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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사망] 영화로도 조명된 '범죄와의 전쟁' 선포

송고시간2021-10-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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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1990년 10월 13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2012년 윤종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도 이로부터 시작한다.

그동안 끈끈한 의리로 뭉쳤던 이들은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자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고 또 맞으며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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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폭력배 소탕 등 일부 성과…검거 실적에 쫓겨 인권침해 비판도

범죄와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서울 중부서 소속 특별검문반이 1990년 10월 남대문시장입구에서 검문을 강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저는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 나갈 것입니다."

1990년 10월 13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집권 4년 차를 앞두고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소속 윤석양 이병이 정부의 반정부 성향 민간인 사찰과 검거 계획을 담은 '청명계획'을 폭로한 지 9일 만이었다.

2012년 윤종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도 이로부터 시작한다.

부패 공무원 출신으로 건달과 민간인 사이에 있는 '머리 쓰는 나쁜 놈' 최익현(최민식 분), 부산 최대 조직의 젊은 보스인 '주먹 쓰는 나쁜 놈' 최형배(하정우).

둘은 1980년대부터 결탁해 전성기를 누렸지만 대통령의 10·13 특별선언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그동안 끈끈한 의리로 뭉쳤던 이들은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자 서로의 뒤통수를 때리고 또 맞으며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이 작품은 조직폭력배를 미화하기는커녕 비열하게 '개싸움'을 벌이는 조폭들을 묵직한 풍자와 해학 기법으로 조명하면서 호평받았다. 익현과 형배의 "살아 있네" 대사는 관객 뇌리에 강하게 남아 지금까지도 패러디될 정도다.

익현은 형배를 검찰에 바치고 풀려난 뒤 검찰과 고위 공무원에 기대 사업을 이어간다. 아들까지 사법고시에 합격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려는 찰나, 형배가 찾아오며 영화는 끝난다. 그렇다면 실제 역사는 어땠을까.

범죄와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10월 13일 민생치안 확립을 위한 특별선언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청명계획 폭로로 어수선했던 정국을 전환할 목적으로 이뤄진 '범죄와의 전쟁' 선전포고는 TV로 전국에 생중계돼 압도적인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성과를 내려는 일선 경찰관들도 범죄 소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경찰은 범죄와의 전쟁 선포 1년 후 100여 차례의 검문으로 강도와 폭력범 등 60여만 명을 검거하고 2만600여 명을 구속했다는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국전환용 쇼'라는 비판도 컸다. 경찰이 발표한 범죄 감소 통계 역시 이전부터 이뤄진 검찰 수사 등의 효과가 그때 나타난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또 범죄와의 전쟁 과정에서 실적에 쫓긴 경찰들이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 체포하거나 고문 수사를 하면서 인권침해 문제가 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는 "범죄예방을 빙자해 선량한 시민이 부당하게 자유를 억압당하거나 범인을 검거한다는 구실 하에 폭행, 고문 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명암이 엇갈렸던 '범죄와의 전쟁'은 이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고 민주화 이후 조직범죄가 자연스럽게 쇠퇴하면서 현대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됐다.

lisa@yna.co.kr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QiY-y4pvP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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