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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식민지배·징용, 국내법적으로만 불법이었다?

송고시간2021-06-1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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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의 직전 판결(원고 승소)과 달리 '각하'를 결정한 최근 1심 법원 판결 내용 중 식민지배와 징용의 불법성이 국제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부분이 관심을 끌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지난 7일 판결문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 잡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법해석"이라며 "일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자신들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였다는 자료가 없고 국제법적으로도 그 불법성이 인정된 바가 있다는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판결이 나온 뒤 청와대 국민청원에 "(판결문에) 국제사회가 일제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말한 대목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국가적, 반헌법적 행위"라는 글이 올라오는 등 반발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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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판결과 달랐던 최근 1심 판결문 내용 놓고 논란

전문가들 "국제법정서 식민지배 위법 인정된 사례 없는듯"

ILO전문가위원회, '일제 징용, 강제노동금지 협약 위반' 판단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울=연합뉴스 자료사진] 류영석 기자 2020.12.8 ondol@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대법원의 직전 판결(원고 승소)과 달리 '각하'를 결정한 최근 1심 법원 판결 내용 중 식민지배와 징용의 불법성이 국제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부분이 관심을 끌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지난 7일 판결문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 잡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법해석"이라며 "일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자신들의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였다는 자료가 없고 국제법적으로도 그 불법성이 인정된 바가 있다는 자료가 없다"고 밝혔다.

판결이 나온 뒤 청와대 국민청원에 "(판결문에) 국제사회가 일제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말한 대목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국가적, 반헌법적 행위"라는 글이 올라오는 등 반발이 있었다.

이에 연합뉴스는 국제법 전문가들의 견해와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위원회의 견해 등을 토대로, 판결문에 적시된 식민지배, 징용의 불법성 관련 내용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인지 확인해봤다.

◇어느 나라도 식민지배 불법성 인정했다는 자료 없고 국제법적으로도 불법성 인정 자료 없다?…전문가들, 이견 없어

8∼9일에 걸쳐 연합뉴스의 취재에 응한 복수의 국제법 전문가와 법률사(史) 전문가는 '식민지배를 한 나라가 그 불법성을 인정했다는 자료가 없고 국제법적으로 그 불법성이 인정된 자료가 없다'는 판결문 내용에 대해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국제법에 정통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2008년)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과거 식민지배한데 대해 스스로 사과하고 보상한 사례는 있지만 식민지배의 문제를 판단한 국제 재판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사이에 둔 리비아를 식민지배(1911∼1947년)함으로써 리비아인에게 준 피해를 인정 및 사죄하는 내용과, 총 50억 달러(약 5조6천억 원) 규모의 지원 방안, 경제·과학·문화·비영리 분야 협력 등 내용을 담은 조약을 2008년 8월 리비아와 체결했고 이는 식민지 가해국이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 사죄하고 보상한, 매우 드문 사례로 기록됐다.

당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탈리아 국민을 대표해 나는 오랜 식민지배 기간에 발생했던 일들과 그로 인해 리비아의 많은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사과할 의무를 느낀다"고 밝혔지만 조약은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하는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또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등 국제재판소의 판결로 국한하면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판단한 판결은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전히 식민지 가해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하고 있고, 국제재판소도 그 영향 아래에 있으니 그런 판결이 선고되었을 가능성은 낮다"며 "국제사회에서 식민지 지배 책임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이 2001년 더반 회의(제3차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에 이르러서였고, 그 회의가 내놓은 선언에서조차 법적 책임은 언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대한민국의 경우 국제법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1910년 조약(소위 한일병합조약)이 국제법적으로 무효이냐는 것"이라며 "그 판단 기준이 되는 당시의 국제법이 하나가 아니라 복수였고, 그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지금 판단하는 국가나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일국이 타국 또는 타국 대표자에게 가한 강박의 양태 등에 입각, 체결된 조약의 효력이 있는지 여부를 따지는 20세기 초반의 국제 규범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였기에, 식민지 가해국 논리가 주로 반영된 규범을 택할 것이냐, 피해국 논리가 많이 반영된 규범을 택할 것이냐의 선택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견해다.

[그래픽] 일제 징용 피해자 일본기업 상대 소송 주요 일지
[그래픽] 일제 징용 피해자 일본기업 상대 소송 주요 일지

(서울=연합뉴스) 김토일 기자 = 강제징용 피해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한 지 6년여 만에 1심에서 '각하'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6월7일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등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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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 불법성 국제법적 인정 안됐다?…ILO전문가위 "일본의 협약 위반" 지적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가 국제법상 불법으로 인정되지 않았다면 일제가 당시 식민지배중이던 한국인들을 전시 동원 관련 법령에 따라 징용한 것을 불법으로 보는 것은 한국 국내법적 해석일 뿐, 국제법적으로 인정된 해석은 아니라는 게 판결문의 취지였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선 노동자 권익 및 근로조건을 다루는 유엔 기구(ILO) 전문가 집단의 견해에 바탕을 둔 반론이 존재한다.

식민지 가해국과 피해국 사이의 법적 관계를 떠나, 일제가 한국인 등에게 시킨 강제노동은 그 양태에 비춰 당시 일본에 적용되던 국제규범을 위반한 것이라는 유엔 기구 전문가들의 판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ILO 전문가위원회는 1999년 제87회 ILC 회기에 공표한 논평(Observation)에서 "위원회는 그런 개탄스러운 조건 하에서 일본 내 민간기업에 일하게 하기 위한 대규모 징용은 협약(강제 노동을 규제하는 ILO의 29호 협약) 위반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비록 제기한 소송들이 재판에 계류중이긴 하지만 피해자들 개별 보상의 관점에서 어떤 조치도 없었다는 점에 위원회는 주목한다"며 "위원회는 정부 대(對) 정부의 지급이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구제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일본이 1930년대 초반에 이미 ILO 협약 당사국이었던 만큼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킨 것은 협약 위반에 해당한다는 지적이었다.

ILO 29호 협약은 전쟁시기와 같은 비상시에 부과된 노역은 협약이 지칭하는 '강제노동'의 범주에서 제외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긴 하지만 ILO전문가위원회는 일제치하 한국인 등에 대한 강제노동이 그런 예외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노역은 강제 노동' 확인한 ILO 보고서
'일제강점기 노역은 강제 노동' 확인한 ILO 보고서

[도쿄=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세원 특파원 = 1999년 발간된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서에 일제 강점기에 한국과 중국의 노동자를 일본으로 동원해 일을 시킨 것이 강제 노동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담겨 있다. ILO는 당시 동원된 노동자가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다는 진술과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론 등을 검토하고서 강제 노동을 규제하는 '협약 위반'(violation of the Convention)이라고 판단했다. 2015.7.10

ILO 전문가 위원회의 이 같은 판단은 일본 정치권에서도 의제가 됐지만 일본 정부는 그 국제법적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13년전 한 국회의원이 국제법적 의미를 묻자 총리는 '구속력이 없다'는 답변을 한 것이다.

일본 중의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2008년 2월 7일 호소카와 리쓰오(細川律夫) 당시 중의원 의원은 대 정부 질의서에서 "ILO 조약과 권고의 적용에 관한 전문가위원회는 수차례에 걸쳐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전(前)과 대전중에 ILO의 29호 조약에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보고하며 일본에 설명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그것에 대해 반드시 성실히 답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호소카와 의원은 그러면서 "전문가위원회 보고에서 ILO 29호 조약 위반으로 지적된 경우 그 판단은 국제법상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며 "(조약) 비준국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당시 총리는 같은 달 19일자 답변서에서 ILO 전문가위원회는 "ILO가 채택한 조약의 각 체결국별 적용 상황 등을 검토하는 위원회"라며 "조약의 유권해석을 하는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 견해가 가맹국을 구속하는 것도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법을 전공한 신희석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TJWG)' 연구원은 "러일전쟁 중 대한제국의 중립 침해와 을사조약의 무효 여부 등 식민지배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판단과 무관하게 일제하 한국인 징용자의 피해 실태는 명백한 ILO 협약 위반, 반(反)인도범죄로 당시 국제법상 불법이 맞다"고 말했다.

신 연구원은 "최근 판결은 피해자들의 모집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미성년자와 여성을 포함한 강제노동 피해자들을 공장, 탄광 등에서 혹사한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부연했다.

법원 각하 결정에 '항소' 의견 밝히는 '강제징용' 피해자들
법원 각하 결정에 '항소' 의견 밝히는 '강제징용' 피해자들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6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1심 선고에서 각하 판결을 받은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공판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소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날 열린 선고 공판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낼 권한이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렸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다.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점에서 원고 패소 판결과 같은 결과로도 볼 수 있다. 2021.6.7 hkmpo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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