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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향한 '덕질'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

송고시간2021-08-04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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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덕후', '덕질', '최애', '탈덕'….

이 단어들의 뜻을 모두 제대로 안다면 당신은 이른바 '아재'나 '아줌마'일 확률이 한층 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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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신예' 우사미 린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최애, 타오르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덕후', '덕질', '최애', '탈덕'…. 이 단어들의 뜻을 모두 제대로 안다면 당신은 이른바 '아재'나 '아줌마'일 확률이 한층 낮아질 것이다.

위에 든 말들은 모두 요즘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속어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우리말처럼 변용한 단어로, 한 분야나 인물에 푹 빠진 사람을 뜻한다. 영어로 치면 '마니아' 정도에 해당한다. 따라서 '덕질'은 오타쿠가 집착하는 대상에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최애(最愛)는 문자 그대로 '가장 좋아한다'는 뜻의 신조어인데, 이에 대응하는 일본어 속어로 '오시'(推し)가 있다. 일본 젊은 층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을 부를 때도 이 말을 쓴다고 한다.

한 해 동안 일본 순수문학 최고 작품에 수여하는 아쿠타가와상 올해 수상작인 '최애, 타오르다'는 이런 유행어를 제목에 썼다. 일본어 원제는 '오시, 모유(推し、燃ゆ)'이다. 천재적 신예 작가로 평가받는 우사미 린의 이 장편소설을 미디어창비에서 이소담의 번역으로 국내에 소개한다. '오시'를 '최애'로 번역한 건 속어 뉘앙스를 맛깔나게 살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최애'를 향한 '덕질'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 - 1

제목이 이런데다 내용도 '아이돌 덕질'에 관한 것이어서, 아쿠타가와상이 아니라 최고 대중소설에 주는 나오키상이 더 걸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올해 일본에서만 5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대중성도 입증했다.

하지만 책장이 넘어갈수록 이 소설은 단순히 아이돌을 다룬 영 어덜트 계열 작품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덕질'을 소재로 했지만, 사실은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십 대 소녀의 성장기이자 실존을 화두로 한 철학적 탐구로 읽힌다.

이는 스물한 살 신인인 우사미가 지난해 미시마 유키오 상을 역대 최연소로 받고 올해 아쿠타가와상까지 거머쥐었는지 알 수 있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제목에서 보듯 주인공 아카리의 '최애' 아이돌 마사키가 불길, 즉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애가 불타버렸다. 팬을 때렸다고 한다. 아직 자세한 사정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아카리는 마사키가 아이돌이 되기 전 아역배우로 활동할 때부터 그를 '최애'로 삼았다. 마사키가 출연했던 연극 '피터팬'의 DVD를 보며 아카리는 예리한 통증을 느끼며 살아 있다는 감각을 선명히 회복한다. 그는 '최애' 마사키를 사랑하게 되면서 다시 태어났으며, 삶의 의미를 찾게 된 것이다.

여고생 아카리는 마사키의 생일로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그가 속한 아이돌의 굿즈를 모으고 앨범이 나올 때마다 사들인다. 아카리가 학업을 등한시하고 시간제 임시직으로 일하며 돈을 버는 이유도 온전히 '덕질'을 위한 것이다.

왜 젊은이들은 자기만의 '최애'를 만들고 '덕질'을 하는가? 작가가 소설을 통해 묻는 이 질문은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아카리는 마사키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해석하면서 마사키에 가장 정통한 전문가로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아카리에게 '최애' 마사키는 모든 걸 잃게 되도 의지할 수 있는 '척추'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아카리는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마사키를 감싸지만, 그가 여성 팬을 때린 이유는 도저히 해석하기 어렵다. 이제 마사키를 온전히 이해하기 불가능한 상태에 빠지자 아카리는 아픔을 느낀다. 마사키는 논란이 커지면서 연예계를 떠나게 되지만 아카리의 고통은 마사키의 은퇴가 아니라 돌연 발생한 불가해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최애를 향한 아카리의 사랑은 이제 터널의 끝을 앞에 두게 됐다. 최애가 빠져나간 공허한 빈자리를 아카리는 무엇으로 채울까. 시간이 흘러 이때를 돌아보면서 아카리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이 여름 아카리의 애절한 감정선을 따라가 보는 건 어떨까.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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