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톡톡] '비대면(언택트(Untact))'의 그림자
송고시간2020-10-31 06:00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비대면(언택트)'은 어느새 우리네 일상에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키오스크(안내 단말기)로 식사를 주문하고 챗봇을 통해 상담하는 등 마주하지 않아도 쉽게 해결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천천히 다가올 것 같던 변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복병을 만나 디지털시대로의 전환을 가속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장보기,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음식 배달시키기 등 화면을 클릭하기만 하면 집 앞에 물건이 도착합니다. 마치 사람이 분주하게 일하는 자리에 기계들이 움직이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 화면 너머로는 여전히 인간의 노동이 존재합니다.
지난 11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최근 소매유통업체 1천 개 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해 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는 85였습니다. RBSI가 기준치 100을 초과하면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뜻하는데 온라인·홈쇼핑 업종(108)만 유일하게 기준치 100을 넘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9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온라인 매출은 작년 9월보다 20.0% 증가했으며 8월 20.1%에 이어 두 달 연속 20%대 높은 증가율을 이어갔습니다.
온라인 매출의 독주에 택배 상자는 쌓여갑니다. 지난 1월 2억4천549만 개였던 택배 물량은 4월 2억6천166만 개, 7월 2억9천217만 개로 늘어났으며 추석이 있는 9월은 3억 개를 돌파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택배업계의 활황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의 과중 업무 문제는 고용 형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근로자가 아닌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들은 대부분 주 52시간제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배송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개인 사업자 신분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택배기사의 평균 근무 시간 주 71시간. 살인적인 수치입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19년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취업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1.5시간으로 전년(42.8시간) 대비 1.3시간 감소했습니다.
단순히 배정된 택배를 배송하는 것이 아닌 분류작업 또한 그들의 업무가 돼버렸습니다. 간선차 상·하차 작업부터 배송 출고까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분류하고 또 분류합니다. 수백 개의 상자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이 감당해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택배사는 배송 전 사전작업이라 주장합니다. 일부 택배기사들은 분류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개인의 비용을 들여 알바를 고용하기도 합니다. 기형적입니다. 그림자 노동은 축적되고 업무시간은 늘어납니다. 그렇게 올해만 벌써 13명의 택배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뒤늦게 택배사들은 대책을 발표합니다. CJ대한통운은 분류작업 지원 인력 4천 명을 다음 달부터 단계적으로 투입할 예정이며, 한진은 다음 달 1일부터 오후 10시 이후 심야 배송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이 일시적 대안에 그치면 안 됩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주 5일제 도입이라는 근본적 고용 형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택배사의 무한 경쟁 속에 노동자는 고통받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외면은 없어야 합니다. 더 이상의 죽음은 없어야 합니다. 사회적 이슈이기 때문에, 여론의 집중화로 인해 대책만 강구하다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hwayoung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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