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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U 보험조사파일] '100억 보험금', 유무죄와 별개…"상식·합리에 달려"

송고시간2020-08-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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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해사건' 만 6년만에 파기환송심 선고

[※ 편집자 주 =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인원은 9만3천명, 적발 금액은 8천800억원입니다. 전체 보험사기는 이보다 몇 배 규모로 각 가정이 매년 수십만원씩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하는 실정입니다. 주요 보험사는 갈수록 용의주도해지는 보험사기에 대응하고자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SIU 보험조사 파일' 시리즈는 SIU가 조사 일선에서 파헤친 주목할 만한 사건을 소개합니다.]

'95억 보험금' 만삭 아내 살해 사건 현장검증
'95억 보험금' 만삭 아내 살해 사건 현장검증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오는 10일 오후 대전고등법원에서는 7년째 이어진 '보험금 95억원'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해 사건의 파기환송심 선고가 내려진다.

피고 이모씨(50)는 2014년 8월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 부근에서 갓길에 주차된 화물차를 일부러 들이받아 동승한 만삭 아내(당시 24세)를 죽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스무살이나 어린 캄보디아 출신 아내가 임신 7개월 상태에서 남편이 낸 사고로 숨진 참혹한 사건인 데다 남편 앞으로 95억원이나 되는 거액의 보험금이 걸려 있어 법원의 판단마다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사건이 일어나고 만 6년이 흘렀지만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1심 무죄 판결은 2심에서 유죄로 뒤집혔고, 2017년 5월 대법원은 다시 무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전법원청사
대전법원청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 남편이 살해한 정황…대법원 "동기입증·증거 미흡"

사건의 여러 정황은 남편 이씨를 범인으로 가리킨다.

사고 전 3개월간 경제 형편이 나빠진 상태에서도 수십억원을 주는 보험에 추가로 가입했고, 사고 직전 주행 형태(상향등 조정, 기어 변경, 핸들 조작, 브레이크 사용 추정)가 졸음운전으로 보이지 않으며, 아내의 혈흔에서 수면유도제가 검출됐다. 사건 후 피고와 가족의 행동도 불의의 사고로 아내와 뱃속의 2세를 잃은 사람이라기엔 어울리지 않았다.

사고 직후 이씨는 처음 도착한 견인차 기사에게 자신의 몸이 운전석에 끼었으니 빼달라고 요청했을 뿐 조수석에 아내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화물차 운전자가 동승자에 대해 수차례 물었을 때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또 아내가 사망한 지 몇시간 만에 화장장을 예약했고, 한국에 갈 것이니 화장을 미뤄달라는 캄보디아 유족의 요구도 거부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정황에도 보험금을 노리고 2세를 임신한 아내를 살해를 저지를 만한 급박하고 명백한 동기가 입증되지 않았고 고의 사고를 뒷받침하는 직접적 증거도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대전고법의 판결을 파기했다.

검찰이 대법원의 파기 사유를 뒤엎을 만한 논리나 추가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숱한 정황증거에도 이씨는 무죄 확정판결을 받게 된다.

'95억 보험금' 만삭 아내 살해 사건 현장검증
'95억 보험금' 만삭 아내 살해 사건 현장검증

[연합뉴스 자료사진]

◇ 보험사 통한 제보로 혐의 인지…"초동수사 기회 놓쳐"…

상고심 지적대로 수사기관은 초동수사 기회를 놓친 탓에 고의 사고를 뒷받침하는 직접적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사고 직후 경찰은 혐의점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며, 피고 이씨의 미심쩍은 태도를 보고 경찰에 의문을 호소할 만한 유족도 한국에 없었다.

이씨가 보험을 든 보험설계사 가운데 1명이 이씨와 유족의 태도를 수상히 여겨 보험사에 제보하고 SIU가 수사를 의뢰한 후에야 경찰이 살해 혐의점을 파악하게 됐다.

그러나 이미 피해자의 시신이 화장돼 체내 수면유도제 농도, 사망 원인·시점 등 결정적 증거를 제시할 수도 있는 부검 기회는 사라진 후였다.

김기용 손해보험협회 보험사기조사팀장은 "만약 사고 직후 경찰이 피해자의 보험 가입 여부를 조회할 수 있었다면 신속하게 범죄 수사로 전환해 더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팀장은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해 사건은 경찰이 변사자의 보험 가입 내역을 실시간으로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된 계기가 된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변사자 손해보험 계약정보 조회 시스템 구조도
변사자 손해보험 계약정보 조회 시스템 구조도

[손해보험협회 제공]

◇ 이씨, 초호화 변호인 선임…보험금 지급 청구소송도 제기

피고 이씨는 이홍훈 전 대법관 등 법무법인 화우 소속의 쟁쟁한 변호사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변호인들이 이씨가 받는 보험금의 30%를 성공보수로 받기로 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죽은 아내를 피보험자로 가입한 보험은 11개 보험사에 25건, 보험금은 원금만 95억원이다. 6년간 지연이자까지 합친 보험금은 100억원이 넘는다.

회사당 계약 보험금은 적게는 6천만원에서 많게는 32억원에 이른다.

이씨가 살해 혐의에 최종 무죄 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보험금 수령은 별개의 문제다.

앞서 이씨는 1심 무죄판결 후 2016년에 보험사들을 상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민사소송을 냈다. 화우는 이씨의 민사소송도 맡았다.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은 형사재판의 결론을 기다리며 2017년 3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이씨가 형사재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는다면 보험금 수령을 놓고 보험사들과 민사소송에서 다시 일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금청구서
보험금청구서

[연합뉴스TV 제공] ※ 기사 내용과 직접 관계 없음.

◇ 무죄 판결과 보험금 수령은 별개…다른 결론 날 수도

엄격한 증거주의를 따르는 형사재판에서 피고의 유죄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해도 같은 사건을 다투는 민사재판에서는 사실상 유죄 결론이 나기도 한다.

2012년 발생한 '의자매 독초 자살' 방조 사건이 바로 그런 사례다.

피고 오모씨는 의자매 장모씨를 사망 3주 전 고액의 종신보험에 가입시키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보험사기, 자살방조 등)로 기소됐으나 2014년 무죄 판결(서울고법)을 받았다.

민사법원(서울고법)은 그러나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오씨가 보험금을 부정 취득할 목적이 있었다고 '추인'하면서 장모씨가 사망 3주 전 가입한 종신보험 계약을 무효로 인정했다.

2017년 가석방심의위원회에서 진술하는 미식축구 스타 O.J. 심슨
2017년 가석방심의위원회에서 진술하는 미식축구 스타 O.J. 심슨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 풋볼스타 O.J. 심슨 전처 살해사건(1994년)에서도 심슨이 오랜 재판 끝에 형사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유족이 제기한 민사재판에서는 심슨이 사실상 유죄라고 판단, 거액의 보상명령을 내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형사재판에서 유죄 입증은 엄격한 증거가 요구되나, 민사재판에서 책임을 판단하는 요건은 그보다 약하므로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사재판은 제반 상황이나 상식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판단에 따라 결론을 내린다는 뜻이다.

보험업계는 10일 선고 후 대응 방향에 대한 질문에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계약 보험금이 30억원이 넘는 보험사의 관계자는 8일, "판결을 예단해 향후 대응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도 "형사재판이 무죄로 종결돼도 민사소송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타국 결혼생활 6년 만에 목숨을 잃은 20대 엄마와 뱃속 아기는 아직도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다.

tr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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