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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사망] 외신 긴급보도…"쿠데타·부패 불명예, 북방정책도"(종합2보)

송고시간2021-10-27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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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 외신도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일제히 긴급기사로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연합뉴스를 인용해 노태우 전 대통령이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속보로 전했다.

그가 쿠데타의 공모자에서 한국의 민주화 뒤 국민이 선출한 첫 한국 대통령이 됐지만 반역과 부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불명예스럽게 정치 경력을 끝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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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NYT 등, 한국 현대사 속 노 전 대통령 정치 역정 소개

북방정책, 유엔 가입, 88올림픽 등 호의적 평가도

노태우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욕=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강건택 특파원 = 세계 주요 외신도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일제히 긴급기사로 전했다.

외신들은 12·12 쿠데타 조력, 직선제 회복 뒤 첫 대통령, 수뢰로 인한 투옥 등 여러 가지 평가를 곁들여 그의 정치 역정을 소개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연합뉴스를 인용해 노태우 전 대통령이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속보로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독재자에 의한 통치에서 민주적 선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가 중요한 인물이지만 논란이 많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가 쿠데타의 공모자에서 한국의 민주화 뒤 국민이 선출한 첫 한국 대통령이 됐지만 반역과 부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불명예스럽게 정치 경력을 끝냈다고 지적했다.

AP통신은 노 전 대통령이 입원했던 병원 관계자를 인용해 별세 사실을 보도했다.

AP통신은 노 전 대통령이 육군사관학교 동기인 전두환 씨를 대통령으로 만든 계기가 된 1979년 쿠데타를 지원하려고 자신이 지휘하던 육군 사단을 이끌고 서울로 진입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쿠데타와 1980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대한 군사 진압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두 시기라고 지적했다.

또 1987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되찾게 된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그해 말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후에 수뢰와 부정 축재를 인정하고 투옥됐으며 이후 김대중 정부 때 국가 화합 차원에서 사면을 받고 대중의 시선을 피해 말년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 통신은 고인은 재임 시절 한국의 유엔 가입 등 외교적 업적을 이뤘지만 동시에 퇴임 후 부정부패로 유죄를 선고받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또, 그의 재임 기간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배로 뛰었고, 임기 첫해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해 한국을 국제무대에 널리 알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기간 노동 불안과 인플레이션으로 '한국 경제의 기적'이 위협받았으며 재벌의 부동산 투기로 서민의 분노가 커졌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아울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그가 한국인에게는 1980년 광주에서 무장군으로 시위대를 진압한 것과 영원히 연관돼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 받는 노태우 전 대통령
재판 받는 노태우 전 대통령

(서울=연합뉴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사진은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2021. 10.26[연합뉴스 자료사진]

미 유력 신문인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서울발 부고 기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공과를 상세히 전달했다.

NYT는 한국에서 군부의 지원을 받은 마지막 대통령인 고인이 공산권 적대 국가들과 유대 관계를 구축하고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을 용인했으나, 결국은 반란과 부패로 감옥 신세를 진 인물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그는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다리를 놓았고, 한국은 유혈 혁명을 겪지 않고 그 과정을 통과했다"라는 한국외대 이정희 교수의 평가를 소개했다.

NYT는 노 전 대통령이 하나회 멤버로서 군부 쿠데타를 이끌고 1980년대 민주화 시위 탄압에 관여했으나, 88년 서울올림픽 유치와 북방정책 등의 공로도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군부와 민간 정권의 중간에서 "대체로 인기가 없었다"며 '물태우'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WSJ은 고인이 군사 독재 후 한국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첫 대통령이라면서 독재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논쟁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노 전 대통령이 군사 독재와 민주화 시위 탄압 과정에서의 역할로 비판을 받는 동시에 "외교 정책과 남북 관계에서 성과를 낸 첫 번째 대통령"이라는 서울대 이정철 교수의 평가도 WSJ 기사에 담겼다.

일본 교도통신은 그가 대통령 재임 시 '북방정책'으로 불리는 외교정책을 펼쳐 냉전 시대 북한의 우방인 중국과 옛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에 다가갔다고 평가했다.

아사히신문은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여당 대표였던 1987년 '민주화 선언'을 내놓아 군(軍) 출신이면서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를 높였다"고 보도했다.

또 1990년 5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국회에서 연설한 사실을 거론하기도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노 전 대통령의 업적으로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 성공 개최, 북방 외교, 북한과 유엔 동시 가입 등을 꼽으면서 "한국을 국제 무대로 크게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독일 dpa 통신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79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도운 뒤 그를 계승한 인물"이라며 "1987년 민주화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나자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한 뒤 대통령으로 선출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자신의 군인 이미지를 떼어내기 위해 '보통 사람들의 시대'라는 표어 아래 임기를 시작한 노 전 대통령은 1996년 부패와 내란·반역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천600억원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 사면됐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AFP통신은 한국의 전직 대통령이자 군인으로, 수백 명이 희생된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데 가담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타전했다.

중국 관영 영어뉴스 채널인 CGTN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 89세로 사망했다고 긴급 보도했다.

러시아 국영 스푸트니크 통신 역시 연합뉴스를 인용, 1988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을 통치했던 노 전 대통령이 89세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ykhyun14@yna.co.kr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71t26Ip7-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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