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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고글 필수…내일도 모레도 승리할 때까지 쿠데타에 저항"

송고시간2021-03-0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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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미얀마 양곤에 사는 노엘 린(23)씨는 지난 4일 연합뉴스 특파원과 한 전화 통화에서 전날( 3일) 오후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지난달 28일 시위대 중 첫 사망자가 나온데 이어, 쿠데타 이후 최악의 유혈 참사가 발생한 3일에는 군경의 무차별 발포로 최소 6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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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권 기자
김남권기자

미얀마 양곤 시위참여 20대 전화인터뷰…"엄마도 '걱정말고 시위 나가라' 해"

"사람이라 사망 소식 들으면 두렵긴 하지만 군정 아래 내 미래가 더 두려워"

양곤 시내에서 거리 시위를 하고 있는 노엘 린씨(앞줄 까만 옷)
양곤 시내에서 거리 시위를 하고 있는 노엘 린씨(앞줄 까만 옷)

[노엘 린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양곤의 다른 지역에서 시위하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슬프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했어요"

미얀마 양곤에 사는 노엘 린(23)씨는 지난 4일 연합뉴스 특파원과 한 전화 통화에서 전날( 3일) 오후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는 지난달 28일 시위대 중 첫 사망자가 나온데 이어, 쿠데타 이후 최악의 유혈 참사가 발생한 3일에는 군경의 무차별 발포로 최소 6명이 숨졌다.

사망자가 발생한 노스오클라파에서는 군경이 기관단총까지 사용했다는 사진과 동영상도 네티즌들의 고발로 알려졌다.

노엘 린씨는 지난달 28일에도, 그리고 3일에도 양곤 시내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기자가 큰일 날 뻔했다고 묻자 그는 "양곤에서는 흘레단, 흘라잉 그리고 산차웅 등에서 주로 시위가 열렸고, 저도 당시 산차웅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면서 "사망자는 노스오클라파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vhn0MsscqEA

그는 이에 대해 "평소 시위가 많이 열리는 이들 지역에는 언론도 많고 의료진이나 구급차 등도 많다"며 "그런데 노스오칼라파는 시위가 자주 열리던 곳이 아니다보니 언론도 많지 않아 당시 상황이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던 상황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군경이 상대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덜 받는 곳에서 만행을 저질렀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노스오클라파 참사 소식을 들었을 때 심정에 대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군인과 경찰이 너무 심하게 총을 쏴서 너무 슬펐고,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어제(3일)는 최악의 날이었다. 온 미얀마 국민이 슬프고 서운하고 답답해지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안 좋은 날이었다"고 말했다.

노엘 린씨는 양곤도 이제는 시위가 격렬하다고 전했다.

그는 "쿠데타 이후 초반에는 양곤에서 평화롭게 이곳저곳에서 시위를 진행했고, 그때는 군인과 경찰들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면서 "특히 대사관이나 유엔 사무소 앞에 가서도 시위를 많이 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거리 시위에 나선 노엘 린씨(사진 오른쪽)
거리 시위에 나선 노엘 린씨(사진 오른쪽)

[노엘 린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그런데 왜 그런지 '22222(2021년 2월22일을 의미) 총파업' 이후에는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면서 "군경이 강하게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22222 총파업' 당시 양곤을 포함해 미얀마 전역에서 수 백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쿠데타애 저항하는 민심을 전세계에 잘 보여줬다.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는데도 시위에 계속 참여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저는 끝까지 이 싸움에 참여하기로 친구들, 비슷한 또래 친척들과 약속했다"면서 "이 싸움은 우리가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해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계속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군부 탄압이 두렵기보다 군정 아래에서 제 미래가 어두워지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그래서 싸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엘 린씨는 군경의 폭력 진압이 격화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이제 시위에 나갈 때 보호장비가 필수품이 됐다고 전했다.

그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헬멧과 고글, 그리고 정화장치가 있는 마스크 등을 쓰고 나간다"고 말했다.

애초 양곤에서 시위할 때에는 모자만 쓰고 나갔다고 한다. 당연히 고글도 없었다.

그러나 '22222 총파업' 이후 군경이 최루탄과 섬광수류탄 그리고 고무탄 등을 무차별적으로 발사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헬멧은 흔히 공사장에서 쓰는 얇은 플라스틱 재질이어서 보호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물론 총(실탄)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는 못한다"면서도 "그러나 경찰이 쏘는 새총이나 최루탄이나 고무탄 등으로부터 일부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시위 도중 붙잡혔을 때 군경이 경찰봉으로 때리거나 머리를 잡고 끌고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에도 헬멧이 있으면 피해가 덜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머니도 걱정하신다. 그런데도 제게는 '걱정하지 말고 시위에 나가라'고 하신다. 당신이 집에서 (나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양곤 상황에 대해 "이제 양곤에서는 집에 있더라도 불편하고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전했다.

군부가 현재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통행금지 조치를 내렸고, 이후에 돌아다니다가는 총에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통행금지 시간이 오후 8시부터 오후4시까지가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최근에 이 시간이 바뀌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노엘 린씨는 이날(5일) 도 계속 시위에 나갈 거냐는 기자 질문에 "내일도 갈거고 계속 갈 거다. 당연히…승리할 때까지"라고 강조했다.

sout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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