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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 인권과 정의, 기업, 브랜드

송고시간2020-09-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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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나오미의 닛신컵누들 광고
오사카 나오미의 닛신컵누들 광고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의 닛신컵누들 광고. 여성 혐오 비난을 받고 있다. [김민정 제공]

2020년 5월 25일, 코로나19로 인해 직장을 잃은 미국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미니애폴리스 경찰관 데렉 쇼빈에 의해 살해됐다. 클릭 한 번이면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 경찰에 의한 과잉진압 장면은 하룻밤 새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곧이어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시작됐고 각계각층 저명인사가 지지 의사를 피력했으며, 일본에선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가 그 선두에 섰다.

1997년생 오사카 나오미는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만 3세에 미국으로 이주해 테니스를 시작했다. 180cm의 장신과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올해 US오픈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최근 화제를 모으는 선수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출전할 때마다 살해당한 흑인의 이름이 적힌 까만 마스크를 쓰고 등장했다. 해외 언론들은 그를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싸우는 영웅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운동선수가 정치적 견해를 갖는 게 결코 좋은 일은 아니라고 비난했다.

그녀를 고용한 스폰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글로벌 기업 나이키는 오사카 나오미 선수의 BLM을 적극 지지하며, 광고를 통해서도 그녀가 차별과 싸우는 정의로운 인간이란 점에 주목했다. '이 승리는 나를 위한 것, 이 싸움은 모두를 위한 것'이란 광고문구만 봐도 그렇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그녀의 이런 행보에 한결같이 입을 다물었다. 한 광고 담당자는 "흑인 대표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이 기업 브랜드 가치를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이키는 오사카 나오미의 행보가 광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지만 일본 기업들의 입장은 정반대였던 셈이다. 시티즌은 답변을 거부했고, 닛산자동차는 답변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닛신컵누들은 개인적인 문제라고 답했다.

이중 닛신컵누들은 오사카 나오미를 기용한 광고마저 여성 혐오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라쿠주를 좋아하는 오사카 씨는 항상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고 유행을 잘 파악한 자신만의 스타일이 매력적이다. 테니스도 패션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광고문구를 선보였는데, 세계 최강 테니스 선수에게도 패션과 스타일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뭇매를 맞았다.

오사카 나오미는 ANA, 모리나가, 시세이도 등 15개 회사와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으며, 그녀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이는 돈은 400억 원이 넘는다.

산리오의 BLM(Black Lives Matter) 광고
산리오의 BLM(Black Lives Matter) 광고

헬로키티 등의 캐릭터로 유명한 산리오가 일본 기업 중 가장 먼저 지지를 밝힌 BLM(Black Lives Matter) 광고문구. [김민정 제공]

BLM(Black Lives Matter)을 지지한 산리오의 캐릭터 광고
BLM(Black Lives Matter)을 지지한 산리오의 캐릭터 광고

‘좋은 친구가 되려면 배우고, 지원하고, 들어주고, 물어봐 주고, 인정해줘야 한다’는 내용의 산리오 캐릭터 광고. BLM(Black Lives Matter) 지지의 일환이다. [김민정 제공]

오사카 나오미를 기용한 일본 기업들이 BLM 문제에 입을 꾹 다문 가운데, 의외의 기업이 BLM을 지지해 환호를 받았다. 헬로키티, 마이멜로디, 키키라라 등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기업 산리오다.

올해 6월 3일 일본 기업 중 가장 빨리 트위터를 통해 BLM 지지 선언을 했으며, 6월 9일에는 더 좋은 친구가 되는 방법으로 '배우고' '지원하고' '들어주고' '물어봐 주고' '인정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캐릭터로 표현했다.

1960년 창업한 산리오는 1990년에는 아시아 출신 유학생 100명에게 매달 10만 엔씩 지원했고,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익명으로 하와이 여행을 선물하는 등 일본에서는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으로 명망이 높다.

헬로키티에게 입이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창업자는 "입으로는 어떤 말도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태도로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빠른 BLM 지지로 호감을 산 산리오조차 역사 인식에선 여전히 뒤떨어진 면을 보인다. 욱일기 앞에 선 키티, 방마다 우익 서적을 두고 있는 아파호텔과의 협업 등이 그렇다.

이를 두고 릿쿄대학 미국연구소의 닛타 게이코 부소장은 "일본에서는 미국 내 흑인 차별에 쉽게 목소리를 내지만 일본 내의 외국인 차별에 대한 자기비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민정
김민정

게이오대학 졸업, 일본외국어대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재일 작가, 번역가 | '엄마의 도쿄''떡볶이가 뭐라고' 등 저서 외에 '애매한 사이' '시부야 구석의 채식 식당' 등 다양한 도서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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