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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유리천장 깬 개척자 파월…이라크전 정치인생 오점(종합)

송고시간2021-10-19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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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별세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은 유색 인종에게 보이지 않게 드리워진 유리천장을 깬 '최초'의 흑인이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후 대중의 압도적 인기를 등에 업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앞선 '흑인 대통령'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됐지만 보수적인 공화당 정서에 가로막혀 끝내 마지막 고지는 넘어서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의 발탁으로 첫 흑인 국무장관에 오르며, 백인 중심의 미국 정계에서 개척자이자 선구자로서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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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승리 '전쟁영웅'…흑인 대통령 후보 거론됐지만 불발

'네오콘' 강경파 틈에서 역할 제한적…한반도 근무 인연도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 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워싱턴=연합뉴스) 김경희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별세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은 유색 인종에게 보이지 않게 드리워진 유리천장을 깬 '최초'의 흑인이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후 대중의 압도적 인기를 등에 업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앞선 '흑인 대통령'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됐지만 보수적인 공화당 정서에 가로막혀 끝내 마지막 고지는 넘어서지 못했다.

◇ 흑인 정치 새 역사…네오콘 틈에서 역할 제한적

그의 일생은 '미국인 성공신화'의 전형이었다. 자메이카 부모님 밑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베트남전을 거쳐 전쟁 영웅으로서 성공적 길을 걸었다.

특히 그는 냉전 시절 군 최고위급 장성으로서 가능한 한 무력 개입을 피하되 국가 이익을 위한 개입이 불가피할 경우 압도적인 군사력을 투입, 속전속결로 승리를 결정짓는다는 이른바 '파월 독트린'을 정립했고 이는 걸프전 당시 미국민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행정부 당시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을 지낸 그는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발탁으로 첫 흑인 국무장관에 오르며, 백인 중심의 미국 정계에서 개척자이자 선구자로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당시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등 강경 '네오콘(신보수주의)' 매파들 중심의 백악관에서 온건파인 고인의 입지는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핵 문제를 비롯해 중동·이스라엘 관계 등 주요 외교 사안에 있어 강경파에 가로막힌 파월 장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주로 부시 행정부의 극단적 성향을 완화하고 재앙을 막는 데에 한정됐다고 평가했다.

당시 행정부에서 그는 '노인(old man)' 취급을 받았고 핵심 정보에서 사실상 배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4천명 이상 미국인 사상자를 낸 이라크전 참전은 그의 정치 인생에 오점이다.

2003년 당시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의혹을 제기하는 연설을 했지만, 이듬해 잘못된 증거를 제공받았다며 뼈아프게 시인했다.

파월 전 장관을 추모하기 위해 게양된 미 성조기
파월 전 장관을 추모하기 위해 게양된 미 성조기

(워싱턴 A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별세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을 추모하기 위해 워싱턴 모뉴먼트 주변에 미 성조기가 게양됐다. 2021.10.18. photo@yna.co.kr

◇ 북핵 '다자주의' 일관…한국 근무 남다른 인연

전임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일관된 기조인 대북 포용 정책을 놓고도 파월 전 장관은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갈등을 빚었다.

그는 취임초 대북 정책 기조의 변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이는 매파가 득세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노선과는 거리가 뚜렷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대북 속도조절론'으로 노선 변화가 불가피했다.

특히 2002년 부시 전 대통령이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북미 대화는 사실상 경색 국면을 면치 못했고 이는 그의 재임 기간 내내 이어졌다.

그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북미 직접 대화에는 일관되게 선을 긋고 다자틀 원칙을 고수했으며, 2002년 11월에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제공했던 중유공급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1973년부터 1년 가량 한국에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자서전 '나의 미국 여행'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한국에 대한 개인적 애정을 엿보였다.

그는 "1973년 가을부터 1년 동안 주한 미8군 사령부 산하 동두천에 있는 부대의 보병 대대장으로 근무했을 때가 직업군인으로서 가장 만족스럽고 활력이 넘쳤던 때"라며 "서울에서 경제 기적을 예고하는 증후들이 서서히 나타났다"고 회고했다.

카투사에 대해서도 "내가 지휘한 병사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병사들"이라며 "미군 병사의 하룻밤 술값에 지나지 않는 3달러의 한 달 봉급으로 부대 내 생활을 하는 등 끈기있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했다.

◇ '흑인 대통령' 오바마 후원자…트럼프 정면 비판

퇴임 후 중도파로서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파월 전 장관은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며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을 자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인종차별적인 그의 언행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활발히 목소리를 냈다.

2020년 대선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 이후에는 공화당을 정치적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절연을 선언했다.

흑인 정치의 한 역사를 쓴 파월 전 대통령의 별세를 놓고 각계는 애도를 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파월 전 장관은 미국을 강하게 하는 민주적 가치에 헌신했다. 그는 자신과 정당, 그 무엇보다 조국을 최우선에 두었다"며 "그는 위대한 미국인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음모 이론이 난무하고 누군가 내 믿음에 의문을 표했을 때 파월 전 장관이 그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도움을 주었다"며 2008년 대선 당시 무슬림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그의 지지를 회고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애도를 표하고 "그와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달랐지만, 항상 그를 존중했고 그의 업적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고 밝혔다.

최초의 흑인 국방장관인 로이드 오스틴 장관은 "세계는 가장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을 잃었다"며 "그는 오랫동안 나의 멘토였다"고 기렸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그는 국무부에 경험과 애국심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며 "그는 우리에게 품위를 주었고, 국무부는 그를 사랑했다"고 했다.

kyung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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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Rhi4SFi5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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