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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줘 고맙습니다" 그리스 참전용사 후손의 감사 서신

송고시간2021-05-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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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석 주그리스 대사, 17년 전 만난 노병 추모하는 언론 기고

참전용사 아들, 기고문 보고 대사에 이메일 보내…"감동적이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알렉산드로스 카라차스씨. 왼쪽 작은 사진의 노란색 원 안 인물은 전쟁 당시 카라차스씨를 구한 16세 한국 군무원. [주그리스 한국대사관 제공.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한국전 참전용사인 알렉산드로스 카라차스씨. 왼쪽 작은 사진의 노란색 원 안 인물은 전쟁 당시 카라차스씨를 구한 16세 한국 군무원. [주그리스 한국대사관 제공.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아직 부친을 기억해주다니 감동적이고 고맙습니다."

17년 전 처음 만난 그리스 한국전 참전용사와의 추억을 간직한 한국 대사에게 유족 측이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전해와 잔잔한 울림을 준다.

임수석(53) 주그리스 대사는 최근 현지 최대 일간지 '카티메리니'(Kathimerini)에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노병의 눈물과 한국-그리스의 우정'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임 대사는 기고문에서 서기관 시절인 2004년 5월 업무차 그리스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만난 한국전 참전용사 알렉산드로스 카라차스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카라차스씨는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주재한 그리스 참전용사들과의 오찬에서 임 서기관 맞은편에 앉아 죽음의 문턱까지 간 한국전 당시 경험담을 들려줬다.

한국전 참전 당시 카라차스씨 모습. [주그리스 한국대사관 제공.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한국전 참전 당시 카라차스씨 모습. [주그리스 한국대사관 제공.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그는 1951년 10월 강원도 철원 인근 '스코치 313' 고지에서 밀려오는 중공군의 남하를 막아내던 중 포탄 파편에 맞아 복부를 심하게 다쳤다. 피를 쏟으며 정신을 잃은 그를 구한 이는 다름 아닌 16세 나이의 한국 군무원이었다.

이 어린 군무원은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현장에서 카라차스씨를 끌어내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이후 카라차스씨는 일본으로 후송돼 7차례 수술을 받았고,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4차례 더 수술대에 올랐다.

카라차스씨는 마주한 임 서기관에게 그 한국인 군무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아 오찬에 올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카라차스씨(오른쪽)와 한국인 군무원 '김씨'. [주그리스 대사관 제공.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카라차스씨(오른쪽)와 한국인 군무원 '김씨'. [주그리스 대사관 제공.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임 대사는 기고문에서 카라차스씨의 얘기를 떠올리며 "그리스 참전용사의 헌신 덕분에 오늘의 한국이 있게 된 것인데 오히려 이분은 그 한국인에 대한 고마움을 평생 간직하고 계셨다"며 "인류 문명의 요람으로만 생각했던 그리스가 내게 준 첫인상은 노병의 눈물에서 묻어나온 인간적인 감동이었다"고 썼다.

그는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18년 다시 그리스 땅을 밟았다. 이번에는 그리스 주재 대사 신분이었다.

그는 부임 이후 카라차스씨를 다시 만나고자 수소문했지만 3년 전인 2015년께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해야 했다. 임 대사는 대신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카라차스씨를 직접 만나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카라차스씨 아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임수석 대사(왼쪽). [임수석 대사 페이스북 갈무리.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카라차스씨 아들과 오찬을 함께 한 임수석 대사(왼쪽). [임수석 대사 페이스북 갈무리.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임 대사가 양국 수교 60주년을 맞아 언론 기고를 통해 다시 상기시킨 카라차스씨 이야기는 그 유족에게 '한국은 참전용사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됐다.

카라차스씨 아들은 임 대사의 글을 접하고서 "매우 감동했다"며 직접 감사의 마음을 담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당신의 글을 읽고서 이번에는 내가 눈물을 흘렸다"며 "내 아버지를 기억하고 존경심을 보여준 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전했다.

임 대사가 기고문에서 작고한 자신의 부친 역시 한국전 참전용사라고 언급한 점을 들어, 그는 "우리 둘 다 자유라는 최고의 가치를 위해 싸운 아버지를 모셨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을 이어가는 것은 무겁지만 영예로운 의무"라고 적었다.

그리스군 한국전 참전기념비. [여주시 제공.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그리스군 한국전 참전기념비. [여주시 제공.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전쟁의 상흔을 딛고 독일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카라차스씨는 생전 그리스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그리스인들이 한국 땅에서 치른 희생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1974년 여주에 세워진 그리스군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설계하고 건립 공사 현장 감독을 맡기도 했다.

카라차스씨의 뜻을 이어받아 임 대사도 그리스 참전용사들의 헌신이 잊히지 않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현재의 아테네 전쟁박물관 내 한국전 전시관 모습. [임수석 대사 페이스북 갈무리.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현재의 아테네 전쟁박물관 내 한국전 전시관 모습. [임수석 대사 페이스북 갈무리.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사진 몇 장으로 빈약하게 운영돼온 아테네 전쟁박물관 내 한국전 전시관 확충·개선 사업을 성사시킨 것도 그러한 노력의 결실 가운데 하나다.

임 대사는 이 사업을 마무리 짓고자 관계 장관을 포함해 40여 명을 만나 설득했다고 한다. 전시관은 실물 전시 시설과 영상 장비 등이 설치되는 등 새롭게 단장된 모습으로 내달 중순께 일반인에 공개될 예정이다.

3년 임기를 마치고 내달 초 한국으로 돌아가는 임 대사는 연합뉴스에 "이미 세상을 떠나신, 그리고 생존해있는 고령의 참전용사들의 헌신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리스는 한국전이 발발하자 미수교 상태임에도 연인원 1만581명의 병력과 수송기 7대를 보내 한국을 도왔다. 당시 그리스군 인명 피해는 전사자 186명, 부상자 610명이다.

임수석 대사가 지난 3월 10일(현지시간) 한국-그리스 수교 60주년 기념 로고 발표 행사에서 축사하는 모습. [주그리스 한국대사관 제공.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임수석 대사가 지난 3월 10일(현지시간) 한국-그리스 수교 60주년 기념 로고 발표 행사에서 축사하는 모습. [주그리스 한국대사관 제공. DB 저장 및 재배포 금지]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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