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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더스] 중원의 활재신 강백만

송고시간2021-01-3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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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허난 궁이의 강백만장원 전경
중국 허난 궁이의 강백만장원 전경

[최종명 제공]

1847년 청나라 도광제 시대였다. 75세 생일잔치를 열었다. 일가친척과 동네 사람을 모두 초청했다. 축하 인사를 받고 술잔이 세 순배 돌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리지만 단호하게 부채 장부와 차용증서를 불태웠다. 이어 거금을 출연해 구휼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중원 일대에 파발마보다 빠르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백만장자라는 뜻의 '백만부옹' 강응괴가 그 주인공이다.

중국의 3대 부호 '활재신' 사당
중국의 3대 부호 '활재신' 사당

[최종명 제공]

◇허난 궁이의 강백만장원

허난의 성도 정저우와 고도 뤄양 사이에 궁이가 있다. 역에서 서쪽으로 10리쯤 가면 산자락 아래 웅장한 강백만장원이 나타난다. 강백만은 강응괴이자 강씨 상인 집안을 뜻한다. 6만5천㎡의 면적에 가옥이 53채로 1천300칸이나 된다. 산에 지은 동굴 집도 73채다.

어마어마한 규모라 다 둘러보는 데 반나절도 더 걸린다. 허난의 약칭을 '예'라고 한다. 예의 상인을 대표하는 저택이다.

명나라 초인 14세기 후반 강씨 조상은 객잔 운영을 시작했다. 12대에 이르러 지금의 장원을 건축했다. 14대 강응괴에 이르러 거상이 됐다. 20세기 민국시대까지 면모를 유지했다. 3대를 지키기 어렵다는 부를 수백 년 지켰으니 아무리 봉건 시대지만 대단하다.

강응괴는 두 가지 사업으로 큰 부를 쌓았다. 하나는 포목 사업 독점이다. 시안 부근에서 품질이 뛰어난 면화를 생산해 전국 시장의 반을 점유했다. 다른 사업은 포기하더라도 포목 사업은 뺏기지 말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였다.

또 하나는 군수품 공급이었다. 당시 백련교 민란이 9년이나 전국을 휩쓸었다. 군대 식량과 장비를 제때 보급할 상단으로 선정됐다. 장강 최대의 물류 상단이었다. 지휘함 한 척이 자리 잡고 있었을 정도다. 매년 초봄 함선에 모여 1년 사업을 검토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회의를 열었다. 수로가 곧 '재로'라는 인식을 잘 보여준다.

청나라 시대의 대부호 강응괴가 물류 상단을 지휘했던 모습
청나라 시대의 대부호 강응괴가 물류 상단을 지휘했던 모습

[최종명 제공]

1900년 서태후와 광서제의 행차를 담은 사진
1900년 서태후와 광서제의 행차를 담은 사진

[최종명 제공]

◇살아 있는 재물의 신

1900년 서양 8개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탈하자 서태후와 광서제가 시안까지 도피했다. 이듬해 귀경길에 궁이를 지났다. 100만 냥을 투자해 행궁을 신축했다. 가마를 영접하고 '만한전석'을 대접했다. 만주족과 한족의 대표 요리로 호화 연회를 하니 서태후가 크게 만족했다. '이런 산골에 갑부가 있는지 몰랐다'며 떠날 때 100만 냥을 기부했다.

3명의 '활재신'(活財神)을 봉공하는 사당도 있다. 당대에 '살아 있는 재신'이라 추앙받던 상인이다. 중원의 강백만, 강남의 '심만삼', 산동의 '완자란'이다. 지금도 민간에선 3명이 등장하는 민화를 걸어놓는다. 한 세대 반짝하는 졸부가 아니라 대를 이은 거상이니 재물을 관장하는 신이라 믿는 것이다.

심만산이 명나라 시대, 완자란이 청나라 시대를 대표한다면 강백만은 명나라, 청나라, 민국시대까지 18대에 걸쳐 상도를 지켰다. 중원의 활재신이자 최고의 상인으로 불릴 만하다. 하지만 일본군이 침공하자 가세가 기울었다. 18대손 강자소는 동북항일의용군에 종군했다. 고향에 돌아와 가난한 이웃 농가를 도와 구제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 강씨 상인 집안 '강백만'의 가훈인 ‘유여’ 편액
중국 강씨 상인 집안 '강백만'의 가훈인 ‘유여’ 편액

[최종명 제공]

◇강백만의 가훈 '유여'

강백만을 칭찬하는 편액이 무수히 많다. 장원에 유난히 눈을 사로잡는 편액이 하나 있다. 궁이 출신으로 청나라 동치제시대에 장원 급제한 '우선'의 필체다. 강백만의 가훈인 '유여'(留餘)다. 여지를 남겨두란 뜻이다.

'남겨둔 솜씨가 있어야 새로운 창조가 가능하며, 남겨둔 녹봉이 있어야 조정에 돌려줄 수 있으며, 남겨둔 재물이 있어야 자손에게 건넬 수 있다'고 깨알같이 쓰여 있다. 장사꾼이라는 욕을 듣지 않으려면 상인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사치의 가훈이 교훈인가? 게다가 봉건 왕조 시대 중국 상인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인가? 질문을 반복한다. '백만'의 지금 의미는 재벌이다. 공동체에 은혜를 베풀고 '함께 살자'는 구제의 손길을 내민 재벌 강응괴는 2년 후 77세의 나이로 재신이 돼 승천했다.

최종명
최종명

'13억 인과의 대화' '민, 란' 저자 | 중국 현장 취재 16년, 여행기(7권) 집필 중 | '인문학 중국 발품' 강의 및 중국 문화여행 동행 | www.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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