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 대리사과…전씨측 "5·18 관련해 말씀한 것 아냐" 사과 범위 '재임 중' 한정
"남편, 모든 게 불찰이고 부덕 소치라고 말씀…화장해 북녘땅 보이는 곳에 뿌려달라 해"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이동환 기자 =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씨가 27일 "오늘 장례식을 마치면서 가족을 대신해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식에서 유족 대표로 나와 "돌이켜보니 남편이 공직에서 물러나시고 저희는 참 많은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5일장을 치르는 동안 취재진이 이씨를 비롯한 유족들에게 5·18 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입장을 거듭 물었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 시신 화장 직전에 이르러서야 고개를 숙인 것이다.
전씨가 1988년 11월 백담사로 떠나기 전 5·18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고, 2013년 9월에도 아들 재국 씨가 미납 추징금 납부계획서를 내러 검찰에 출석하며 "사죄드린다"고 말한 바 있으나, '고통받고 상처 입은 분들'을 거론하며 전씨 측이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사과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으며, 특히 그 범위를 '재임 중'이라고 못 박았다. 전씨가 1980년 9월 1일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발생한 5·18은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씨 측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기사를 보니 5·18 단체들이 사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데, (이씨가) 5·18 관련해 말씀하신 게 아니다"라며 "분명히 재임 중이라고 말하지 않았나"라고 설명했다.
민 전 비서관은 "재임 중에도 경찰 고문으로 죽은 학생들도 있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민 전 비서관은 이씨가 사과문을 직접 작성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가 미리 종이에 써온 추도사를 3분 15초가량 읽던 도중 사죄의 뜻을 밝힌 부분은 15초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비통한 소회를 털어놓는 데 주로 할애했다.
이씨는 "남편은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기억 장애와 인지 장애로 고생하던 중 금년 8월에는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암 선고까지 받게 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힘겹게 투병 생활을 인내하고 계시던 11월 23일 아침 제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갑자기 쓰러져 저의 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고 전씨의 사망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6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부부로서 함께 했던 남편을 떠나보내는 참담하고 비참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고통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이 세상과 하직하게 된 것은 감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남편은 평소 자신이 사망하면 장례를 간소히 하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며 "또 화장해서 북녘 땅이 보이는 곳에 뿌려달라고도 하셨다"고 유언을 전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닥친 일이라 경황이 없던 중 여러분의 격려와 도움에 힘입어 장례를 무사히 치르게 됐다"며 "이제 남은 절차에 대해서는 우선 정신을 가다듬은 후 장성한 자녀들과 충분한 의견을 나눠 남편의 유지를 정확하게 받들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씨는 "장례 기간 동안 경황이 없어 조문오신 분들께 미처 예를 다하지 못했다.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 바란다"며 "그리고 장례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hanj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1/11/27 12:3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