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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법 10년] ③ 심사 대기자만 1만2천명…"수년째 심사장 근처도 못가"

송고시간2022-02-0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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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지난달 21일 서울 출입국외국인청 난민 심사장에서 만난 아프리카 출신 A씨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난민 1차 신청 건수는 2천341건으로, 전년(6천684건)보다 65.0%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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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신규 신청자 줄었지만, 극심한 적체는 여전

국제 정세마저 불안…"난민 몰려 '제2의 제주 예멘' 사태 발생할 수도"

난민심사관 1인당 130여 건씩 담당…"관련 인프라 시급히 확충해야"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한국에 온 지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이번에는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지난달 21일 서울 출입국외국인청 난민 심사장에서 만난 아프리카 출신 A씨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고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2019년 한국으로 온 A씨는 곧바로 난민 신청서를 냈고, 한 차례 '불인정' 판정을 받았다. 이에 재심사 신청을 냈고, 1년여를 기다린 끝에 이날 출석해 재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한산한 난민 신청장
한산한 난민 신청장

1월 21일 오후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에 마련된 난민 신청장에서 한 신청자가 접수창구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촬영 이상서]

난민 심사장은 한산했다. 대기장에 마련된 20여 개 좌석에는 A씨를 포함해 서너 명이 잠시 앉아 있다가 자리를 떴다. 신청서를 작성하는 이도 보기 힘들었다.

심사장에 홀로 남아있던 A씨는 긴장을 애써 누그러뜨리며 "한국에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만 하더라도 이른 아침부터 밀려온 신청자로 건물 바깥까지 줄이 늘어섰지만, 오늘 방문자는 10명 남짓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 "신청한 지 수년 넘었지만…심사장 근처도 못 가"

난민 신청장의 한산한 모습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인 입국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난민 1차 신청 건수는 2천341건으로, 전년(6천684건)보다 65.0% 급감했다.

1차 신청은 첫 신청을 말하며, 여기서 '불인정' 판정을 받으면 이의(2차) 신청을 할 수 있다.

지난해 신청 건수는 난민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201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2019년(1만5천452건)과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에 살고 싶습니다'
'한국에 살고 싶습니다'

1월 21일 오후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에 마련된 난민 심사장에서 한 신청자가 면접하고 있다. [촬영 이상서]

그럼에도 '심사 병목' 현상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 난민 인권단체 관계자는 "난민 신청을 한 뒤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 난민 심사장 근처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미얀마군의 '인종청소'를 피해 어린 딸과 함께 2018년 한국으로 온 로힝야족 B씨는 입국 직후 난민 신청서를 냈지만, 3년 이상 지난 지금도 심사를 받지 못했다.

그 사이 딸은 서울의 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정도로 컸다.

B씨는 "기약 없이 난민 신청자 신분으로 불안정한 체류를 이어가고 있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심사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거나, 박해 사유를 입증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심사 대기 건수는 1차 신청 7천643건, 이의 신청 4천526건 등 총 1만2천169건에 달한다.

여기에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이들이 결과에 불복해 진행하는 행정소송 건수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욱 불어난다.

난민 인권단체 '아시아 평화를 향한 이주' 김영아 대표는 "난민법에도 난민 신청 후 6개월 이내에 심사해 결정을 내리도록 명시돼 있다"며 "6개월은커녕 몇 년을 기다리다가 심사받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는 난민 신청자도 있다"고 전했다.

◇ 불안한 국제 정세…"코로나 사태 끝나면 난민 더 밀려올 수도"

혹독한 겨울 맞는 시리아 피란민들
혹독한 겨울 맞는 시리아 피란민들

시리아 북부 알레포주의 아프린 지구에 들어선 피란민촌이 1월 19일(현지시간) 눈에 덮여 있다. 강력한 눈폭풍과 폭우가 시리아 북부 지역의 여러 피란민촌을 덮친 탓에 도로가 끊기고 수백 동의 천막들이 망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더구나 코로나19 사태가 해소되면 난민 신청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시리아, 예멘 등 중동 국가의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난민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며 "이미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인 터키, 독일 등 기존 수용국에만 계속해서 짐을 지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유럽과 중동 국가의 난민 거부 기조가 심해진 탓에 '난민의 분산 수용'이 올해 주요 지구촌 의제가 될 것"이라며 "난민법에 가입한 한국도 국제적 과제를 분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얀마 등 아시아 국가에서 거세지는 민주화 운동도 난민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미얀마에 접한 태국에는 수많은 난민이 건너오기도 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구촌 이상기후 현상도 난민을 발생시킨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2011∼2020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기록적인 홍수와 폭염, 가뭄, 폭풍, 해수면 상승 등 기후재난으로 2억1천만 명이 넘는 실향민과 난민이 발생했다.

난민 심사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후 국경 간 이동이 지금보다 원활해지면 신규 난민 신청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무사증 입국 제도가 재추진된다면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처럼 많은 난민이 동시에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 "이제는 난민 심사 시스템 뜯어고쳐야 할 때"

아프간 여성·난민 지원 촉구하는 프랑스 시위대
아프간 여성·난민 지원 촉구하는 프랑스 시위대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여성단체 및 인권단체 회원들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 대한 보호와 난민들의 재정착에 대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때문에 이제라도 난민 심사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관련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심사를 받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인프라 부족"이라며 "전문성을 갖춘 심사관뿐 아니라 자문위원단, 통역 등 관련 인력을 늘려 적체 현상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난민심사 인력은 90명에 불과해 2020년보다 되레 3명 줄었다.

지난해 말 난민심사 대기 건수가 1만2천169건이므로 심사관 1인당 135건을 떠맡아야 하는 셈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제 정세와 신청자 국가의 인권 상황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심층 면접을 거치고, 필요한 경우 보완 면접까지 진행하는 게 난민 심사"라며 "심사관 1명당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인원은 한두 명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의 난민 신청·심사장 입구. [촬영 이상서]

서울 출입국외국인청의 난민 신청·심사장 입구. [촬영 이상서]

전문가들은 단순히 일손을 늘리는 수준에 그칠 게 아니라, 선진국처럼 난민 심사 기구의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공익법센터 '어필' 이일 변호사는 "현 난민위원회는 독립성과 중립성을 갖추지 못했고, 1·2차 심사 모두 법무부 소속 심사관이 맡는다"며 "이의신청 심사만이라도 국민권익위원회와 같은 국무총리 직속 기관으로 이관해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난민 심사는 법무부가 1차 심사, 법무부 난민위원회가 2차 심사를 담당한다. 난민조사관은 모두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소속 공무원 가운데 선발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난민유입 대응 관련 정책 현황과 개선 방향' 보고서에서 "난민 인정 심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급 기관에 휘둘리지 않고)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판단할 능력이 필요하다"며 "현행 난민위원회는 비상설기구라 전문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제대로 심사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캐나다의 경우 독립 기관인 이민난민위원회(IRB)가 모든 심사 결정 권한을 행사한다. 외국인 체류와 국경 관리 등을 담당하는 부처가 여기에 관여하지 못해 독립성과 공정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은 국토안보부 산하 시민권·이민서비스국이 1차 심사, 이민법원이 이의신청 심사를 담당한다. 호주도 내무부 내 난민 담당 부서가 1차 심사, 행정심판위원회 이주난민과가 이의신청 심사를 맡는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난민 심사나 난민 소송 등 인력 충원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 관계기관과 협의해 증원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난민인정신청서
난민인정신청서

난민 신청장에 마련된 난민인정신청서.[촬영 이상서]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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