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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 "시대극 안에 서스펜스·멜로 담는 게 도전"

송고시간2020-10-2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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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스파이의 아내' 온라인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스파이의 아내'가 지난달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지 한달여 만에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 관객을 만난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는 태평양 전쟁 직전인 1940년,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던 고베의 무역상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남편 유사쿠(다카하시 잇세이)는 만주에 출장을 갔다가 관동군의 만행을 목격하고 이를 세상에 폭로하려 하고,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는 귀국 후 달라진 남편의 언행을 의심하게 된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26일 영화 상영을 앞두고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래전부터 시대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이번에 그 꿈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현대의 도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주로 만들어왔는데,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그리 멀지 않은 과거지만 이미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역사에서는 나름의 판단과 확신을 갖고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하기보다는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사회지만, 감독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다루었을 뿐"이라며 가볍게 넘겼다.

"그렇게 엄청난 각오나 용기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크게 의식하지도 않았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게 있으니 그에 반하지 않도록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는 "내가 은폐되어 있던 역사를 드러내는 작업을 한 것도 아니고 일본인과 세계인들에게 하나의 역사로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그리고자 했을 뿐"이라며, 오히려 그런 시대 배경 안에서 "서스펜스나 멜로가 성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커다란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
영화 '스파이의 아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영화는 지난 6월 NHK에서 방영했던 스페셜 드라마를 재제작한 것이다. 각본을 쓴 하마구치 류스케와 노하라 타다시는 구로사와 감독이 도쿄예술대학에서 가르쳤던 제자들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두 사람이 쓴 대본은 대사가 엄청 많고 길어서 그대로 찍었으면 러닝타임이 세 시간 이상은 나왔을 것"이라며 "각본 작업에서 내 역할은 많은 것을 도려내고 단출하게 두 시간 이내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스파이가 아닌 스파이의 아내를 주인공으로 둔다는 건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일반적인 일본인들의 인식은 어떠했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무엇을 즐겼는지 일상적인 부분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했다면 어려웠겠죠. 또 아내의 입장에서 스파이인 남편이 하는 일이 의혹이나 미스터리로 남을 수 있으니 빼어난 발상이었죠."

감독은 "남자들이 시스템과 대립할 때 패배하거나 저버리거나 거기서 벗어나는 데 반해, 여성은 그 사회 안에 머무르면서도 굽히지 않는다"며 "그렇게 그리고자 의도하기도 했고, 그게 사토코의 매력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영화 '스파이의 아내'
영화 '스파이의 아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40년대를 영화의 시대 배경으로 선택한 어려움은 정치적 이유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감독은 "과거처럼 촬영소가 있었으면 시대극을 찍는 게 수월하게 가능했을 텐데, 촬영소가 사라진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예산과 시간으로 가능할지 의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진행하기 전부터 예상은 했지만, 촬영 장소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며 "예산이 적어 컴퓨터그래픽(CG)을 사용하거나 세트를 짓는 것도 어려웠고 1940년대 분위기가 날 수 있는 장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매우 한정된 장소에서 진행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한국 관객이 알아채기는 쉽지 않지만, 영화에서 사용하는 1940년대의 일본어는 현대의 일상에서 사용하는 일본어와 말투나 어조, 표현까지 매우 다르다고 한다.

감독은 "배우들에게 처음 대본을 보여주며 대사가 이해되느냐고 물었더니 단번에 '너무 잘 안다'며 '한 번쯤 해보고 싶었는데 하게 되어 기쁘다'고 하더라"며 "배우들이 평소 오래된 영화를 공부하고 준비가 잘 돼 있어 수월했다. 대사를 공부하고 연습해야 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구로사와 감독은 "전쟁을 다룬 일본 영화지만 한편에서는 서스펜스와 멜로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며 "역사에 대해, 현재와의 연결고리에 대해서는 한국 관객들이 자유롭게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온라인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오른쪽)
온라인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오른쪽)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mi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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