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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산재보험]① 아파도, 다쳐도 신청조차 쉽지 않은 산재보험

송고시간2021-01-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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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편집자 주: 새해 벽두부터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이 잇따라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산재를 당하고도 회사 측의 압박과 복잡한 산재 심사 절차 등으로 인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비일비재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 사망률 1위라는 암울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회 제3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 최우수작인「불안정 노동자 두 번 울리는 산재보험」(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단비뉴스 특별취재팀 김정민, 윤상은, 윤재영, 이나경)을 재구성해 산재보험의 실태와 그 개선책 마련을 위한 4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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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신청에 수많은 증빙 자료 필요…준비에만 수개월 걸려

회사 측, 피해자에 책임 미루고 발뺌하는 일 빈번

노동계 "근로복지공단, 조사 과정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 해야"

[※편집자 주: 새해 벽두부터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이 잇따라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산재를 당하고도 회사 측의 압박과 복잡한 산재 심사 절차 등으로 인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비일비재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 사망률 1위라는 암울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회 제3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 최우수작인「불안정 노동자 두 번 울리는 산재보험」(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단비뉴스 특별취재팀 김정민, 윤상은, 윤재영, 이나경)을 재구성해 산재보험의 실태와 그 개선책 마련을 위한 4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산업재해, 그 피해 노동자의 증언 / 연합뉴스 (Yonhapnews)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uE1LLPjRs-g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공황장애 증상이 심해 매주 한 번 병원에 갈 때 빼고는 계속 집에만 있어요."

이진철(가명·51) 씨는 7년에 걸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얻었다. 지난 2013년 영월군 환경시설관리사업소에 무기 계약 공무직으로 입사한 그는 상급자 A씨로부터 지속적인 폭언·폭행 등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직장을 잃을까 봐, 정규직이 된 후에는 다칠 때마다 '치료비' 명목으로 돈을 내밀며 다독이는 A씨의 회유와 직장 내 폐쇄적 분위기 등으로 인해 괴롭힘을 신고하거나 산업재해보험 보상을 신청할 엄두를 못 냈다. 2018년 12월 영월군에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이씨가 아닌 이씨의 직장 동료였다.

불면증·공황발작 등의 증상이 생겨 병원을 찾은 이씨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아 지난해 8월 산재보험 보상을 신청했다. 이후 5개월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이씨는 여전히 산재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이씨를 괴롭혔던 공무원 A씨는 공무원의 성실의무 위반·품위 유지 의무 위반 사실이 인정돼 지난해 4월 영월군으로부터 감봉 1개월 처분을 받았다. 이후 노동조합의 고발로 검찰에 기소된 A씨는 횡령·폭행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단비뉴스와 인터뷰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도 피해지만, 산재 보상 신청 과정이 너무 어려웠다"라고 털어놨다.

7년간 이어진 직장 내 괴롭힘
7년간 이어진 직장 내 괴롭힘

A씨에게 폭행당하는 이씨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왼쪽)·새벽 근무 시간대 10분마다 울리도록 설정된 사이렌(오른쪽)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씨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은 뒤에도 바로 산재보험 보상을 신청할 수 없었다. 대법원 판례상 산재보험 보상을 받으려는 재해자는 스스로 업무와 재해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씨는 산재 보상 신청을 위해 8개월에 걸쳐 의사 소견서, 피해진술서, 동료 진술서, 영월군과의 합의서 등을 준비해야 했다.

산재 보상 신청을 위해 입증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은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공황 증상 치료와 진단서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그간 괴롭힘당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 힘들어 눈물만 흘리기도 했다.

동료 진술서도 확보하기 어려웠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대부분의 동료는 "A씨의 괴롭힘에 대해 보고 들은 진술서를 써달라"는 이씨의 요청을 거부했다. A씨와 계속 직장에서 마주해야 해서 부담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환경시설관리사업소에서 퇴직한 이씨의 옛 동료와 재직자 중 소수만 진술서를 써줬다.

직장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얻었지만, 산재 보상은 요원
직장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얻었지만, 산재 보상은 요원

5개월 넘게 산업재해 보상 승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이진철(가명) 씨가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단비뉴스 윤재영]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면 고용주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하는 조치인 피해자 구제에도 6개월 가까이 걸렸다. 이씨의 피해 구제를 도운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강원경북충북지역본부는 보상 및 피해구제 협의가 진척되지 않아 영월군에 치료비 지급, 병가, 가해자 격리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와 천막농성까지 벌어야 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제기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영월군은 노조 측과 이씨에 대한 치료비 부담과 유급 병가 제공에 합의했다. A씨와 이씨의 직장 내 분리에도 5개월이 걸렸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질병을 얻었다는 사실을 영월군으로부터 인정받기까지 무려 반년이 걸린 것이다. 영월군은 비슷한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해 7월 공무직 직원들의 근로 환경을 담당하는 공무원 복지팀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런 과정을 겪고 나서야 지난해 8월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보상을 신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복잡한 심사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심사 진행 속도마저 느려 공단은 산재를 신청한 지 3달이 지난 11월이 돼서야 이씨가 일하던 작업 현장을 조사했다. 최근 이씨는 공단으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심사가 지연되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씨는 "산재 승인까지 (신청일로부터) 최소 8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다"며 "당장 산속으로 들어가 혼자 살고 싶지만, 심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못 떠나고 있다"고 토로했다.

멀고도 험한 산업재해 인정
멀고도 험한 산업재해 인정

한 사업주가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보험가입자 의견서. 해당 근로자가 평소 볼링, 탁구, 등산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며 근로자의 재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사진=단비뉴스 윤재영]

한 대형 제철소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한민수(가명·29) 씨는 허벅지 고관절 근육이 찢어져 지난해 4월 산재보험 보상을 신청했다. 지난 6년 동안 한씨의 주된 업무는 70∼100㎏에 달하는 철스크랩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진단받은 소견서를 근거로 산재보험 보상을 신청했다.

한씨의 신청서를 제출받은 근로복지공단은 절차에 따라 산재보험 가입자인 한씨의 회사에 관련 의견 제출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산업재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한씨가 사내 헬스장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다쳤을 수도 있고, 다치기 전 평소에 연장근무를 스스로 많이 하는 등 사업주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단은 한씨에게 사측의 산재 불인정 의견을 전하며 재해 사실 증명을 위한 추가 서류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업무 환경과 부상의 인과관계를 보여주기 위해 100㎏에 상당하는 철스크랩을 옮기는 작업 재연 영상과 사진, 10년 치 건강보험납부 명세, 근로 확인 서류, 진단서 등을 제출했다.

그러나 사측은 다른 작업 영상을 한씨의 업무 환경이라며 공단에 제출했다. 평소 한씨가 옮기던 70∼100㎏의 철스크랩이 아닌 가벼운 물체를 옮기는 모습이었다. 산재 승인 여부를 심사하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 지난해 7월 출석한 한씨는 전문가 10여 명 앞에서 이에 대해 해명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씨는 산업재해 보상 신청을 낸 지 4개월이 지나서야 보상을 승인받을 수 있었다.

사용자 측이 피해 노동자의 생활을 문제 삼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불인정 의견을 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해당 제철소 비정규직지회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많은 하청업체들이 공단의 산재보험 가입자 의견 제출 요구에 "평소 (재해자가) 볼링, 탁구, 등산을 활발하게 한다", "(과거) 6년간 운동선수로 생활했다"는 등 발뺌하는 의견을 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많은 노동자가 출퇴근 시간까지 고려하면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노동 강도도 굉장히 강하다"며 "간혹 취미 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재해와 업무 관련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까다로운 절차와 오랜 승인 대기에 산재 보상 신청 포기하기도
까다로운 절차와 오랜 승인 대기에 산재 보상 신청 포기하기도

산업재해 피해자들의 산재 보상 신청 서류를 모아 놓은 서류철. [사진=단비뉴스 윤재영]

지난 2019년 8월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이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 보상 신청을 낸 재해자 중 약 40%가 재해를 당한 지 60일이 넘어서야 산재 보상 신청을 냈다고 한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질병·부상 등을 진단받고도 산재 보상 신청을 내지 않은 재해자 중 75.8%는 '산업재해 보상 불승인에 대한 두려움'을 그 이유로 꼽았다.

'절차상 까다로움'을 꼽은 재해자는 82.5%, '회사 및 주변인의 만류'를 꼽은 재해자는 46%에 달했다.

이는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재해를 입더라도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인 산업재해 보상을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현실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박다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산업재해보험이 제대로 된 사회보험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공단에 조사권이 있는 만큼 공단이 적극적으로 구체적 실체를 밝히는 노력을 해야만 재해자에게 불리한 산업재해보험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65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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