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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컷] "술에 취해 기억 안 나"…지긋지긋한 그들의 면죄부

송고시간2020-08-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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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Q4WorxklJ8

(서울=연합뉴스) 서울 강남 한복판.

30대 남성이 택시를 잡으려 서 있던 여성의 얼굴을 때린 뒤 달아났습니다.

그는 도주 중 길에서 마주친 다른 여성의 얼굴을 가격했고, 또 다른 3명의 여성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죠.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지난 10일 오전 강남서에 자진 출석한 이 남성은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고 진술했는데요.

"내 아들이 깡패인데 너 같은 X은 맞아야 한다"

지난달 21일에는 경남 사천에서 5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30대 여성을 무차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검거된 남성은 "술에 취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죠.

여성만 골라 때린 폭행범들의 일관된 진술에 "주취감형을 노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형법 제10조 제2항에 따르면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술이나 약물에 의해 심신미약 상태가 됐다고 판단되면 형이 감경될 수 있죠.

"주취 폭행 엄벌 법제화하라", "술 먹고 폭행하면 오히려 가중처벌해야 한다", "음주가 면죄부가 되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

누리꾼들은 "묻지마 폭행 사건에 주취감형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실제로 술이나 약물에 의해 심신미약 상태가 됐다고 판단하면 끔찍한 범죄도 형이 감경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오는 12월 출소를 앞둔 조두순.

2008년 8살 초등학생을 성폭행하고 다치게 한 그는 음주 상태였다는 이유로 징역 15년에서 12년으로 감형받았죠.

이 사건 이후 성폭력 특례법이 강화돼 음주 성범죄에는 감경 규정을 적용하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성범죄가 아닐 경우 심신미약으로 형을 감경할 여지가 컸는데요. 이 때문에 범죄자의 주취감형 문제는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2018년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20대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80여 차례 찔러 살해한 김성수.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중은 분노했고 "심신미약으로 감형받지 않게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최초로 10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는데요.

이에 국회는 2018년 12월 18일 형법 10조 2항을 필요적 감경에서 임의적 감경으로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법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경이 결정될 여지가 있어 "주취감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형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고 "음주나 약물로 인한 범죄는 오히려 가중처벌해야 할 정도로 중한 사항"이라며 "범죄에 대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 없이 상황에 따라 음주 감경이 이뤄지는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취감형 폐지는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 위배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책임주의란 책임이 없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형법의 원칙으로 심신미약을 범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태로 보는데요.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이 분명히 적용돼야 하기 때문에 심신미약 규정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반대한다"며 "다만 법원이 온정주의가 아닌 죄를 엄정하게 해석해 적절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끊임없이 비판 대상이 됐던 주취감형.

음주 여부와 상관없이 범죄자들을 죄에 맞게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박성은 기자 박서준 인턴기자 / 내레이션 송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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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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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p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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