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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산재보험]③ 산재신청 했다고 왕따·징계 압박…피해자들의 눈물

송고시간2021-01-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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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영남지역의 한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용접사로 일하는 이병규(가명·50) 씨는 2019년 10월 작업 도중 새끼발가락이 부러져 산업재해보험 보상을 신청한 뒤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이씨 회사의 노조 부지회장은 "산재 신청을 한 직원이 퇴사하게 만들려는 사측의 노골적인 보복 행위"라며 "이런 분위기 때문에 결국 산재 피해자들이 회사 뜻대로 공상 처리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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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신청 후 회사 복귀했더니 투명인간 취급하고 징계 운운

하청업체, 원청과 재계약 시 불이익받을까 산재 처리 기피

턱없이 적은 근로감독관 숫자·불충분한 직무교육도 문제로 꼽혀

산업재해, 그 피해 노동자의 증언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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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E1LLPjRs-g

가스를 이용한 철강 절단 작업
가스를 이용한 철강 절단 작업

[사진=단비뉴스 특별취재팀]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사장이 제가 산재를 신청하니까 미워서 병문안을 안 왔다고 하네요. (회사로) 돌아오니까 직장 동료들이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더라고요."

영남지역의 한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용접사로 일하는 이병규(가명·50) 씨는 2019년 10월 작업 도중 새끼발가락이 부러져 산업재해보험 보상을 신청한 뒤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사고 직후 넉 달간 병원 치료를 받고 회사로 복귀했지만, 회사 분위기는 냉랭했다. 동료들은 이씨에게만 회식 장소를 알려주지 않았고, 말을 걸어도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회사는 이씨에게 적응 기간을 가지라며 초과근무를 못 하게 했다. 야근과 주말 근무를 못 하게 된 이씨는 다치기 전보다 월급이 50만~70만원가량 줄었다.

이씨는 회사의 '공상 처리' 제안을 거절해 자신이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했다. 공상 처리는 재해 발생 시 근로자의 치료비 등을 합의금 명목으로 사업주가 직접 보상하는 것을 말한다.

'산재 처리'를 하면 산재로 인한 질병이 재발했을 때 재요양을 승인받을 수 있고, 회사가 부도나거나 폐업을 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공상 처리를 하면 재요양 승인을 받기 어렵고, 장해가 남아도 장해보상금을 제대로 받기 힘들다.

이씨 회사의 노조 부지회장은 "산재 신청을 한 직원이 퇴사하게 만들려는 사측의 노골적인 보복 행위"라며 "이런 분위기 때문에 결국 산재 피해자들이 회사 뜻대로 공상 처리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이씨에게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으며, 이씨가 주장하는 금전적 불이익이나 따돌림은 오해다"며 "대화로 원만히 오해를 풀었고, 이씨는 지금까지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고 해명했다.

산업재해 (CG)
산업재해 (CG)

[연합뉴스TV 제공]

1인 이상 근로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은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해 4일 이상 요양(치료)이 필요한 경우 산재 신청을 해야 한다. '산업재해보험'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해 사업주가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사회보험이다.

근로자가 산재보험을 통해 보상받게 되면, 보험가입자인 사업주는 근로기준법상 보상책임이 면제된다. 하지만 회사는 법적 처벌이나 작업환경 개선 문제 등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산재 처리보다는 공상 처리를 하려고 한다.

원청 회사와의 계약 유지가 중요한 하청업체의 경우 '사고다발 업체'로 찍히면 재계약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공상 처리를 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산재 위험 직종 실태조사'에서 제조업 하청업체 노동자의 산재 발생 시 산재보험 신청 비율은 7.9%에 불과했다. 인권위는 하청업체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원청이 벌점을 부여하고,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업체를 교체하는 관행이 공상 처리와 산재 은폐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중부지역의 한 대형 철강회사 하청업체에 다니는 정성국(가명·34) 씨는 산재 신청을 했다가 회사로부터 징계를 당할 뻔했다. 정씨는 지난해 9월 산소 절단기로 철판을 절단하는 작업을 하다가 미끄러져 오른쪽 무릎과 허벅지에 전치 2주의 상처를 입고, 왼쪽 손바닥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정씨가 산재 처리를 하려고 하자 사측은 이를 막으려 했다고 한다.

사측에서는 정씨에게 "공상 처리를 하면 우리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다"며 "후유증이 생겨도 다 처리해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씨는 사측 제안을 거절했고, 사고 후 열흘 뒤 산재 신청을 해 승인을 받았다.

이후 정씨가 2주 뒤 회사로 복귀하자 사측은 정씨를 상대로 '산재 신청 사고조사위원회'를 열었다.

정씨는 "명목은 사고조사위원회였지만 마치 징계위원회가 열린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며 "실제로 '본인 실수로 다쳐서 (우리 회사가) 안전 포상을 받기 위한 무재해 지속 일수가 깨졌는데,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고도 반성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징계위원회라도 열어 가벼운 징계라도 줘야겠다'는 말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산업재해가 일어나지 않는 곳이니 산업재해와 관련해서는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정씨의 사례에서 나타난 '무재해 지속 일수'는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못 하게 막는 한 요인으로 꼽힌다.

정씨 회사의 원청 회사처럼 '무재해 포상 제도'를 시행하는 기업이 꽤 있다. 일정 기간 재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하청 업체에 포상금을 주는 제도다.

이 회사의 안전보건진단 조사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무재해 포상 제도로 인해 사고가 발생해도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재해 달성 포상금 지급 공고
무재해 달성 포상금 지급 공고

(서울=연합뉴스) 박성국씨 회사에 붙은 무재해 달성 포상금 지급 방안 공고 글.[사진 = 단비뉴스 특별취재팀]

정씨의 회사도 자체적으로 직원들에게 무재해 포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목표 기간을 정해두고 재해가 일어나지 않으면 조별로 포상금을 준다. 재해가 발생한 분기에는 포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고, 조원 중 한 사람이라도 산재 신청을 해 승인되면 다음 분기 포상금의 50%를 깎는다. 이는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산재 신청을 못 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산재 처리를 했던 정씨가 속한 조는 포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같은 기간에 손가락 골절을 당해 공상 처리를 한 근로자가 있는 조는 포상금을 받았다. 산재 처리 여부가 포상 기준이 된 셈이다.

이 회사 근로자 최모 씨는 "산재 신청을 해 동료들까지 포상금을 받지 못하게 되면 해당 직원은 심한 압박을 받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회사에서 직원들의 산재 신청을 꺼리다 보니 산재 발생을 은폐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7월까지 4년 7개월간 적발된 산재 발생 미보고 및 은폐 사례는 3천841건에 달한다. 업무상 사고를 산재 보상보험이 아닌 건강보험 급여로 처리해 적발된 경우가 1천484건(38.6%)으로 가장 많았다.

고용주는 직원이 산재 처리를 하면 산재보험료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를 기피하기도 한다. 산재 발생 건수에 따라 보험료율을 차등 적용하는 '개별실적 요율제' 때문이다. 산재에 대한 회사의 책임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보험료가 정해지는 게 아니라, 단순 발생 건수로 보험료가 오르내리기 때문에 기업은 산재 처리를 회피하게 된다는 얘기다.

처참한 크레인 사고 현장
처참한 크레인 사고 현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산재 피해자가 산재보험으로 의료비 등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면 이를 건강보험기금에서 부담하게 된다. 사업주가 냈어야 할 산재보험료를 국민이 나눠 부담하는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 규모를 최소 6천135억원에서 최대 4조2천673억원으로 추산했다.

근로감독관 수가 턱없이 부족한 타세 회사의 산재 은폐를 막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안전 분야 근로감독관 수는 지난해 4월 기준 581명이고, 근로감독관 1명이 담당하는 사업장은 4천600곳에 달한다. 유성규 노무사는 "근로감독관 인력이 부족한 탓에 사고가 자주 나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감독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근로감독관의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짧은 직무교육 시간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신임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은 2주 동안 산업안전보건 직무교육을 받는다. 기존 근로감독관의 경우 중장기 교육계획 없이 연간 20∼30시간 이수만 규정해 놓았다. 일본, 미국, 영국, 유럽 등에서 안전보건 관련 전공자를 채용해 6개월∼2년가량 심도 있게 교육하는 것과 대비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진국에서 산재 발생 시 해당 기업에 대한 제재는 예방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을 때 가한다"며 "산재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별도로 이러한 기업의 산재 예방 조처를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 제3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 최우수작인「불안정 노동자 두 번 울리는 산재보험」(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단비뉴스 특별취재팀 김정민, 윤상은, 윤재영, 이나경)을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

fortu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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