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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10년 이상 숙성한 머루 와인의 깊은 향

송고시간2021-01-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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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과일 가운데 와인의 본고장인 유럽의 레드 와인과 가장 비슷한 맛과 향을 낼 수 있는 것이 머루다.

토종 머루로 만든 와인을 맛보기 위해 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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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산머루농원

(파주=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과일 가운데 와인의 본고장인 유럽의 레드 와인과 가장 비슷한 맛과 향을 낼 수 있는 것이 머루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일반적인 포도보다 알이 작고 껍질이 두꺼우며 산도와 당도는 더 높기 때문이다.

토종 머루로 만든 와인을 맛보기 위해 파주 산머루농원을 찾았다.

산머루농원의 와인터널에 100개의 오크통이 누워있다. 깊이 15m로 판 터널의 길이는 73m에 달한다. [사진/조보희 기자]

산머루농원의 와인터널에 100개의 오크통이 누워있다. 깊이 15m로 판 터널의 길이는 73m에 달한다. [사진/조보희 기자]

◇ 73m 와인 터널과 100개의 오크통

산머루농원은 임진강이 흐르는 감악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와이너리에 도착하니 서부건 대표가 지하 숙성고로 안내한다.

나무로 된 거대한 문에 '1979 감악산 머루주'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고 어두컴컴한 터널이다.

오른편 3단으로 된 선반 위에 100여 개의 오크통이 줄지어 누워있다. 왼편에 늘어선 옹기 안에서도 와인이 익어가고 있다.

깊이 15m로 판 와인 터널의 길이는 73m. 국내 농가형 와이너리에서는 보기 힘든 규모다.

오크통에 들어있는 와인은 2006년산 머루로 만든 것들이다. 10년 넘게 숙성 중인 셈이다.

2006년 수확한 머루는 당도가 최고 24브릭스에 달할 정도로 품질이 좋았다고 한다.

한잔 따라 코에 대니 잘 숙성된 와인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향이 넘실댄다. 젖은 나무향과 초콜릿향, 바닐라향 등 일반적인 국산 와인에서 느끼기 힘든 향이다.

서 대표는 "와인 종류에 따라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 숙성시켜 판매한다"며 "국내 농가형 와이너리 중 10년 이상 숙성시키는 곳은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머루농원 와인 터널 안쪽에 있는 개인 와인 저장 공간 [사진/조보희 기자]

산머루농원 와인 터널 안쪽에 있는 개인 와인 저장 공간 [사진/조보희 기자]

숙성고 옆에 마련된 지하 발효실 역시 규모가 상당했다. 13t 용량의 거대한 스테인리스 발효 탱크가 14개나 된다.

머루 와인 만드는 과정은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과정과 거의 비슷하다.

10월 초 수확한 머루 열매를 으깬 뒤 효모와 함께 발효 탱크에 넣어 7∼10일간 발효시킨다.

1차 발효된 머루는 찌꺼기와 액체를 분리하는 착즙 과정을 거친 뒤 다시 발효 탱크에 넣어 15일간 2차 발효한다. 2차 발효가 끝나면 숙성에 들어간다.

제품 종류에 따라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계속 숙성하기도 하고, 오크통이나 옹기로 옮겨 장기 숙성하기도 한다.

옹기에서 숙성한 와인은 오크향은 없지만, 맛이 좀 더 부드럽다고 한다.

숙성 중에도 3∼6개월에 한 번씩 술을 옮겨 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침전물을 걸러내기 위해서다.

서 대표는 "와인을 숙성고에 쌓아놓고 있는 것 자체가 비용"이라며 "비용이 많이 들지만 장기 숙성을 고집하는 것은 마트에 널린 1만원대 수입 저가 와인과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산머루농원의 지하 발효실 내 시음 공간 [사진/조보희 기자]

산머루농원의 지하 발효실 내 시음 공간 [사진/조보희 기자]

◇ SINCE 1979

숙성고 문손잡이에 새겨진 것처럼 산머루농원의 역사는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원을 일군 서우석 씨는 서부건 현 대표의 부친이다. 경기도 평택이 고향인 그는 1979년 이곳에 정착해 염소를 방목하며 살았다.

서씨가 어느 날 산 중턱에 염소를 풀어놓고 바위에 앉아 쉬는데 주렁주렁 달린 열매가 눈에 들어왔다. 밭에서 재배하면 돈벌이가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열매가 잘 달린 나무만 골라 이듬해 봄 밭에 옮겨 심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열매가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열매가 열리지 않은 것은 암나무만 옮겨 심었기 때문이다.

머루는 은행나무처럼 암수가 따로 있어 암나무만 있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한다.

와인터널로 들어가는 문에 새겨진 글씨가 산머루농원의 역사를 말해준다. [사진/조보희 기자]

와인터널로 들어가는 문에 새겨진 글씨가 산머루농원의 역사를 말해준다. [사진/조보희 기자]

머루 재배에 실패한 서씨는 남양주의 지인이 개량 머루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묘목을 분양받았다. 암수가 한 그루에 있는 묘목이었다.

이 개량 묘목으로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머루 재배 기술을 확립한 그는 1990년대 농가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머루주로 유명한 무주와 함양에 묘목을 공급한 것도 바로 서씨다.

1995년에는 머루 가공공장도 설립했다.

지금은 산머루농원 영농조합법인에 소속된 농가 48곳이 50ha 규모의 밭에서 1년에 300∼400t의 머루를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이 가운데 70∼80%가량은 머루즙, 머루잼, 머루와인 등으로 가공돼 팔린다.

술을 한 모금도 못 한다는 서씨가 머루 와인을 빚게 된 사연도 재미있다.

공장 설립 전 가내 수공업 형태로 머루즙을 판매했던 서씨는 머루즙 가공공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파주시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머루즙이 아닌 머루주 공장으로 승인이 났다.

머루주는 알아도 머루즙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던 담당 공무원이 임의대로 고쳐 승인한 것이었다.

"좋다. 그럼 머루주를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은 서씨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양조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마시지도 못했던 술 만들기에 처음 도전한 탓에 시행착오도 많았다. 막걸리처럼 머루에 누룩을 넣고 발효시켜보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1997년 9월 첫 와인을 내놓을 수 있었다.

산머루농원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와인들 [사진/조보희 기자]

산머루농원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와인들 [사진/조보희 기자]

산머루농원에서 판매되는 와인은 단맛이 없는 '드라이' 제품과 달콤한 맛을 내기 위해 당을 첨가한 '스위트' 제품으로 나뉜다.

드라이 와인은 10년 이상 숙성시켜 판매하며, 스위트는 '3년 숙성'과 '5년 숙성'으로 나뉜다.

두 제품 모두 '머루 드 서'(Meoru de Seo)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서씨네 머루'라는 뜻인데 '머루 드세요'라는 의미도 담았다고 한다.

2004년 만든 와인터널은 산머루농원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좋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바탕이 됐을 뿐 아니라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 대표는 "농가 차원에서 술을 유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소비자를 현장에 유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대를 이어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서부건 대표 [사진/조보희 기자]

대를 이어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서부건 대표 [사진/조보희 기자]

와이너리 방문객들은 와이너리 탐방·시음과 함께 머루 잼·초콜릿·파이·비누 만들기, 머루 와인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단체 방문객이 아니더라도 예약하면 누구나 체험이 가능하다.

일찌감치 와인 터널을 조성한 덕분에 방문객 수입이 와인 판매 수입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한 해 방문객이 8만명을 넘었고, 이 중 외국인 관광객이 6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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