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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보릿고개 없앤 '통일벼 아버지' 허문회 10주기

송고시간2020-11-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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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벼 개발을 주도한 허문회 박사. [과학기술유공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통일벼 개발을 주도한 허문회 박사. [과학기술유공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한국인의 주곡은 쌀이다. 쌀을 향한 애착과 집념은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 그러나 쌀 낟알이 열리는 벼는 산이 많고 동남아보다 일조량과 강수량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키우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쌀은 늘 모자랐다. 쌀밥에 고깃국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쌀 소비를 줄이고자 1967년 혼·분식 정책을 도입했다. 혼식은 쌀에다 보리 등 잡곡을 섞어 지은 밥을 말하고, 분식은 가루(주로 밀가루) 음식을 일컫는다. 보리는 쌀보다 키우기 쉽지만 밥맛이 떨어지고 소화가 잘되지 않아 사람들이 꺼렸다. 밀가루는 미국의 무상원조로 풍족한 편이었다. 정부는 쌀보다 보리와 밀가루가 몸에 좋다고 선전하며 '식생활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혼·분식을 장려했다.

1973년 정부 시책에 부응하기 위한 혼·분식 특별 요리강습회가 열리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73년 정부 시책에 부응하기 위한 혼·분식 특별 요리강습회가 열리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래도 국민의 쌀 선호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강제 수단도 동원했다. 1968년부터 모든 음식점에서 25% 혼식을 의무화했고, 이듬해부터는 매주 수·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을 원료로 한 음식 판매를 금지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도 교사가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해 보리가 적게 섞여 있으면 혼을 냈다. 쌀을 축내는 쥐를 퇴치하려고 쥐잡기 운동도 대대적으로 벌여 학생들은 잡은 쥐의 꼬리를 잘라 학교에 내야 했다.

정부는 쌀 증산을 위한 벼 품종 개량에도 힘을 쏟았다. 1960년 미국의 록펠러·포드재단이 필리핀 농과대에 설립한 국제미작연구소(IRRI)에 1964년 서울대 농학과 교수인 허문회 박사 등 연구원 15명을 파견했다. 허 박사는 한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특별연구원으로 위촉됐다.

통일벼가 자라고 있는 들판에서 허문회 박사(가운데)가 동료 연구원과 함께 서 있다. [과학기술유공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통일벼가 자라고 있는 들판에서 허문회 박사(가운데)가 동료 연구원과 함께 서 있다. [과학기술유공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1965년 11월 추위에 강하고 미질이 좋은 일본의 유카라(자포니카계)와 미질은 나빠도 태풍을 잘 견디고 수확량이 우수한 대만 재래종 TN1(인디카계)를 교배해 IR568 품종을 얻은 뒤 IRRI가 개발한 다수확 품종 IR8과 교배해 IR667을 만들어냈다. 동북아에서 주로 재배하는 자포니카계와 동남아에서 잘 자라는 인디카계 품종을 교배하면 잡종 불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이전까지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최초로 '원연종 간 삼원교잡'(계통상 멀리 떨어진 3개 종을 교배)을 통해 이를 극복해냄으로써 육종 기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허 박사는 1967년 7월 귀국하고도 1969년까지 필리핀을 오가며 IR667의 실험 재배를 반복했다.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종자를 고르려는 시도였다. 1969년 우수한 볍씨를 선발해 파종한 뒤 이듬해 여름 국내외 학계에서 다수확 품종으로 공인받았다. 1971년 초 정부는 이를 '통일벼'라고 이름 지었다.

1971년 2월 5일 통일벼(IR667) 쌀로 지은 밥을 먹어보고 박정희 대통령이 평가한 조사표. 밥 색깔과 밥맛은 좋고 차진 정도는 보통으로 매겼다. [과학기술유공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71년 2월 5일 통일벼(IR667) 쌀로 지은 밥을 먹어보고 박정희 대통령이 평가한 조사표. 밥 색깔과 밥맛은 좋고 차진 정도는 보통으로 매겼다. [과학기술유공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언론들은 통일벼를 '기적의 볍씨'라고 보도했으나 밥을 지으면 푸석푸석해 한국인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해 2월 5일 국무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에서 열린 품평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귀한 달러 주고 외국 쌀 사 먹는 처지에 밥맛 따지게 됐나"라고 말하자 잠잠해졌다.

통일벼는 1971년부터 농가에 보급됐다. 공무원과 농협 직원 등을 동원해 통일벼 재배를 강권하는 바람에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재래종보다 20∼40% 많은 수확량을 올리자 재배 면적이 빠르게 늘어나 1976년 전체 논의 44%에 이르렀다. 1974년 쌀 수확량이 역사상 처음으로 3천만 섬을 돌파한 데 이어 이듬해 3천342만 섬을 수확해 마침내 쌀 자급 원년을 기록했다. 1977년에는 4천만 섬을 넘어섰다.

국립과천과학관에 전시된 통일벼 관련 자료. 국립중앙과학관은 올해 1월 통일벼를 비롯한 우리나라 과학 유산 12건을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했다. [국립과천과학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국립과천과학관에 전시된 통일벼 관련 자료. 국립중앙과학관은 올해 1월 통일벼를 비롯한 우리나라 과학 유산 12건을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했다. [국립과천과학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풍년이 거듭되자 1977년 12월 8일 14년 만에 쌀막걸리 제조와 시판이 허용됐고, 유사 이래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쌀 48만6천 섬을 빌려줬다. 그 사이 밥맛이 떨어지는 단점을 보완하고 수확량도 뛰어난 신품종이 잇따라 개발되면서 1990년 통일벼는 장려 품종에서 제외됐고, 1992년부터 정부가 수매를 중단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비록 20여 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통일벼는 민족의 숙원을 해결하고 보릿고개란 말을 없앤 효자 발명품이었다. 국립중앙과학관은 올해 1월 30일 통일벼 관련 자료를 비롯해 1992년 삼성전자가 개발한 64메가 디램, 한국형 전전자교환기 TDX-1, 1981년 삼보컴퓨터의 개인용 컴퓨터 SE-8001, 허준의 동의보감 등 12건을 처음으로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했다.

아프리카 말라위 논에서 통일벼를 활용한 신품종 벼가 자라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프리카 말라위 논에서 통일벼를 활용한 신품종 벼가 자라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통일벼는 은퇴했어도 그가 낳은 수많은 신품종이 각국에서 녹색혁명을 이끌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통일벼를 활용한 새 벼 품종 3종을 지난해 12월 아프리카 말라위와 말리에 보급했다. 아프리카 벼연구소와 공동 개발한 이 품종은 시험 재배 결과 기존 품종보다 2∼3배에 이르는 ㏊당 6.8∼8.7t의 수확량을 나타냈다. 가나·케냐·수단 등 6개국에서도 통일벼를 활용한 46개 품종을 시험 재배하고 있다.

허문회 박사는 1927년 충북 충주시 소태면에서 태어나 청주사범학교와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텍사스A&M대에 유학한 뒤 1960년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1977년부터는 네팔 중앙시험장 연구조정관으로 일했고 1980년 통일벼의 산실인 IRRI에 복귀해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선사박물관에 2011년 들어선 허문회 전시실. 허 박사의 일대기와 유품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충북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선사박물관에 2011년 들어선 허문회 전시실. 허 박사의 일대기와 유품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후로도 병해충과 추위에 강한 벼, 소금기 많은 흙에서도 잘 자라는 벼, 고단백 쌀을 생산하는 벼 등 육종학 연구에 관한 논문 210여 편을 발표했다. 작물학회와 육종학회 회장, 아시아·오세아니아육종학회와 국제벼유전학회 상임이사 등도 역임하며 5·16민족상, 은탑산업훈장, 성곡학술상 등을 받았다. 2010년 9월 '과학기술인 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딸(허성기)과 사위(유상열)도 각각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연구관과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로 농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충주박물관은 2011년 12월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 선사박물관 안에 허문회 전시실을 꾸며 유품과 일대기 등을 선보이고 있다. 허 박사는 1996년 충북대박물관이 조동리 선사유적을 발굴할 때 출토된 곡식 낟알을 감정해 충청북도 기념물 126호로 지정하도록 한 인연이 있다. 2017년 출생지인 소태면 하청마을 등대공원에는 그의 공덕비가 세워졌다.

2015년 '열린 지구촌 아동 돕기-사랑의 동전밭' 행사가 진행된 서울 청계천광장에 50원짜리 동전 모형이 설치됐다. 동전 앞면에 새겨진 그림이 통일벼 이삭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5년 '열린 지구촌 아동 돕기-사랑의 동전밭' 행사가 진행된 서울 청계천광장에 50원짜리 동전 모형이 설치됐다. 동전 앞면에 새겨진 그림이 통일벼 이삭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오는 24일은 '녹색혁명의 선구자'이자 '통일벼의 아버지' 허문회 박사의 10주기 기일이다.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보릿고개란 말도 모르고 혼·분식이란 단어도 생소할 것이다. 그러나 1972년 12월 1일 처음으로 발행된 5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그림이 통일벼 이삭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쌀 증산을 간절히 염원하고 통일벼에 큰 기대를 걸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식량 자급의 꿈을 이뤄준 통일벼의 공로를 잊을 수 없듯이 허문회 박사의 업적도 두고두고 기억해야 한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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