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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톡톡] 나는 여행사 대리점주이자 빨래수거인, 택배배달원입니다

송고시간2021-06-0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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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월요일 오전 9시.

서울 강동구에서 중소 여행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강순영(49)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성수기가 다가오는 6월은 여행사가 가장 바쁜 달이지만 전화 한 통이 울리지 않는 사무실은 고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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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몰랐죠. 여행업계가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초토화된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부업을 찾아서라도 버텨야죠"

나는 여행사 대리점주이자 빨래수거인, 택배배달원입니다
나는 여행사 대리점주이자 빨래수거인, 택배배달원입니다

임화영 기자

본업과 부업 사이
본업과 부업 사이

임화영 기자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월요일 오전 9시. 서울 강동구에서 중소 여행사 대리점을 운영하는 강순영(49)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 출근합니다. 성수기가 다가오는 6월은 여행사가 가장 바쁜 달이지만 전화 한 통이 울리지 않는 사무실은 고요합니다. 직원들은 보이지 않고 공간의 반을 채우는 커다란 책상 두 개, 세 개의 모니터, 한쪽 벽면의 서랍장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강씨는 책상에 바로 앉는 대신 사무실 한편을 어색하게 가리고 있는 유리 칸막이 문을 열고 옆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고요한 사무실
고요한 사무실

임화영 기자

여행사 줄여 빨래방으로
여행사 줄여 빨래방으로

임화영 기자

환하게 빛나고 있는 세탁세제 자동판매기 뒤로 여러 대의 세탁기와 건조기가 보입니다. 강씨는 가게 내부를 둘러보며 잠시 멈춰있는 기계들에 이상이 없는지 점검합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여행사 손님들의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자 기존 여행사 사무실의 반을 줄여 셀프 빨래방을 열었습니다.

오전에는 이불 빨래 수거배달원
오전에는 이불 빨래 수거배달원

임화영 기자

이불 빨래 봉지 챙기고
이불 빨래 봉지 챙기고

임화영 기자

익숙한 듯 외워지지 않는 길
익숙한 듯 외워지지 않는 길

임화영 기자

점검을 끝낸 강씨는 빨래방 문구가 적힌 큰 비닐봉지를 챙긴 뒤 사무실을 나섭니다. 이불 빨래 수거배달도 직접 나선 그는 이날 들어온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승합차에 몸을 싣고 목적지로 향합니다. 주택, 아파트, 빌라 등을 돌며 1시간가량 수거를 마친 뒤 빨래방으로 다시 돌아와 손님들의 이불이 섞이지 않게 잘 분배해 세탁기에 넣습니다.

이불 빨래 수거배달 시작
이불 빨래 수거배달 시작

임화영 기자

기다림이 무서운 시간
기다림이 무서운 시간

임화영 기자

오전은 이불빨래 수거배달원
오전은 이불빨래 수거배달원

임화영 기자

산더미처럼 쌓인 이불빨래
산더미처럼 쌓인 이불빨래

임화영 기자

기계 작동을 시킨 뒤 손님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주고 나서야 물을 마시며 잠시 숨을 고릅니다. 목을 축이는 것도 잠시 창고에서 청소도구를 꺼내 바닥, 창문 등 구석구석 청소를 시작합니다.

부업도 본업처럼
부업도 본업처럼

임화영 기자

분주한 오전
분주한 오전

임화영 기자

바쁘다, 바빠
바쁘다, 바빠

임화영 기자

청소도 빼놓지 않고
청소도 빼놓지 않고

임화영 기자

쉴 틈 없이 움직인 그는 세탁기 안에서 찰싹이는 물소리를 뒤로하고 사무실 의자에 앉습니다. 꺼져있는 모니터 앞에서 펜을 들고 이번 주 계획을 일정표에 채워 넣습니다. 생기를 잃은 사무실은 사각사각하는 펜 소리로 가득 찹니다. 옆자리 모니터 역시 꺼져 있고 책상 위에는 일주일째 같은 복사물이 놓여있습니다.

주간일정 짜기
주간일정 짜기

임화영 기자

꺼진 모니터 뒤로
꺼진 모니터 뒤로

임화영 기자

정적을 깨는 세탁종료 알림 소리로 강씨의 오전 업무는 이어집니다. 건조까지 마친 세탁물을 차곡차곡 갠 뒤 새 봉지에 담아 몇 시간 전 밟았던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수거 업무를 끝냅니다.

조심조심
조심조심

임화영 기자

차곡차곡
차곡차곡

임화영 기자

오전 업무 종료
오전 업무 종료

임화영 기자

허송세월할 수 없어 시작한 빨래방은 생각 보다 잘되지 않았습니다. 이불 빨래 수거배달을 직접 하며 움직였지만, 코로나19 장기화에 수익은 다시 줄었고 사무실 임대료도 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여행사 대표, 이불 빨래 수거배달원과 더불어 병행할 수 있는 또 다른 부업이 필요했고 결국 쿠팡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택배 배달원
오후에는 택배 배달원

임화영 기자

택배 뒷좌석에 싣고
택배 뒷좌석에 싣고

임화영 기자

수북이 쌓인 택배
수북이 쌓인 택배

임화영 기자

촘촘했던 오전 업무를 끝내고 강씨에게 허락된 30분 안에 점심을 해결한 뒤 오후 2시께 택배 배달을 위해 쿠팡 캠프로 이동합니다. 이십 분 뒤 트렁크에 택배를 쌓아온 그의 표정이 약간 어둡습니다. 평소에는 약 40개 정도의 택배를 배정받는데 이날은 배송 기사가 너무 많이 몰려 22개의 물량밖에 배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원래 '신선배달', '당일배송' 두 타임을 연속으로 뛰는데 당일배송은 아예 물량이 없다며 아쉬워했습니다. 하지만 금세 "이런 날도 있는 거겠죠. 오전에 너무 바빠서 오후에는 좀 쉬라는 건가 봐요"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주소지 꼼꼼히 확인
주소지 꼼꼼히 확인

임화영 기자

쉴 틈 없이
쉴 틈 없이

임화영 기자

스피드가 생명
스피드가 생명

임화영 기자

세 개도 거뜬히
세 개도 거뜬히

임화영 기자

무겁지만 조심히
무겁지만 조심히

임화영 기자

1분 1초도 아껴서
1분 1초도 아껴서

임화영 기자

계단도 막힘없이
계단도 막힘없이

임화영 기자

벌써 반년 차 배달 경력을 가진 그는 막힘없이 일해나갔습니다. 1분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강씨의 발은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강씨의 발목을 잡는 순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그는 이 시간이 제일 두렵다고 합니다. 배달 시간이 늦춰지는 것도 있지만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기다림의 시간에 안 좋은 생각이 많이 든다며 굳은 안색으로 말합니다.

두려움의 시간
두려움의 시간

임화영 기자

바쁘게 움직이기
바쁘게 움직이기

임화영 기자

배송완료 사진은 필수
배송완료 사진은 필수

임화영

뛰고 이동하고 배달하기를 2시간. 예정보다 일찍 마친 강씨는 쉬지 않고 사무실로 복귀해 개인 업무를 봅니다. 딱히 소득은 없지만 늘 보지 않으면 좀이 쑤시게 만드는 본업을 위해서입니다. 종일 꺼져있던 모니터를 켜고 서울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행관광업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한참을 둘러보던 그는 별다른 수확 없이 메모를 위해 들었던 펜을 놓습니다.

나의 본업은 여행사 대표입니다
나의 본업은 여행사 대표입니다

임화영 기자

희망을 품고
희망을 품고

임화영 기자

한국여행업협회가 올해 1월 내놓은 '전국 여행업체 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여행업 매출액은 1조9천198억 원으로 2019년 매출액 11조7천949억 원 대비 약 83.7%가 감소했습니다.

강순영 씨 역시 코로나19 이후 매출에 큰 타격을 받았고 생계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소상공인 손실보상법의 피해보상 대상에 여행업이 포함되지 않은 데다, 정부가 소급적용이 불가능하다는 방침을 고수하자 그는 "정부의 방역지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따른 결과가 너무 가혹하다"며 토로했습니다

고정지출 해결을 위해
고정지출 해결을 위해

임화영 기자

그는 지난달 28일 열린 손실보상법 관련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가 끝나면 희망스러운 답변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여당 측의 불참으로 무산되자 붕 뜬 상태가 됐다며 난색을 내비쳤습니다. 이어 "손실보상법은 통과돼야 하지만 여행업도 포함해야 한다"며 "집합금지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부분 정부 지원에서 제외됐는데 이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호소했습니다.

생계절벽에서
생계절벽에서

임화영 기자

허공에 떠 있는 손
허공에 떠 있는 손

임화영 기자

. 유럽연합(EU)이 오는 7월부터 회원국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자에게 자가격리를 면제해주는 백신여권을 도입한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소식을 들은 강씨는 고무적이라며 한국도 백신여권, 트래블버블 등 여행산업을 복원시킬 수 있는 대안을 찾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추억할 그 날이 오면
추억할 그 날이 오면

임화영 기자

손실보상법에 여행업을 포함할 수 있을 자료를 찾다 보니 어느새 저녁 6시가 훌쩍 넘은 시간. 모니터를 끄고 자리를 정리한 뒤 퇴근 준비를 합니다. 사무실과 빨래방을 마지막으로 둘러본 뒤 여행사의 문이 잠깁니다. 그는 "시간이 훌쩍 지나서 '이럴 때도 있었다'고 지금을 추억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2021.6.3

hwayoung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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