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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오페라로 바꾸는 모험의 출발

송고시간2021-08-2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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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발레 '백조의 호수' 속 백조들을 남성으로 바꾼 파격적인 안무가 매슈 본은 '관객 누구나가 아는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면 작품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의 연속적인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현대의 창작오페라들이 관객에게 낯설어 인기가 없다는 생각으로 오페라 분야에서도 영화사의 걸작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영화 '박하사탕'은 리얼리즘에 충실했지만, 오페라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무대 예술이 지닌 사실적 재현의 제약을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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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오페라단 '박하사탕' 초연

오페라 '박하사탕'
오페라 '박하사탕'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발레 '백조의 호수' 속 백조들을 남성으로 바꾼 파격적인 안무가 매슈 본은 '관객 누구나가 아는 익숙한 이야기가 아니면 작품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의 연속적인 성공 비결을 설명했다.

현대의 창작오페라들이 관객에게 낯설어 인기가 없다는 생각으로 오페라 분야에서도 영화사의 걸작을 토대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이미 '검증된' 스토리가 유용하다는 발상이다.

201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토마스 아데스의 오페라 '절멸의 천사'는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했고, 2017년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ENO)가 무대에 올린 '마니'는 앨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마니'를 오페라화했다. 두 작품 모두 초연 이듬해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재초연해 큰 성공을 거뒀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작곡가 이건용에게 위촉한 오페라 '박하사탕'은 2000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이창동 감독의 동명 영화를 토대로 했다.

영화 '박하사탕'은 리얼리즘에 충실했지만, 오페라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방식으로 무대 예술이 지닌 사실적 재현의 제약을 극복했다.

대본과 연출을 맡은 조광화는 영화가 시도한 '역순의 시간여행' 방식은 그대로 살리면서 상여와 망자, 저승사자 등을 오페라 무대에 등장시켜 환상의 세계를 현실과 병치한다.

오페라 '박하사탕'
오페라 '박하사탕'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리모델링해 재개관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지난 28일 공연을 관람했다. 영화 '박하사탕'의 줄거리 골격과 인물들은 오페라에서 상당 부분 바뀌었다.

영화에서 1987년 민주화 시위 중에 연행된 대학생 박명식은 형사가 된 주인공 김영호의 고문으로 무력해진 모습을 보이지만, 이 캐릭터를 대신해 오페라에 등장하는 박명숙은 박명식보다 더 강인하고 포용력 있는 캐릭터로 그려졌고, 극 전개상 훨씬 큰 비중을 지닌다.

이 오페라의 예술감독인 작곡가 이건용의 음악은 우리말의 발음과 강세를 자연스럽게 살렸고, 말하듯이 노래하는 '슈프레히슈팀메(Sprechstimme)'를 적절히 사용해 의미 전달을 명료하게 했다.

순임과 명숙의 라이트모티프(주도 동기. Leitmotiv)들은 '마더구스'의 동요, 말러 교향곡, 보헤미안 민속음악의 한 소절을 연상시키는 친숙한 음악으로, 공수부대 및 고문 장면에 나타나는 폭력적인 모티프와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

안치환의 노래로 잘 알려진 하종오 시, 이건용 작곡 '그렇지요'가 오페라의 도입부와 피날레 부분에 순임의 친구 미애(소프라노 신은선 분)의 노래로 삽입되어 특별한 감동을 선사했다.

대본과 연출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극의 시간이 거꾸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사건을 순차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설명이 필요 없을 부분도 관객에게 미리 정보를 주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화적 장치 없이 노래로 설명을 해야 하다 보니 전반부의 장면들이 길어졌다. 이날 관객들에게 물었더니 대부분 1막이 너무 길었다고 답했다. 제작 과정에서 여러 차례 삭제와 압축이 있었겠지만 1막 2장의 경우 더 과감한 압축이 가능해 보인다. 묘비들이 노래하고 움직인다는 설정은 대단히 효과적인 착상이었다.

오페라 '박하사탕'
오페라 '박하사탕'

[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가사와 음악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강렬한 효과는 서정적인 장면에서보다 1막 4장 공수부대 장면에서 두드러졌다. '공포의 힘'을 노래하는 합창은 전율을 일으켰다.

광주시립합창단과 노이 오페라 코러스는 망월동 묘역 장면, 공수부대 장면, '아침이슬' 합창 장면 등에서 때론 장중하게 때론 넘치는 활기로 몰입도를 높였다.

윤호근이 지휘한 오케스트라 디 피니는 70명이 자리하기에 좁아 보이는 피트에서도 혼신의 노력을 다해 정제된 음악을 들려주었다.

어떤 역을 맡아도 그 배역에 빙의한 듯이 보이는 테너 국윤종(김영호 역)은 순수한 청년부터 관심병사, 폭주형사, 출구 없는 중년까지 한 인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매 장면에서 설득력 있게 보여주며, 전달력 뛰어난 발성과 풍부한 성량으로 무대를 압도했다.

소대장 강현기 역을 노래한 바리톤 나건용의 명료한 가창과 유연한 연기가 인상적이었고, 어려운 음악을 노련하게 소화한 윤순임 역의 소프라노 김순영을 비롯해 모든 성악가가 가창과 연기 면에서 적역이었다.

오페라 '박하사탕'은 적절하게 무대화하기 어려운 무겁고 장엄한 역사 소재를 작품의 마지막 장면처럼 희망과 연대의 빛깔로 새롭게 채색한 무대였고, 영화를 오페라화하는 모험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rosina@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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