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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노조 여성노동자 얘기로 역사 속 빈칸 채우고 싶었다"

송고시간2022-01-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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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오는 2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 후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청계피복노동조합에서 활동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재단사 보조인 '시다'로 일을 시작한 이들이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후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고 노동 교실을 사수하는 여정을 되돌아봤다.

최근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 공동 연출을 맡은 이혁래 감독은 한국 노동자 투쟁사에서 여성 노동자의 업적은 남성 노동자와 지식인에 가려져 있던 게 사실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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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미싱타는 여자들' 김정영·이혁래 감독 인터뷰

"수동적이고 불쌍한 '시다' 아닌 빛나는 사람으로 그리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연출한 김정영, 이혁래 감독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연출한 김정영, 이혁래 감독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역사 속에서 빈칸으로 남아 있던 여성 노동자 이야기를 대중적인 기록으로 채우고 싶었습니다."(김정영 감독)

오는 20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 후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청계피복노동조합에서 활동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재단사 보조인 '시다'로 일을 시작한 이들이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후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고 노동 교실을 사수하는 여정을 되돌아봤다.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씨 등 환갑을 훌쩍 넘긴 조합원이 직접 출연해 당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다큐멘터리의 출발점은 김 감독이 2018년 서울시 의뢰를 받아 진행한 봉제 노동자 32명의 인터뷰 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숙희씨를 만나 책으로만 보던 당시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충격에 빠졌다.

최근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 공동 연출을 맡은 이혁래 감독은 한국 노동자 투쟁사에서 여성 노동자의 업적은 남성 노동자와 지식인에 가려져 있던 게 사실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김 감독은 "여러 여성 노동자를 인터뷰하면서 이들의 생애를 묶은 극장용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숙희씨는 옛 동료들을 주선하는가 하면 소중히 보관했던 사진이나 자료들을 척척 내놓으며 적극적으로 두 감독을 도왔다.

"이 프로젝트는 선생님의 강한 동기 덕에 진행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께서 올해로 일흔이신데, 본인의 기억마저도 희미해진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럼 그때 나와 함께했던 내 동료, 후배들을 누가 기억해줄까 하고 생각하셨대요."(이혁래)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예상대로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출연진을 섭외하는 과정부터가 쉽지 않았다. 가족들에게조차 밝히지 않았던 과거를 드러내는 게 망설여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불이익을 당했던 기억이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감독은 점차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 특히 2019년 조합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 폭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도우며 완전히 마음을 얻었다. 감독들이 그간 모아온 자료가 결정적 증거가 돼 조합원들의 승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이 일을 계기로 그전까지는 출연을 고사하다가 뒤늦게 허락하셔서 매우 중요한 증언을 해주신 분들도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당시를 "기적 같은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두 사람은 조합원들이 아픈 기억을 털어놓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무척 힘겨웠다고 말했다.

출연진은 영화에서 '시다' 혹은 '공순이'라 불리며 멸시받고 형사들로부터 '빨갱이'라 손가락질당하던 때를 회고하며 울먹였다. 무엇보다 노동 교실을 되찾기 위해 농성을 벌이다 조합원 여러 명이 구속된 9.9 사건을 떠올릴 때는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김 감독은 "촬영이 끝나고 나면 나 역시 진이 빠졌고 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며 "그런 나날이 계속해서 이어졌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묵혀뒀던 속내를 다 이야기하시고 나서는 점점 신이 나는 게 보였어요. 말을 못 하고 살다가 일종의 장(場)이 펼쳐진 거니까요."

영화는 평범한 할머니처럼 보이는 조합원들의 반짝이는 청춘도 동시에 보여준다. 이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그 시절의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유신 정권의 배경으로 남거나 수동적이고 불쌍한 '시다'로만 묘사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평화시장 소녀 미싱사들의 청춘기로,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로 빛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이혁래)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열린 시사회를 보면 감독들의 이런 마음은 제대로 전해진 듯하다. 김 감독의 '문자 초대'만을 받고 영화를 관람한 각계 인사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아내, 딸과 함께 극장을 찾은 박찬욱 감독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고 봉준호 감독은 "근래에 본 가장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라고 응원의 말을 건넸다.

'아침이슬'을 부른 가수 양희은은 시사회 후 김 감독에게 "저분들이 공장에서 일했듯, 나도 맥줏집에서 노래 부르면서 일했다"며 "나도 똑같은 처지여서 연대의 마음으로 찾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감독과 이 감독은 영화를 본 관객들도 같은 감상을 느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현대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라서 배경지식이 없다면 못 볼 것으로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사실 그냥 '애들 얘기'입니다. 저 아이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성장해서 어른들을 부끄럽게 하고 감동하게 하는지를 직접 느꼈으면 좋겠습니다."(이혁래)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연출한 김정영, 이혁래 감독
다큐멘터리 '미싱타는 여자들' 연출한 김정영, 이혁래 감독

[진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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