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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가"…영화 '69세'

송고시간2020-08-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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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69세'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이름 심효정. 69세. 여성. 이 세 개의 단어로 표현된 한 인물을 우리는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가.

영화 '69세'는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69세 효정(예수정 분)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다가 29세의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그는 동거 중인 동인(기주봉)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과 주변 사람들은 나이 차이를 이유로 효정의 말을 제대로 믿지 않고 심지어 치매 환자로 의심한다. 가해자는 '합의 하의 관계였다'고 주장하고 법원도 수차례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그러나 효정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69세'
'69세'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는 효정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면서 까만 화면에 소리로만 상황을 전달한다. 그리고선 수영하는 효정의 모습, 그의 몸을 비추는 장면으로 전환되면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고.

여성이자 노인인 효정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재단하고 규정하려 한다. '처녀같이 늘씬하다'라거나 '노인인데도 옷을 잘 입는다'라거나 하는 말들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뿐 아니라 영화 밖 사람들의 편견을 저격한다.

효정이 스스로 목소리를 냄으로써 한 사람의 주체성에는 나이나 성별이 아무 관련이 없으며 효정은 편견에 갇힌 타자가 아니라 인격과 존엄성을 가진 인간임을 역설한다. 젊은이보다 죽음에 가까워졌다고 해서 죽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당당히 살아있다는 것을 효정은 용기 내 보여준다.

'69세'
'69세'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과정에서 동거인인 동인이 중요한 위치에 놓인다. 그는 누구보다 효정을 돕고 싶어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효정에게 2차 가해를 가한다. 선의로 행동했을지라도 당사자에게는 원치 않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또 다른 가해가 될 수 있는 수사 과정도 고발한다. 강제성을 직접 입증해야 하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폭력에 효정은 고스란히 노출된다.

효정은 동인, 동인의 변호사 아들(김태훈), 담당 형사(김중기) 중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고 가해자에게 일격을 가하려 한다. 효정의 용기를 강조함과 동시에 효정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다. 관련 법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 안의 편견 때문임을 강조한다.

'69세'
'69세'

[엣나인필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효정이 69세인 것은 그 나이가 중년과 노인의 경계선이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은 임선애 감독의 의도가 들어있다.

과거에는 60대면 노인이라고 생각됐으나 최근에는 중년에 더 가깝게도 인식된다. 청년, 중년, 노년을 구분 짓는 나이에 관한 잣대는 다분히 자의적이며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40년 넘는 연기 내공의 배우 예수정이 품위 있으면서 단단한 내면을 가진 효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예수정은 임선애 감독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시나리오를 함께 발전시켰다고 한다.

임선애 감독은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다. 50여편이 넘는 영화의 스토리보드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2013년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칼럼을 읽은 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제24회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부문 KNN 관객상을 받았다.

오는 20일 개봉.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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