사진비엔날레 우수 포트폴리오, 2019년 온빛사진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대구 동성시장문화예술공간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인과 샤모설리 작업을 하면서 그는 한국과 우크라이나를 잇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사진작가 모임인 '쿠다쿠카'를 설립해 양국서 전시 기획, 출판, 유라시아 소식지 발간 등을 하고 있다.

정 작가는 "사지 절단 환자가 겪는 환상통(phantom limb syndrome)을 치유하듯 고려인의 모습을 소개해 잊힌 우리 민족의 일부를 인식하도록 도울 것"이라며 "고려인의 현재뿐만 아니라 집단 농장 시절과 고려인 유적지 등 발자취를 좇아 기록하는 일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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