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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도그파이트'에 '록온'…터키·그리스 공군의 자존심 싸움

송고시간2020-09-1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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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국방부, 그리스 F-16 전투기 몰아낸 영상 공개

그리스, 터키 F-16 이용한 '사기극' 주장

터키 F-16 전투기가 그리스 F-16을 조준한 영상
터키 F-16 전투기가 그리스 F-16을 조준한 영상

[터키 국방부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동지중해 천연자원 개발을 두고 터키와 그리스가 대치 중인 가운데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터키 국방부가 트위터를 통해 2분 9초 분량의 동영상(https://www.msb.gov.tr/SlaytHaber/2882020-20308)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은 터키 공군 F-16 전투기의 조정석 화면을 촬영한 것으로, 국방부는 이에 대해 "크레타 섬에서 이륙한 그리스 F-16 전투기 6대가 키프로스 섬 남쪽 경계 구역으로 접근함에 따라 우리 공군 F-16 전투기가 이들을 몰아냈다"고 설명했다.

영상에는 터키 공군 F-16과 그리스 공군 F-16이 상대방의 후위를 잡기 위해 공중 근접전, 즉 '도그파이트'를 펼치는 모습이 생생하게 담겼다.

주인공인 터키 조종사는 도그파이트 끝에 그리스 F-16을 '록 온'(조준)하는 데 성공하자 흥분한 듯 터키어로 "쏴라"라고 외친다.

당시 그리스 F-16은 공대공미사일의 추적 범위를 의미하는 둥근 원과 기총의 발사 궤적을 뜻하는 2개의 선 한 가운데 있다. 터키 조종사가 발사 버튼을 눌렀다면 격추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력가속도를 이겨내기 위한 조종사의 거친 호흡과 추적을 피하기 위한 그리스 F-16의 격렬한 기동, 연료 부족 경고(Bingo Fuel)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고스란히 전한다.

터키군이 이 영상을 공개한 의도는 명백하다. '손가락만 움직였으면 격추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자국 조종사의 기량이 그만큼 우수하며 지중해에서 대치 중인 그리스 전투기는 언제든 물리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한 것이다.

터키 F-16 전투기가 그리스 F-16을 조준한 영상
터키 F-16 전투기가 그리스 F-16을 조준한 영상

[터키 국방부 트위터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영상에 그리스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그리스 언론과 네티즌은 격하게 반발했다.

특히, 그리스 네티즌들은 터키와 그리스 양국이 모두 F-16 전투기를 운용한다는 점을 이용해 터키가 자국의 F-16으로 '사기극'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네티즌은 조종석 HUD(헤드업 디스플레이) 화면의 'SIM' 표시를 근거로 터키군 전투기가 시뮬레이션 모드로 비행했다고 지적했다.

'SIM'은 무장 시뮬레이션 모드(Armament Simulation mode)를 의미하는 것으로 실제로 화기를 발사하지 않는 훈련 상황에 주로 사용한다.

언제든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장 발사가 불가능한 상태로 임무에 나선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것이 그리스 네티즌의 주장이다.

단, 이는 조종사의 실수로 실제 무력 충돌이 빚어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도 해석될 수 있다.

영상 속 조준된 F-16 전투기의 도색이 그리스 공군 기체와는 다르다는 주장도 나왔다.

화면 속 F-16 전투기의 도색은 그리스 공군이 아니라 오히려 터키 공군 소속 기체로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이 주장 역시 터키 국방부가 공개한 영상이 흑백에 가깝고 화질이 좋지 않아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동지중해 훈련에 참여한 그리스 F-16 전투기
동지중해 훈련에 참여한 그리스 F-16 전투기

[그리스 국방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터키와 그리스는 15세기 말 그리스가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이후 수백 년간 앙숙 관계를 이어왔다.

약 400년간의 독립 투쟁 끝에 그리스는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쇠락하자 오히려 오스만 제국의 본토로 진격하기에 이른다.

결국 오스만 제국은 내우외환이 겹치면서 멸망했지만, 터키인은 훗날 국부로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지도로 그리스를 포함한 외세를 몰아내고 공화국 수립에 성공한다.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으로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의 위협에 함께 맞서면서 관계가 호전된 적도 있지만, 수백 년 묵은 국민감정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동지중해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과 석유·천연가스 등 자원 개발, 시리아 난민 문제 등이 얽히면서 양국 공군은 불꽃 튀는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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