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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빨간색의 새 이름 '생리'입니다"[뉴스피처]

송고시간2020-10-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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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iEauZiygXA

(서울=연합뉴스) '리빙 코랄', '클래식 블루'

매년 연말이면 이듬해를 겨냥한 '올해의 색'을 선정, 발표하는 글로벌 색채 전문기업 '팬톤'(Pantone). 패션·디자인 업계를 넘어 산업 전 분야에 널리 활용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요.

소비자의 마음에 와닿는 이름 붙이기로도 유명한 이 회사가 최근 내놓은 새로운 색 이름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선명한 붉은색의 이름은 다름 아닌 '생리'. 더 정확히 말하면 여성의 월경을 뜻하는 영단어 '피리어드'(period) 입니다.

대표 이미지 역시 붉은 바탕에 흰색으로 그려진 난소와 자궁 등 여성의 생식기관, 그리고 생리컵이 눈에 확 띄는데요.

팬톤 측이 스웨덴의 월경용품 업체와 협업, 이 색을 만든 이유는 생리가 가진 오명을 없애고 긍정적 인식을 고취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리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캠페인의 일환인데요.

"너 혹시 '그날'이야?"

"마법에 걸렸어"

여성이라면 '생리'라는 말 대신 이 같은 표현을 써본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겁니다. 요즘엔 '대자연'이라는 단어도 종종 사용하는데요. 과거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생리는 부끄럽고 감춰야 할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생리대 광고에서조차 빨간색이 등장한 게 불과 얼마 전의 일. 그전까지는 생리혈 색깔에 파란색 액체를 써왔는데요. 지금도 대형마트나 편의점에서 생리대, 생리컵, 탐폰 등 월경용품을 구입할 때 밖으로 보이지 않도록 검은색 비닐봉지나 종이봉투에 담아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가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대 등을 지원하는 사업의 명칭은 '청소년 건강지원사업'. '생리용품'도 '보건위생물품' 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둔갑했는데요. 이 역시 생리에 대한 직접 언급을 꺼리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대목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비례대표)은 지난 8월 여성가족부 결산 심사에서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며 보다 명확한 단어를 쓸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생리를 숨겨야 할 것으로 여기는 현상은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 지난 2016년 연구결과에 따르면 생리 대신 에둘러 쓰는 단어가 세계적으로 5천여개에 달했는데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남성 중심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사회 전반에서 권력 대부분을 가졌던 생리 하지 않는 남성이, 생리하는 여성을 일종의 절대적 타자라든지 열등성을 가진 존재로 폄하하거나 비하할 때 주로 피 흘린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해왔다"고 지적했습니다.

더욱더 안타까운 점은 생리를 불결한 것으로 인식하는 문화권에서 여성의 인권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받는다는 것.

CNN 방송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생리 중인 여성의 사원 등 출입이 제한되고, 네팔은 생리 기간 격리돼 오두막에서 홀로 지내던 여성이 숨지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됩니다.

아직도 일부는 낯설고 불편하게 여기는 생리의 이름과 색깔. 세계적인 색채연구소가 선보인 대담한 컬러가 세간의 인식을 바꿔놓을지 주목됩니다.

김지선 기자 김지원 작가 홍요은 인턴기자 최지항 주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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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1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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