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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致死'로 기소 영아학대 사망사건, 살인죄 처벌가능?

송고시간2021-01-0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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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양부모의 학대행위 속에 생후 16개월된 영아가 사망한 사건에 검찰이 살인 혐의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4일 검찰이 뒤늦게 전문 부검의를 통해 피해아동의 사망원인을 재감정하겠다고 나섰지만, 장기가 파열될 정도의 심각한 충격으로 영아가 사망한 이번 사건에서는 처음부터 살인 혐의 적용을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복수의 아동학대 사망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가 사고사였다고 주장하거나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여러 정황에 비춰 피해자가 사망할 수도 있음을 학대의 가해자가 인식하거나 예상한 것으로 판단되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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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16개월 영아 사망사건서 살인 아닌 아동학대치사로 기소해 논란

유사사건 판결서 가해자가 사망 가능성 인식했다고 판단되면 살인죄 인정

현행법은 '살인+아동학대치사' 중복기소 허용…재판 중 공소장 변경도 가능

"학대치사 웬 말, 살인죄로 처벌하라"
"학대치사 웬 말, 살인죄로 처벌하라"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14일 오후 서울남부지검 앞에 '16개월 영아 학대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숨진 아이를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늘어서 있다. 2020.12.14 pdj6635@yna.co.kr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김수진 기자 = 양부모의 학대행위 속에 생후 16개월된 영아가 사망한 사건에 검찰이 살인 혐의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한 것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라 기본양형이 10∼16년인 살인죄 대신 기본양형이 4∼7년인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해 결과적으로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4일 검찰이 뒤늦게 전문 부검의를 통해 피해아동의 사망원인을 재감정하겠다고 나섰지만, 장기가 파열될 정도의 심각한 충격으로 영아가 사망한 이번 사건에서는 처음부터 살인 혐의 적용을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뉴스에는 학대 사망사건 이라고 보도되지만 췌장이 절단될 정도의 충격으로 사망한 만큼 살인사건이라고 말하고 싶다"거나 "검찰이 쉽게 유죄를 받아 내려는 의도로 살인 혐의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만 적용한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 과거 유사사건 판결 보니…의도치 않았어도 사망 가능성 인식했다면 유죄

다른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서 사법부는 어떤 판단을 했을까?

복수의 아동학대 사망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가 사고사였다고 주장하거나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여러 정황에 비춰 피해자가 사망할 수도 있음을 학대의 가해자가 인식하거나 예상한 것으로 판단되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동거남 아들 여행 가방 감금·질식사'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는 지난해 동거남의 9살 아들을 7시간 동안 여행용 가방에 가두고, 그 위에서 뛰기까지 해 피해 아동이 숨지게 한 40대 여성 A씨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하고,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 아동이 "엄마, 숨이 안 쉬어져요", "숨, 숨"이라며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비명을 A씨가 들었던 점 등에 비춰 "피해자의 생명에 충분히 위협이 되고 사망이라는 결과 발생까지 야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다른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살인죄 유죄 판단을 내렸다.

인천지법 형사13부는 5살 의붓아들을 1m 목검으로 100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20대 계부 B씨에 대해 지난해 5월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가 반드시 사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고 해도 "여러 증인과 증거를 조사한 결과 피고인에게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손과 발이 묶인) 아들을 풀어주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아내 말을 듣고도 이를 무시하고 방치한 시점에는 '그대로 둘 경우 사망할 수 있다'고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살인 사건에서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로 인해 '상대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인식이 있으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 공보이사는 "똑같은 폭행을 가한다고 해도 영아를 상대로 하는 것은 그 정도가 다르다"며 "검찰이 전문 부검의에게 사망원인 재감정을 의뢰한 만큼 그 결과가 공소장 변경 여부에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동학대 피해자 국선변호사와 법무부 인권국 여성아동인권과장을 지낸 김영주 변호사는 "가해자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만큼 수사기관이 입증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성인이 아닌 아동에 대한 가해라는 점 등을 고려해 더 적극적으로 미필적 고의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피해아동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마음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피해아동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마음

(양평=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피해아동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추모 메시지와 꽃들이 놓여 있다. 2021.1.4 xanadu@yna.co.kr

◇ 현행법은 '살인+아동학대치사' 중복기소 허용…재판 중 공소장 변경해야

그렇다면 애초 검찰이 가해자인 양부모를 살인죄로 기소할 수는 없었을까?

범인이 피해자를 죽이겠다는 명확한 의도로 사망에 이를만한 위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을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기소 재량권을 가진 검찰로선 살인과 아동학대치사죄를 공소장에 병기할 수 있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형사소송법 254조 5항은 '공소장에는 수개의 범죄사실과 적용법조를 예비적 또는 택일적으로 기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대로 가해자 양부모에게 살인과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함께 적용해 기소했다면 비록 재판에서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아동학대치사죄로는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법원에 공소장이 제출돼 재판이 시작된 단계지만 검찰의 결단만 있다면 공소장의 죄명에 살인죄를 추가해 살인 혐의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삼을 수 있다.

형사소송법 298조 1항은 '검사는 법원의 허가를 얻어 공소장에 기재한 공소사실 또는 적용 법조를 추가, 철회 또는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으로 재판이 이미 시작됐더라도 법원의 허가만 있다면 다른 죄목을 공소장에 추가할 수 있는 것이다.

◇ '공소사실의 동일성' 인정돼야 공소장 변경 가능

단, 공소장을 변경할 때는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형소법 298조 1항 뒷 부분은 '공소장을 변경할 경우 법원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하지 아니하는 한도에서 허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작성된 공소장에 살인 혐의를 추가하면 공소사실의 동일성이 훼손될 수 있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관련해 대법원은 지난해 4월 판결에서 "공소사실의 동일성 여부는 사실의 동일성이 갖는 법률적 기능을 염두에 두고 피고인의 행위와 그 사회적인 사실관계를 기본으로 하되 그 규범적 요소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즉, 보호법익(법조항이 보호하려는 가치)이나 입법취지 등 규범적 측면에서 유사성이 있으면 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구체적 사례로 법원은 횡령 혐의로 작성된 공소장에 사기 혐의를 추가한 사건과 살인미수 혐의 공소장에 강간치상 혐의를 추가한 사건 등에서 '규범적 동일성'을 인정해 공소장 변경을 허가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살인죄와 아동학대치사죄는 인명 보호를 법익으로 삼는다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공소사실의 동일성 인정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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