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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사유리가 우리 사회에 던진 '비혼모 출산' 이슈

송고시간2020-11-1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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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일본인 출신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41)가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활짝 웃는 사진이 17일 종일 인터넷을 달궜다. 사유리는 16일 방송과 이튿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일본에서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지난 4일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인터넷을 달군 사진은 KBS 방송 뉴스 캡처 사진이다. 사유리의 출산 소식을 알린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것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을 권리가 없는가'라는 절대 가볍지 않은 질문을 정면으로 한국 사회에 던져서일 것이다.

사유리는 KBS 인터뷰에서 "지난해 의사로부터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비혼 임신을 선택했다. 일본 정자은행에 보관된 누군가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을 합법적 길이 없어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아이 갖기를 원하는데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급하게 찾아 결혼하는 것도 마땅치 않아 결혼하지 않고도 정자 기증을 받아 임신할 수 있는 일본에서 출산하게 됐다는 것이 요지다. 사유리의 말대로 국내에서는 '자발적 비혼모'가 되는 합법적인 통로는 없다. 자발적 비혼모는 결혼하지 않고 자기 의지로 정자은행 등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만 낳아 기르는 여성을 일컫는다. 우리 생명윤리법에는 난자 또는 정자의 금전적 거래만 금지한다. 그런데 정작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으려면 배우자 동의가 꼭 필요하다고 한다. 결국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정자를 기증받을 합법적인 길이 없는 셈이다. 모자보건법상 시험관 시술 등 난임 지원도 법적 부부든, 사실혼 관계 든 부부가 아니면 받을 수 없다.

자발적 비혼모 이슈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점에서 한 달여 전 헌법재판소의 조건부 낙태 허용과도 맥이 닿는다. 헌재가 임신 14주 이내 여성에게 절차적 요건 없이 낙태권을 허용한 것은 낙태의 자기 결정권을 그만큼 존중해서일 것이다. 생각의 폭을 조금 넓히면 임신권이나 출산권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테두리 안에 존재한다. 아이는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기존 가족 관념에 대한 '틀 깨기'도 그런 맥락에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비혼모와 아이로만 구성된 가족 형태가 낯설지만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 혼외 출산율은 40%를 넘는다고 한다. 제도권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비율이 높고, 그만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중에는 비혼모와 아이로 구성된 가족 형태도 많이 존재하리라는 추정은 너무 당연하다.

한국 사회에도 결혼은 싫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늘어날 개연성이 높다. 가족 형태가 다양화해가는 현대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사유리의 생각과 그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에 우리는 늦었지만, 답해야 한다. 여성의 자발적 선택권을 넓히고 제도로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당장 가족 형태의 제도적 틀을 깨기가 어렵다면 지금부터라도 사회 공론화의 장을 마련하길 바란다. 사유리의 출산 소식에 축하와 지지 댓글이 쏟아진 것은 결혼 밖 출산을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대가 이미 지나갔음을 의미한다. 더불어민주당의 한정애 정책위 의장이 '더 열린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긍정적 반응을 내놓은 것도 우리 사회가 비혼모 출산 이슈를 공론화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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