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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in제주] 코로나19가 '일가친척 총출동' 제주 벌초 문화도 바꾼다

송고시간2020-09-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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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8월 초하루 전후해 문중묘 모둠벌초…도내 모든 학교서 벌초방학

지역 감염 확산 우려로 벌초 대행 서비스 예약 두배↑ '껑충'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벌초 해수과?"

제주 조상묘 벌초 행렬
제주 조상묘 벌초 행렬

[연합뉴스 자료사진]

무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하고 가을로 접어드는 이맘때 제주에서 가장 많이 하는 안부 인사는 '벌초 해수과?'(벌초했습니까)다.

제주는 청명, 한식, 추석 등 시기를 골라 벌초를 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1년에 한 번 음력 8월 초하루(올해 9월 17일)전후해 벌초를 끝낸다.

이때 벌초를 하는 이유는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인 백로(9월 7일)가 되면 찬 바람이 불어 풀의 성장 속도가 더뎌 베어낸 풀이 아무리 자라도 씨앗을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제주에서는 이번 주말부터 대대적인 벌초 행렬이 이어질 전망이다.

◇ '8월 초하루' 제주 벌초 대행렬

제주에서는 벌초를 '소분'(掃墳)이라고도 부른다.

제주에서 벌초는 8촌 이내 가족이 모여 고조부 묘까지 벌초하는 '가족 벌초'와, 각 지파 가족의 대표가 모여 선대 묘 수십 기를 돌보는 '모둠 벌초'로 두 차례로 나눠 행해진다.

가족 벌초와 모둠 벌초 순서는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고 집안마다 다르다.

특히 제주의 산소는 명당을 찾아 볕이 잘 드는 산과 오름 중턱, 중산간 등지에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보면 벌초만 2∼3일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자녀와 후손에게 벌초에 대한 부담을 넘기지 않기 위해 흩어진 선묘를 한 곳으로 모아 이장하거나 벌초를 대행해주는 서비스 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최근 들어서는 대개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벌초를 끝낸 후에는 준비한 제물로 상을 차려 인사를 올린다.

제주속담에 '식께(제사) 안 한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 안 한 것은 남이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벌초가 매우 중요시된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로 흩어졌던 후손들까지 자식을 데리고 고향을 찾으면서 유별나다는 소리도 나온다.

조상 묘를 깨끗하게
조상 묘를 깨끗하게

[연합뉴스 자료사진]

추석 당일에는 못 오더라도 벌초에는 반드시 참여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여겨져 어떤 문중은 벌초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면 벌금을 내도록 강제하기도하고 또 다른 문중에서는 벌초하러 내려오는 경우 항공편 비용을 대주기도 한다.

과거 제주에서 외아들을 육지로 잘 보내지 않으려는 것도 벌초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벌초하지 못하고 방치한 묘를 '골총'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 자손의 몰락을 의미했다. 추석 때까지 벌초를 안 한 묘소가 있으면 불효의 자손을 두었거나 조상의 대가 끊겼다고 해서 손가락질을 받았다.

제주에선 벌초를 안 하는 것을 불효 중의 불효로 쳤다.

또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제주지역 모든 초·중·고등학교가 8월 초하루를 맞아 임시 휴교하는 '벌초 방학'이 있을 정도였다.

2004년까지 각급 학교마다 100% 벌초 방학을 했다. 그러나 점차 줄면서 2007년에는 178개 학교 가운데 60%인 106개 학교만 임시 벌초 방학을 했다. 최근에는 거의 사라져 벌초 방학은 '그리운 방학'으로만 남게 됐다.

벌초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다.

2016년 A씨와 B씨 등 사촌 형제 2명이 사촌 형수 C씨를 상대로 토지 소유권을 이전해 달라며 소송을 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문의 맏손주며느리인 C씨는 벌초와 경조사 등 집안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조건을 달아 2008년 자신의 이름으로 상속된 토지 중 일부를 A씨와 B씨에게 증여 또는 양도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했지만 약정을 이행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 등이 1997년 부친이 사망한 후 10년간 벌초 등 집안 행사에 3∼4회만 참여하는 등 약정 조건을 달성했다고 보기가 힘들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보다 앞선 2006년 조상 묘 벌초를 조건으로 큰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가 이를 게을리한다며 재산을 되돌려 달라고 어머니가 소송을 내 승소했다.

제주지법 재판부는 "묘소 벌초와 제사 봉행 등을 하지 않은 아들은 물려받은 재산을 다시 어머니에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코로나19 n차 감염 (PG)
코로나19 n차 감염 (PG)

[김민아 제작] 일러스트

◇ "올해는 오지 마라" 코로나19로 바뀐 벌초 문화

하지만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제주 특유의 벌초 문화도 바뀌고 있다.

최근 전국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지역 간 이동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일손이 줄어들면서 민간 개별 업체의 벌초 대행 서비스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 도내 벌초 대행 서비스업체 관계자는 "하루 벌초 대행 관련 전화 문의만 20건 이상 오고 있다"며 "문의자 대부분이 코로나19 사태로 고향 방문을 걱정하는 다른 지역 거주자"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예약이 2배 이상 늘어 벌초할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1일 "음력 8월 초하루부터 벌초로 대규모 입도가 예상된다"며 "청정·안전 제주를 지켜내기 위해 벌초 기간 제주 왕래를 최대한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는 최근 수도권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심각한 수준이고, 제주에서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더욱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실천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내려졌다.

제주에서는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2일까지 코로나19에 확진된 은퇴 목사 부부의 산방산탄산온천 방문과 게스트하우스의 불법 야간 파티 등으로 총 18명의 확진자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또 목사 부부 접촉 및 제주 게스트하우스 투숙이 원인이 돼 다른 지역에서 11명이 확진되는 등 코로나19 감염사태가 확산하고 있다.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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