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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먹방] 뚝심으로 지켜온 90년 역사

송고시간2021-10-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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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4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 온 양조장에는 90년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대를 이어 내려온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차별화를 시도하며 '온고지신'하는 술도가.

벽면에는 90년 양조장 역사를 보여주는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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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이원양조장

(옥천=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4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 온 양조장에는 90년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대를 이어 내려온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차별화를 시도하며 '온고지신'하는 술도가. 충청북도 옥천의 이원양조장이다.

이원양조장 외관 [사진/전수영 기자]

이원양조장 외관 [사진/전수영 기자]

◇ 금강변 물길 따라 4대째 이어온 가업

예스러운 간판과 낡은 철제 대문을 지나 양조장 안으로 들어서니 커다란 옹기로 입구를 둘러싼 우물과 펌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낡은 목제 기둥에도, 양쪽에 늘어서 있는 오래된 양조 도구들에도 세월의 흔적이 가득하다.

벽면에는 90년 양조장 역사를 보여주는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다. 한 청년이 소달구지에 막걸리 통을 싣고 배달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지붕을 받치는 낡은 기둥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사진/전수영 기자]

지붕을 받치는 낡은 기둥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사진/전수영 기자]

예부터 좋은 물이 있는 곳에 양조장이 들어선다고 했다.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에 있는 이원양조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금강변에서 출발한 술도가다.

1949년 수해를 입고 현재 위치인 이원면 강청리로 자리를 옮겨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강현준 대표 홀로 꾸려 가는 1인 양조장이지만, 한창 잘 나가던 1970∼1980년대에는 직원 28명을 두고 하루 3천병의 막걸리를 팔았던, 마을의 대표 양조장이었다.

벽에 걸려 있는 흑백 사진들이 90년 양조장 역사를 보여준다. [사진/전수영 기자]

벽에 걸려 있는 흑백 사진들이 90년 양조장 역사를 보여준다. [사진/전수영 기자]

꽤 넓은 부지에 자리 잡은 양조장은 예전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덕분에 가양주가 금지되면서 상업 주조가 본격화한 일제강점기 근대식 주조장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양조장 중앙에는 술 빚는 데 쓸 지하수를 길어 올렸던 우물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고두밥을 찌기 위해 쌀을 불리고 씻었던 대형 수조와 고두밥을 펼쳐 식혔던 커다란 냉각조가 있다.

전통 누룩과 입국을 직접 빚어 띄웠던 국방과 약 40개의 항아리가 늘어서 있던 발효실도 규모가 상당하다.

허름하긴 하지만 남아있는 외형만으로도 잘나가던 시절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예전에 술을 빚던 곳이었던 '술방'은 지금은 전시 겸 시음공간으로 사용된다.

비닐로 된 막걸릿병, 갈색 유리 막걸릿병 등 선반에 전시된 다양한 병들이 막걸릿병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달구지나 자전거에 실려 배달되던 커다란 막걸리 통, 막걸리 통에 '이원'이라는 두 글자를 새겼던 낙인, 전성기였던 1986년 양조장 홍보용으로 배포했던 달력 등도 눈길을 끈다.

선반에 전시된 술병들이 막걸릿병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사진/전수영 기자]

선반에 전시된 술병들이 막걸릿병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사진/전수영 기자]

◇ '온고지신'의 자세로

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강현준 대표는 원래 서울에서 건축업에 종사했다. 8년 전 하던 일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강 대표는 "아버지도 말년에는 사명감으로 가업을 이어가신 것 같다"며 "'술 만드는 것은 돈이 안 된다'고 여겨 양조장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노년에 쇠약해진 아버지를 모시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짐이 저에게 오게 됐다"고 했다.

강 대표는 증조부 때부터 내려온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누룩을 직접 빚어 쓰고 요즘 흔한 스테인리스 발효조 대신 커다란 옹기에서 술을 발효한다.

누룩을 띄우는 국방 [사진/전수영 기자]

누룩을 띄우는 국방 [사진/전수영 기자]

400ℓ들이 항아리의 무게는 70㎏, 어른 둘이서 들기에도 무거워 다루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서 건설 현장에서 쓰는 장비를 직접 개조해 옹기를 들어 올려 뒤집는 기계도 만들었다. 덕분에 혼자서도 옹기를 쉽게 세척하고 소독할 수 있다.

가업을 잇겠다는 사명감으로 뛰어들었지만, 전통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자신만의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도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00% 국산 밀로 만든 '우리밀 막걸리 향수'다.

"1965년 시행된 양곡관리법 때문에 쌀로 술을 못 빚던 시절 수입 밀로 술을 빚었어요. 이걸 우리 밀로 복원해보자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했죠. 과거의 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되살려 우리 양조장만의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커다란 옹기에서 익어가는 막걸리 [사진/전수영 기자]

커다란 옹기에서 익어가는 막걸리 [사진/전수영 기자]

쌀로 고두밥을 짓는 대신 밀가루에 물을 넣어 반죽해 찐 다음 누룩을 더해 20일가량 발효시키면 밀 막걸리가 완성된다. 감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 9도짜리 막걸리다.

술 빚는 데 쓰일 밀은 강 대표가 직접 재배한다. 우리 밀로 빚은 막걸리는 쌀 막걸리에 비해 색깔이 훨씬 진하다.

한 모금 마셔보니 맛 역시 더 묵직하고 구수하다. 마치 걸쭉한 미숫가루를 마시는 느낌이다.

밀 막걸리에 이어 지난해에는 증류식 소주를 새 제품으로 선보였다.

오크통 안에서 증류식 소주가 익어가고 있다.[사진/전수영 기자]

오크통 안에서 증류식 소주가 익어가고 있다.[사진/전수영 기자]

여기에 더해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고급 밀 소주도 준비 중이다.

강 대표를 따라 숙성실로 들어가 보니 증류식 소주가 익고 있는 오크통이 여러 개 늘어서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이 9개월쯤 됐으니 내년이면 1년 숙성 버전을 선보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증류식 소주는 항아리나 스테인리스 통에서 숙성시키는데 아무래도 맛이나 향을 입히는 데에는 오크통이 제일 낫지 싶어요. 1년에 세 통씩 채우고 있는데, 1년, 3년, 5년, 이런 식으로 숙성 버전을 내려고 합니다."

4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강현준 대표 [사진/전수영 기자]

4대째 가업을 이어가는 강현준 대표 [사진/전수영 기자]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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