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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 유럽] ① 경제발전 일군 파독 교포 정착지 '독일마을'

송고시간2021-05-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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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 길이 뚝 끊기면서 국내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장소들이 관심을 더 끕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 나라를 쏙 빼닮게 만들어 놓은 '한국 속 유럽마을'은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가 즐겨 찾는 지역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남해 천혜의 자연환경에 독일 전통 양식의 주택들이 어우러진 남해 독일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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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마을로 시작해 대표 유럽마을로…"독일가치 담았다"

[※ 편집자 주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 길이 뚝 끊기면서 국내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장소들이 관심을 더 끕니다. 특히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 나라를 쏙 빼닮게 만들어 놓은 '한국 속 유럽마을'은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가 즐겨 찾는 지역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연합뉴스는 국내에 있는 유럽마을들을 소개하고 이들 마을이 뿌리를 둔 유럽문화의 저력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기획기사 3편을 제작해 순차적으로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윤지현 기자 = 경상남도 남해군 동남쪽 해안, 여느 어촌마을과 사뭇 다른 이국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남해 천혜의 자연환경에 독일 전통 양식의 주택들이 어우러진 남해 독일마을이다.

독일 남해마을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독일 남해마을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이곳에서 14년째 터를 잡고 사는 서원숙(69) 씨는 젊은 시절 파독 간호사로 고국을 떠났다. 같은 지역 파독 광부로 와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슬하에 두 자녀를 뒀다.

두 부부가 성실히 벌다 보니 집도 장만할 만큼 자리를 잡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뗄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꼬리표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다.

서 씨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니 동양인이라며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다"며 "한국에 돌아가기로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어렵게 돌아온 고국은 독일 못지않게 차가웠다.

그는 "한국 물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사기 치는 사람이 많았다"며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결국 우리는 어느 쪽에도 낄 수 없는 이방인이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런 서 씨 가족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준 곳이 바로 남해 독일마을이었다.

독일마을은 1960년대 산업일꾼으로 독일에 파견돼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독일 교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제공해주자는 취지로 지난 2001년부터 조성된 곳이다.

초기에 독일 파견 1세대 교포 40가구 45명이 입주해 살았고, 20년 세월을 거치며 지금은 18가구 24명이 거주하고 있다.

◇ '푸른 잔디' 찾다 시작된 독일과의 인연…마을 조성으로 이어지다

독일마을에 세워진 비석
독일마을에 세워진 비석

마을 조성 당시 입주한 독일 교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남해군 이어리 청년 이장 출신으로 1995년 지자체 민선 1기 남해군수를 지낸 김두관 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수 재임 당시 지역 살림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관광 산업 활성화 방안에 대한 고심이 깊었다.

산업단지가 대대적으로 들어서 있는 전남 광양, 여수 등 주변 지역과 달리 남해군은 오로지 천혜의 자연환경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추진된 한 가지 방책은 따뜻한 날씨를 활용한 동계스포츠훈련장, '남해스포츠파크' 조성이었다.

남해군은 스포츠파크에 사용할 잔디를 알아보다 독일에 처음 문을 두드렸다. 겨울이 되면 누런색으로 변하는 우리나라 잔디와 달리 사시사철 푸른 독일산 잔디를 수입하려고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남해군은 독일의 북부 도시 노드 프리슬란트와 1997년 자매결연을 하고 이 과정에서 독일 교포들이 중간다리 역할을 했다.

당시 파독 간호사·광부로 일한 교포들은 은퇴 후 조국에 돌아와 마을을 꾸리고 살고 싶다는 뜻을 남해군 측에 내비쳤고, 친형이 파독 광부였던 당시 김 군수 마음을 움직였다.

김 군수는 이들의 바람을 현실화하는 동시에 남해에 유럽 문화가 담긴 색다른 관광지를 조성함으로써 주민 소득도 늘릴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부지 마련과 도로, 상하수도, 오수처리장, 전기시설 등 기반시설 설치는 남해군이 맡았고, 건물은 입주할 교포들이 정서에 맞게 설계하도록 했다.

교포들은 독일 전통 주택 양식으로 마을 컨셉을 잡고 직접 독일에서 자재를 공수해 집을 올렸다. 지금의 이국적 풍경이 자리 잡게 된 배경이다.

독일마을 주택 모습
독일마을 주택 모습

마을에는 독일 전통 양식을 따라 지어진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 "겉모양만 흉내 낸 다른 유럽 마을과 다르다"…'진짜'라는 자부심

독일마을 가정집들은 대부분 3층짜리 주택으로, 한 층에는 주인 가족이 살고 다른 층은 게스트하우스처럼 운영한다.

일부 건물은 교포 1세대 주인이 떠나고 외부인이 들어와 상업적으로 운영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는 독일 교포들이 운영한다.

주민들은 무엇보다 겉모습만 유럽풍인 다른 숙박시설과는 다르다는 점에 자부심을 보였다.

서 씨는 "독일인들은 근검절약하고 정리 정돈을 중시하는 것을 국민성으로 내세우는데, 독일에서 배우고 온 우리 역시 그런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숙소를 예로 들자면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내실 있고 깔끔하게 관리하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독일마을 숙소는 독일식 생활양식을 간접 체험하는 공간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초창기에는 독일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방학마다 찾기도 했다.

주민들은 독일 먹거리 문화를 공유하기 위해 직접 식당도 운영한다. 독일식 간이음식점인 '도이처 임비스', 우리나라로 치면 포장마차 같은 곳이다.

이곳에선 독일 정통 방식으로 만든 수제 맥주와 소시지 등을 판매하고, 관광객을 위한 독일식 수제 맥주 공정 견학, 독일식 수제 소시지 만들기 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이곳 정문영 문화관광해설사는 "도이처 임비스에서는 파독 간호사·광부 출신 주민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고 손님들을 응대한다"며 "주민들에게는 추억의 공간이 되고 관광객들에게는 신선한 체험의 공간이 된다"고 말했다.

독일마을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
독일마을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

[남해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금은 코로나19로 잠정 중단됐지만, 독일마을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는 여러 지자체 사이에서 인정받는 지역 축제다.

2010년 시작한 옥토버페스트는 마을 중앙광장인 '도이처 플라츠'에서 열린다. 한국에 사는 독일인들도 고향의 축제를 그리워하며 이곳을 찾을 만큼 현지 문화를 잘 살린 축제로 이름을 떨쳤다.

광장 한쪽에는 독일 현지 물건을 판매하는 조그마한 기념품 가게도 있다.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일 맥주와 과자, 축제 의상, 기념품 등을 판매한다.

서울에서 남해를 찾은 관광객 김 모(31) 씨는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살 때면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마음에 손길이 분주해지는 데 이곳에 오니 마음이 그렇다"며 "마치 유럽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독일마을 기념품 가게
독일마을 기념품 가게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일 현지 맥주와 과자, 각종 기념품 등을 판매한다.

초창기 주민 정착을 목표로 삼은 독일마을은 이제 '독일보다 더 독일 같은 곳'으로 입소문을 타며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지로 성장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소개된 이후로는 마을 주변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독일식 식당, 술집, 카페가 속속 문을 열며 관광지 자체가 확장하는 모양새다.

정 해설사는 "최근에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대리만족 차원에서 독일마을을 찾는 분도 많다"며 "많은 관광객이 이국적인 풍경뿐만 아니라 진짜 독일문화를 즐기고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y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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