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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찾아온 고양이들…건강한 동거 위해 학생들이 뭉쳤다

송고시간2020-09-1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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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사내고 동물복지 동아리 '레벨업' 고양이 위해 펀딩까지

"동물 싫어하는 학교 구성원 합의 이끌면서 민주시민이 뭔지 배워"

화천 사내고에 찾아온 길고양이
화천 사내고에 찾아온 길고양이

[학생 이상현 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화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접경지인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에 자리한 사내고등학교. 올봄 코로나19로 텅 빈 교정에 길고양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침 이 학교에서는 올해 동물복지 동아리가 새롭게 꾸려졌다.

평소 동물복지에 고민이 깊던 교사와 동물을 사랑하는 학생 10명이 뭉쳤고, 동물 행복을 위해 노력하며 한 단계 더 좋은 세상을 꿈꾸자며 '레벨업'으로 이름 붙였다.

동물 행복을 꿈꾸는 레벨업과 길고양이들은 그렇게 처음 만났다.

첫 시작은 사료 챙기기였다.

단 한 마리의 동물이라도 행복하게 해주자는 결의로 교장, 교감 선생님을 설득했고 학생들은 조를 짜서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양이와 건강한 동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양이들이 쓰레기 분리수거장을 지나 주차장까지 향하면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선생님들이 있었다.

고양이 수도 점차 늘어 6마리까지 모였다.

이에 고양이 돌보기는 일이 커져 '고양이와 학교 구성원 상생 프로젝트'로 바뀌었다.

학교에서 노는 길고양이들
학교에서 노는 길고양이들

[학생 이상현 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동아리는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어낼 방법을 궁리했다.

먼저, 사료 주는 시간을 저녁 6시로 정해 교사들의 출퇴근 시간에 고양이들이 주차장으로 가지 않도록 막았다.

또 고양이 수가 늘어나면서 사료를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이를 지원받는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했다.

고양이와 상생을 고민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였다.

갈수록 배가 불룩해지는 고양이는 가장 큰 문제였다. 임신으로 개체 수가 급증하면 동아리가 감당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길고양이를 포획해 생식 기능을 없애는 중성화 수술을 한 뒤 방사하는 TNR(Trap-Neuter-Release) 작업이 시급했다.

이 밖에도 강원도의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집과 예방접종 등을 계산해보니 1천만원은 필요했다. 교사와 학생들이 마련하기엔 너무 큰 돈이었다.

사료 지원 부탁드립니다
사료 지원 부탁드립니다

[사내고 동아리 '레벨업'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기로 했다.

학생들이 진심으로 움직이자 펀딩 관련 강사와 유기동물 관련 기업 등이 도움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들은 펀딩 프로젝트 이름을 연(緣)으로 정했다. 고양이와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다는 의미다.

목표액 1천만원을 위해 머리를 모았고, 펀딩에 참여한 서포터를 위해 팔찌를 준비했다. 프로젝트를 응원해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다.

동아리 회원인 사내고 2학년 이상현(17)군은 "학생들이 큰돈을 모을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많은 도움으로 펀딩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며 "고양이를 그저 돌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생을 위해 선생님들 인식 변화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화천 사내고 동물복지 동아리 '레벨업'
화천 사내고 동물복지 동아리 '레벨업'

[교사 유은숙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동물복지를 넘어 민주시민이 되는 길을 배우고 있다.

내 눈에는 고양이가 예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불편할 수 있음을 깨닫고 학교 구성원과 합의를 이루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동아리는 고양이를 학교 안에서 돌본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일어나는 갈등을 이해하고 선한 목적을 설득하는 과정에 있다.

학생들과 함께 동아리를 만든 유은숙 교사는 "고양이 이름을 정하는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것 역시 설득의 과정이며 고양이가 왜 불편한지 설문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펀딩으로 돈을 만드는 것보다 학생들이 남과 다름을 이해하고 설득해 합의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며, 결국 이것이 민주시민 교육"이라고 덧붙였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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