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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한국의 고개 ② 구주령

송고시간2021-06-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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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험준한 고개를 사이에 두고 살아온 울진 바닷가와 영양 골짜기에는 숨은 매력과 이야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내륙과 내륙을 잇는 고개는 숱하게 많지만, 내륙과 바닷가를 잇는 고개는 많지 않다.

해안 오지였던 경북 울진과 내륙 오지였던 영양 사이에는 구주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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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게꾼 오가던 '한국의 차마고도'

(울진·영덕=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농경사회에서 고개는 외부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고개는 멀리 떠난 그리운 임을 기다리던 장소이자, 여우나 산적이 출몰하는 곳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수많은 이야기의 배경이 됐다.

험준한 고개를 사이에 두고 살아온 울진 바닷가와 영양 골짜기에는 숨은 매력과 이야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구주령 고개 정상에서 울진군 쪽을 바라본 모습. 바지게꾼들은 해산물을 지고 내륙의 장터로 가기 위해 이 길을 넘어 다녔다. [사진/성연재 기자]

구주령 고개 정상에서 울진군 쪽을 바라본 모습. 바지게꾼들은 해산물을 지고 내륙의 장터로 가기 위해 이 길을 넘어 다녔다. [사진/성연재 기자]

◇ 바다에서 내륙으로

내륙과 내륙을 잇는 고개는 숱하게 많지만, 내륙과 바닷가를 잇는 고개는 많지 않다. 해안 오지였던 경북 울진과 내륙 오지였던 영양 사이에는 구주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이곳을 통해 '바지게꾼'으로 불리던 보부상들이 바다에서 생산된 소금, 생선, 미역 등 해산물을 지게에 지고 오르내렸다. 험준한 산길의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다리를 짧게 자른 지게를 바지게라고 불렀다.

경북 울진의 평해, 후포, 기성 등지에서 잡힌 해산물을 내다 팔려면 가까운 영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오가던 고갯길을 현지인들은 구질령이라고 불렀다. 한국의 차마고도로 불릴 만큼 험했다.

구슬 9개를 꿰놓은 형상이라는 스토리텔링 때문에 1999년 구슬 '주'(珠)자가 들어간 구주령이라는 표지석이 고갯마루에 세워지게 됐다. 이때부터 구주령이라는 이름이 정착됐다.

울진과 내륙 지방 사이에는 모두 세 개의 고개가 있었는데 구주령은 그중 가장 아래쪽 고개다.

최근 들어 바지게꾼들의 길로 알려진 십이령 옛길만큼 통행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울진 남쪽의 후포장, 평해장, 기성장의 물산들이 보부상들을 통해 저 멀리 내륙으로 유통됐다.

주로 해안지역의 가난한 바지게꾼들이 생선, 미역, 오징어, 문어 등을 지게에 지고 구주령을 넘어 영양장을 찾았다.

이들은 구질골 초입인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의 주막에 모였고, 20∼30여 명씩 무리를 지어 구주령 정상을 넘어 영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해산물을 쌀, 보리, 콩, 감자, 고추, 좁쌀, 마늘 등과 같은 양식과 바꿔 바닷가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번 답사에는 최근 '영덕·봉화·울진 옛길을 걷다'를 펴낸 박강섭 작가와 동행했다.

그는 "보부상이 다니던 길은 새로 난 길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지금은 다니기 힘들 정도로 나무가 우거졌다"면서 "옛길을 따라가다 보면 함석지붕을 한 옛 주막 건물이 하나 남아있다"고 말했다.

구주령 고개에 세워진 옥녀당 [사진/성연재 기자]

구주령 고개에 세워진 옥녀당 [사진/성연재 기자]

경상북도에서 이 길을 정비할 계획이라는 소식에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마산과 금장산 사이에 있는 구주령 고갯마루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겹겹이 쌓인 산들이 한눈에 잡힌다.

그 아래쪽에 수직에 가깝게 깎아지른 절벽이 보인다. 절벽 바로 밑에 예전 보부상들이 오르내리던 길이 있다. 왜 이곳을 한국의 차마고도라 불렀는지 이해가 됐다.

협곡 아래쪽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 무거운 짐을 옮기던 바지게꾼들이 목을 축이던 곳이다.

◇ 옥녀 전설

구주령 정상에서는 옥녀의 전설을 만날 수 있다. 고려 시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까지 피신 온 공민왕과 시녀 옥녀와의 전설이 내려온다.

공민왕이 옥새를 뺏기지 않기 위해 옥녀에게 옥새를 맡기자 옥녀는 계곡 바위틈에 옥새를 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조선 인조 때 영해 부사의 딸 이름이 옥녀였는데, 영양 지역을 다녀오던 옥녀가 구주령에서 병으로 객사했다고 한다.

주민들이 꽃다운 나이에 죽은 옥녀의 넋을 달래기 위해 사당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바다 위에 세워져 시원한 전망을 주는 등기산 스카이워크 [사진/성연재 기자]

바다 위에 세워져 시원한 전망을 주는 등기산 스카이워크 [사진/성연재 기자]

◇ 후포와 평해

후포는 정어리, 꽁치, 오징어 등을 잡던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1970년대 원양어업이 발달하고 이곳에서 잡힌 꽁치가 원양어선의 미끼로 쓰이게 되면서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에는 700가구나 되는 큰 동네로 발전했다. 후포는 '지나다니는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유한 어촌이 됐다.

그러나 이후 저렴한 일본산 꽁치가 수입되고 꽁치 수요가 줄면서 지역 경기는 쇠퇴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부터 대게잡이가 늘기 시작하면서 후포는 옛 명성을 되찾았다.

후포항은 게와 생선을 수확한 어부들과 관광객들로 언제나 떠들썩하다. 특히 후포면에는 등기산공원에 에메랄드빛 바다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한 '등기산 스카이워크'가 들어서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

대게가 먹고 싶다면 수협 앞 한마음광장에 주차한 뒤 주변에 늘어선 대게 전문점을 찾아가면 된다. 대게뿐 아니라 갖가지 생선회를 바리바리 사가지고 가는 사람도 많다.

한적한 평해 버스터미널 [사진/성연재 기자]

한적한 평해 버스터미널 [사진/성연재 기자]

2일과 7일에 열리는 평해장은 울진 남부의 대표적인 오일장이었다. 관동팔경 중 최남단인 월송정과 직산항이 가깝고 바다로 흐르는 남대천을 통해 어선들도 드나들 수 있어 구주령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장이 바로 평해장이었다.

그러나 평해장은 그 명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지금은 인근에 있는 커다란 하나로 마트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초라하게 명맥만을 이어온 평해장은 바닥이 아스팔트로 포장된 데다 지붕도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울진에서 구주령으로 올라가다 보면 백암온천 못미처 광품폭포를 만날 수 있다. 폭포 아래 맑은 계곡물은 최근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광품계곡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백암온천이다. 일제강점기 백암온천이 개발되면서 구주령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뚫렸다.

백암온천은 무색무취한 53℃의 온천수에 나트륨, 불소, 칼슘 등 신체에 이로운 성분이 가득한 유황온천으로 이름이 자자하다.

◇ 인제 자작나무 숲 저리 가라…죽파리 자작나무 숲

죽파리 자작나무숲 [사진/성연재 기자]

죽파리 자작나무숲 [사진/성연재 기자]

울진에서 고개를 넘으면 바로 영양군 수비면이다. 수비에서 최근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한 비경이 있다. 수비면 죽파리 자작나무숲이다.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숲에 비하면 이곳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곳이 훨씬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은 산림청이 1993년부터 죽파리 검마산 일대에 조성하기 시작한 숲이다.

면적이 축구장 40개에 해당하는 30.6㏊에 달하며, 수령 30년생 자작나무 약 12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인제 자작나무숲보다 3배나 넓은, 국내 최대 규모다.

우선 입구에서부터 1시간여가량 걷다 보면 오른편으로 끝없이 이어진 얕은 계곡이 청량감을 준다.

다행히 길은 포장 되어 있지 않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런 흙길을 걷는 것이 값지다.

맑게 흐르는 시냇물에 온몸에 난 땀을 씻어내니 더없이 상쾌하다. 아무도 없었기에 계곡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으로 향하는 길에는 야트막한 계곡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죽파리 자작나무숲으로 향하는 길에는 야트막한 계곡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휴대전화마저 끊긴다. 행복하다. 외부로부터 단절될 수 있다는 느낌이 불안감보다는 오히려 묘한 해방감을 준다.

깊은 계곡이 아니라 거의 발목 수위의 계곡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내려 한여름 물놀이에 최적의 장소라 여겨졌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니 하얀 껍질을 가진 나무 군락이 눈에 확 들어온다.

휴일 오후였지만 아무도 찾아온 사람이 없었기에 이 넓은 자작나무 숲이 온전히 나 하나만을 위한 정원이 된 듯한 느낌이다.

오후 5시쯤 산등성이 위로 쓰러져가는 햇볕 사이로 빛나는 하얀 자작나무의 모습은 황홀하다. 숲을 걷다 보면 지저귀는 새소리, 부서지는 햇살, 그리고 자작나무의 연초록 잎과 하얀 수피가 어우러진 장면이 비현실적인 감동을 준다.

◇ 숨겨놓은 보석 같은 청정지역 수비면

여행 전문가들은 남들에게 쉽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숨은 여행지가 있기 마련이다. 영양군 수비면이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이곳은 우선 교통이 불편해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한번 가보면 흠뻑 빠질 매력이 가득하다. 우선 수비면으로 들어서면 양옆의 가로수며, 산이 온통 녹색 일색이다.

어디 숲이 우거진 곳이 한두 군데겠냐만 이곳처럼 녹색의 바다에 흠뻑 빠진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은 많지 않다. 숲 바로 옆에 자리 잡은 깊은 계곡도 청정하고 한없이 맑다.

계곡을 끼고 있는 수비별빛캠핑장 [사진/성연재 기자]

계곡을 끼고 있는 수비별빛캠핑장 [사진/성연재 기자]

수비면은 여느 지역보다도 빽빽한 원시림을 자랑한다. 구주령과 가까운 곳 길가에는 남부지방산림청에서 운영하는 금강송 생태경영림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금강송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다양한 체험도 가능하다. 맑은 계곡물 옆에는 널따란 나무 데크들이 자리 잡고 있어 소풍에도 최적의 장소다.

수령 100년이 넘는 금강송 아래에서 휴일 오후를 맞아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이 여럿 보였다.

아쉬운 점은 야영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인근의 국립 검마산 자연휴양림도 팬데믹 탓에 숙박과 야영이 금지된 상태다.

수비면의 자연은 이렇게 청정하고 아름답다. 대신 인공적인 볼거리는 크게 내세울 것이 없다.

많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저녁이 되니 수비면 소재지도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오죽하면 '밤하늘 특구'로 이름을 붙였을까. 인가가 드물고 불빛도 없어 다른 곳보다 유별나게 많은 별빛이 자랑인 곳이다.

후포에서 만난 대게 짬뽕 [사진/성연재 기자]

후포에서 만난 대게 짬뽕 [사진/성연재 기자]

◇ Information

숙박은 울진 쪽의 백암온천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한화 콘도 등 숙박시설들이 즐비하다. 산림청 지원으로 지어진 '수하리산촌생태마을'에는 5∼20평형, 총 6개의 객실이 있다.

캠핑을 좋아한다면 영양군 수비면의 수비별빛캠핑장을 찾는 것이 좋다. 밤하늘 별빛 관찰하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해산물이 풍부한 후포항에서는 게 한 마리가 통으로 올라간 대게 짬뽕과 대게빵 등을 맛볼 수 있다.

죽파리 자작나무숲을 찾으려면 내비게이션에 '죽파리 산 39-2번지'를 검색하면 편리하다. 검색에 어려움이 있으면 '장파경로당'을 넣고 찾아봐도 좋다. 차를 세워놓을 수 있는 장파경로당에서부터 자작나무숲까지 4.8㎞의 외길이 이어져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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