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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zine] 봄이 오는 길목 ② 춘당매의 감동, 거제

송고시간2022-03-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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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밭 가상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 …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병이 나려고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김유정 소설 '봄·봄' 중에서) 마침내 봄이다.

남도에는 이미 봄이 상륙했다.

겨울에도 붉은 동백이 고운 거제에는 입춘이 지나자 매화, 백리향, 보리수, 로즈메리 등 봄의 전령들이 수줍은 듯 꽃망울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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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처럼 '울울창창' 지심도 동백림

구조라 초등학교 마당에 핀 춘당매 [사진/조보희 기자]

구조라 초등학교 마당에 핀 춘당매 [사진/조보희 기자]

(거제=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밭 가상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 …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병이 나려고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김유정 소설 '봄·봄' 중에서) 마침내 봄이다. 남도에는 이미 봄이 상륙했다. 마음도 화사한 봄빛 따라 일렁인다.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멀미가 날 듯도 하다.

◇ 봄·봄 거제

겨울에도 붉은 동백이 고운 거제에는 입춘이 지나자 매화, 백리향, 보리수, 로즈메리 등 봄의 전령들이 수줍은 듯 꽃망울을 터뜨렸다. 거제 지심도에는 수백 년 된 동백 고목이 빽빽했다. 짙은 초록의 무성한 잎으로 생명력을 뿜어내는 동백을 비롯해 후박나무, 돈나무, 예덕나무, 생달나무, 가마귀쪽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난대성 활엽수가 빚어내는 상록의 향연은 성하의 푸르름을 방불했다.

지심도 동백림 [사진/조보희 기자]

지심도 동백림 [사진/조보희 기자]

거제의 햇볕은 따사로웠다. 출렁이는 옥빛 바다는 매섭지 않고 갯바람은 부드럽다. 동백꽃이 흐드러지고, 1월 초면 춘당매가 꽃망울을 맺고 2월에는 백매, 홍매가 앞다투어 개화하며, 시금치와 냉이를 캘 수 있는 거제의 겨울은 봄 같다. 실제로 거제에는 겨울에 낮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별로 없다. '봄·봄·여름·가을' 거제이다.

한반도 남쪽에는 아열대식물이 제법 많이 자란다. 지심도 동백림은 여름 숲처럼 푸르고 울창했다. '한여름 숲'이라고 한다면 믿기지 않을지 모르겠다. 숲의 70%가량을 상록수인 동백이 차지하고 있었고, 동백나무들은 수령이 수백 년 됐음 직하게 고목이었다. 나머지 수목과 키 작은 관목들도 상록수가 대부분이었다.

섬이었기 때문에 개발과 훼손을 피할 수 있었던 게 꿈같은 '한겨울 푸른 숲'을 만든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숲은 햇빛이 뚫고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깊어 어둡기까지 하다. 푸른 원시림은 비췻빛 바다, 부서지는 하얀 파도와 어우러졌다. 자연의 오랜 숨소리에 실린 감동이 전해졌다.

지심도에 핀 홍매화 [사진/조보희 기자]

지심도에 핀 홍매화 [사진/조보희 기자]

'지심'(只心)은 '오로지 마음'이라는 뜻이다. 깊은 운치와 발랄한 재치가 동시에 느껴지는 이름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모양이 한자 '心'(마음 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지심도는 거제시 일운면에 속하는, 0.36㎢(약 11만 평)의 작은 섬이다. 15가구, 20여 명의 주민이 산다. 2시간 정도 걸으면 섬의 참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 섬 전체가 해상 식물원…외도

거제에서 봄기운을 특히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외도이다. 거제 본섬에서 4㎞ 정도 떨어진 외도는 섬 전체가 통째로 식물원이다. 고(故) 이창호 씨와 부인 최호숙 씨가 1969년 매입해 식물원을 조성했다. 외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에도 물이 풍부해 난대 및 열대성 식물이 잘 자라고, 1년 내내 꽃이 지지 않는다.

'외도보타니아'로 명명된 이 식물원에는 천연 동백림과 아열대 식물인 선인장, 코코아 야자, 가자니아, 유칼리, 용설란, 종려나무 등 3천여 종의 꽃과 나무가 자란다. 마치 지중해의 섬을 옮겨놓은 듯한 이국적 풍경이 연출돼 있었다. 능수매화, 홍매, 백매가 꽃봉오리를 터뜨렸다. 외도는 2천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지상 낙원의 섬'으로 통한다. 걸어서 돌아보는 데 2시간 정도 걸렸다.

예쁘게 가꾼 외도 상록수 [사진/조보희 기자]

예쁘게 가꾼 외도 상록수 [사진/조보희 기자]

일본 쓰시마(대마도) 열도에서 가까운 거제에서는 맨눈으로 쓰시마 섬을 볼 수 있는 곳이 꽤 있다. 외도와 지심도도 그런 곳이다. 맑은 날 외도 파노라마 전망대에 오르면 옆으로 길게 누운 쓰시마 섬이 보인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2000년 8월 쓰시마 섬까지 수영해 대한해협 횡단에 성공했을 때 출발점이 거제 장승포항이었다.

◇ 한려해상국립공원 제1경 '해금강'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자, 본 섬 외에도 70여 개의 작은 섬을 거느린 거제에는 유람선 문화가 발달해 있다. 외도와 지심도 외에도 내도, 대소병대도, 산달도, 윤돌도, 이수도, 저도 등이 관광지로 유명한 거제에는 섬과 섬을 잇는 도선과 유람선 망이 촘촘했다. 외도로 들어가는 유람선은 대개 '바다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해금강 옆을 지나간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전남 여수시에서 경남 통영시 한산도 사이의 한려수도 수역과 남해도, 거제도 등 남부 해안 일부를 합쳐 지정한 해상공원이다. 해금강은 한려해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으로 꼽힌다. 해금강은 수억 년 동안 파도와 바람이 조각한 거대한 아름다움이었다. 사자바위, 미륵바위, 촛대바위, 신랑바위, 신부바위, 해골바위, 돛대바위 등 기암괴석이 탄성을 자아낸다.

해금강 [사진/조보희 기자]

해금강 [사진/조보희 기자]

해금강의 큰 바위 몸체는 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바닷속에서 넷으로 갈라진다. 4개의 절벽 사이에는 십(十)자형 수로가 뚫려 있다. 작은 배는 이 수로를 통과할 수 있지만 요즘 운행되는 유람선들은 크기가 커 수로를 지나가지 못하고 수로 입구까지만 다가갔다가 되돌아 나온다. 바위 위에서 한가롭게 쉬고 있는 가마우지 떼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 '봄의 전령' 구조라 춘당매

구조라 초등학교 교정에 핀 춘당매는 한국의 '봄의 전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일찍 피는 매화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1월 10일쯤에 꽃봉오리를 맺어 입춘 전후에 만개하지만, 그보다 더 빨리 필 때도 있다. 춘당매는 구조라 초등학교 교정에 4그루, 마을 초입에 1그루 자라고 있었다. 수령은 120∼150년으로 추정된다.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하얀 꽃이 소담스러운 춘당매를 휴대전화 영상으로 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춘당매의 개화를 반기는 지역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폐교된 구조라 초등학교는 구조라 앞산 수정봉 능선에 축조된 구조라 성 밑에 자리 잡고 있다. 구조라 성은 쓰시마 섬 쪽에서 올라오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시대에 축조된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에 오르면 긴 모래 해변으로 유명한 구조라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람의 언덕 [사진/조보희 기자]

바람의 언덕 [사진/조보희 기자]

◇ 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풍차가 서 있는 바람의 언덕은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있는 핫플레이스이지만 언덕 아래위에서 아지매, 아재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만큼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찾는 이들이 많다. 바람의 언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선대가 자리 잡고 있다. 푸른 바다와 커다란 바위가 어우러진 풍광이 절경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거제에는 곳곳이 비경이지만 남국의 풍치를 즐기려면 거제식물원이 제격이다. 온대는 물론 난대, 열대성 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이곳에는 꽃잎이 일곱 번 변화하는 란타나, '여행하는 사람을 위한 나무' 여인초, 꽃이 횃불처럼 생긴 토치 진저, 홍콩을 상징하는 꽃인 나비목 등 희귀식물을 볼 수 있다. 수령 300여 년의 흑판수, 보리수, 바오밥나무 등은 높이가 20∼30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였다.

신선대 [사진/조보희 기자]

신선대 [사진/조보희 기자]

◇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남도에는 동백이 있어 꽃 귀한 겨울에 봄기운을 선사한다. 김유정의 대표작 '동백꽃'은 향토색 짙은 산골을 배경으로 인생의 봄을 맞아 커가는 사춘기 소년 소녀 사이에 싹트는 풋풋한 사랑을 해학적으로 그려 웃음을 자아낸다. 열일곱 살 점순이는 날이 풀리니 별로 우스운 것도 없는데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 동갑인 '나'는 이놈의 계집애가 미쳤나 하고 의심한다. 연일 아웅다웅 다투던 끝에 점순은 뭣에 떼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졌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흐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파묻혔다.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아찔해졌다.

동백의 꽃말은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이다. 올봄에는 꽃말에 한마디를 덧붙이자.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리라'.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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