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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성범죄 자경단' 디지털교도소, 공익성 인정돼 처벌면제?

송고시간2020-09-0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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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운영자에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적용해 수사중…처벌에 찬반

정보의 공익성·객관적 검증거친 '사실'인지 여부가 유·무죄 관건

디지털 교도소 논란 (CG)
디지털 교도소 논란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이율립 인턴기자 = 온라인상에서 성범죄 의심자로 지목된 대학생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인터넷에 A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를 형사처벌해야 하는지가 논란이다.

처벌을 반대하는 측에선 디지털 교소도의 신상공개가 성범죄를 근절하고 경각심을 높이는 공익적 역할을 하니 명예훼손이 발생했더라도 형사처벌이 면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수사당국은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해 디지털 교도소와 같은 활동을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대구지방경찰청은 5일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로 알려진 박 모씨 등을 '정보통신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 '범죄성립 차단' 형법 310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엔 적용 안 돼

쟁점은 성범죄 용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행위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인정해 형사처벌을 면제할 수 있느냐다.

형법 310조는 '명예훼손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정보공개 내용이 '팩트'이며, 공개 행위가 오직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면 명예훼손이 발생했더라도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단, 이 조항이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가 받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따질 필요가 있다.

형사처벌을 반대하는 측에선 형법상 일반 명예훼손죄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가 사실상 같은 내용의 범죄이기 때문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형법 307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정보통신망법 70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두 범죄가 '침해 수단'과 '처벌 수위'에서 차이가 있을 뿐 범죄구성 요건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형사처벌 면제조항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반대 측 주장이다.

하지만 경찰은 법원 판례를 근거로 형법 310조와 상관없이 디지털 교도소의 신상정보 공개 행위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지난 2006년 8월 판결에서 "정보통신망을 통한 명예훼손에는 위법성 조각에 관한 형법 310조가 적용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정보공개에 공익성이 인정되더라도 온라인상에서 이뤄진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처벌면제 조항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범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한 배드파더스 '무죄' (CG)
양육비 미지급 부모 신상공개한 배드파더스 '무죄' (CG)

[연합뉴스TV 제공]

◇ 판례 "적시한 사실에 공익성 인정되면 비방목적 부정"

법원 판례는 형법 310조를 온라인상의 명예훼손 건에 직접 적용하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범죄 성립요건 판단 과정에서 정보공개의 공익성을 따질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2005년 10월 판결에서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인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정보공개의 공익성이 범죄 성립을 원천 차단하지는 않지만, 공익성이 인정될 경우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 범죄구성요건 중 하나인 '비방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따라서 정보공개의 공익성이 인정되면 '비방할 목적'이 추가로 입증돼야 형사처벌이 가능해진다.

정보공개의 공익성으로 인해 비방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온라인상에 공개한 '배드파더스' 운영자 사건이다.

법원은 지난 1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배드파더스 운영자에게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다수의 양육자가 고통받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정보공개의 공익성이 인정되므로 비방 목적은 부정돼 무죄라고 본 사안이다.

반면 정보의 신뢰성과 내용에 비춰 비방목적이 인정되면서 유죄가 선고된 판례도 존재한다. 법원은 2017년 8월 유흥업소 종사자 등의 신상정보를 온라인상에 공개한 '강남패치' 운영자에게 '진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신상정보를 공개해 비방할 목적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디지털 교도소, 법원 판결 근거로 한 양육비미지급자 공개와는 다르다" 지적도

디지털 교도소에 대한 형사처벌을 반대하는 측에선 디지털 교도소의 경우 피해자로부터 직접 제보받은 신상정보를 나름의 내부 검증작업을 거쳐 공개해 왔기 때문에 강남패치 사건과 달리 비방목적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내부 검증작업을 거친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법부의 양육비 지급 판결에 입각한 정보를 전달하는 배드파더스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전문가도 존재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적 절차를 거쳐서 신상정보 공개가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면서 디지털 교도소에 대해서는 "수사와 재판을 거쳐 사실인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 유죄로 추정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가 기소돼 재판에 회부될 경우 그가 공개한 정보의 공익성과 함께, 공개한 정보가 '사실'로 인정될 수 있느냐가 유·무죄 판단에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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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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