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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그대로의 역사' 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 제천에 문 연다

송고시간2022-02-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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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작가와 편집자의 숨결이 오롯이 담긴 역사성에 희귀성이 더해지니 그 가치를 견줄 대상이 얼마나 있을까.

충북 제천시 신월동 세명대학 후문 인근 전원주택지 한 편에 자리 잡은 이곳은 이름에서 짐작하듯 세상에 첫 번째로 나온 책을 모아놓은 서점이다.

시집, 소설, 만화 등 단행본 5만종의 초판본과 잡지, 신문, 사보, 기관지 등 정기간행물 1만5천종의 창간호가 40여평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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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대 김기태 교수 '처음책방' 3월 개점…6만5천종 10만권 소장

'처음책방' 보유 희귀 초판본
'처음책방' 보유 희귀 초판본

권정상 촬영

(제천=연합뉴스) 권정상 기자 = 세상 만물에 '첫'이라는 관형사가 붙으면 대개 귀한 존재로 대접받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책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작가와 편집자의 숨결이 오롯이 담긴 역사성에 희귀성이 더해지니 그 가치를 견줄 대상이 얼마나 있을까.

'처음책방'.

충북 제천시 신월동 세명대학 후문 인근 전원주택지 한 편에 자리 잡은 이곳은 이름에서 짐작하듯 세상에 첫 번째로 나온 책을 모아놓은 서점이다.

시집, 소설, 만화 등 단행본 5만종의 초판본과 잡지, 신문, 사보, 기관지 등 정기간행물 1만5천종의 창간호가 40여평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10만권이 넘는 책이 저마다 '초판', '1호' 타이틀을 지녔다.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1961년 정향사), 박목월의 첫 시집 '산도화'(1955년 영웅출판사), 김기림의 시집 '바다와나비'(1946년 신문화연구소), 김영랑의 유일한 시집 '영랑시선'(1956년 정음사), 박완서의 등단작 '나목'(1970년 여성동아 11월호 별책부록) 등 희귀본도 쉽게 눈에 띈다.

또 '현대문학' 창간호(1955년 1월호)부터 125호(1965년 5월호) 전권,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1976년 3월호)부터 종간호(1980년 8월호)까지 전권도 찾아볼 수 있다.

세명대학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김기태(59) 교수가 지난 30년 동안 수집한 책들로, 전국 헌책방을 뒤지고 지인들로부터 기증도 받았다.

세명대 김기태 교수
세명대 김기태 교수

권정상 촬영

그의 초판본 수집벽은 '좌절'의 산물이기도 하다. 애초 시인을 꿈꾼 그는 고교시절 전국 백일장을 휩쓸고 당시 '한국문학 사관학교'로 불리던 경희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경희대에는 이미 유시화, 이문재, 김형경, 서하진 등 재학생 신분의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즐비했다.

문재의 한계를 체득한 그는 출판평론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학 졸업 후 삼성출판사, 지학사, 아이템플, 삼진기획을 차례로 거치며 경희대대학원 출판잡지학과와 신문방송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한국출판연구소 주관 평론 공모에서 한국출판평론상 첫 수상자로 선정되며 출판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해 왔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청계천 헌책방을 들락거렸다. '내가 힘들여 만든 책이 헌책으로 전락하지는 않나'라는 걱정에 헌책방을 뒤지다 초판본을 접하게 되면서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2001년 3월 세명대 교수로 부임한 뒤에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초판본 수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김 교수는 19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초판본은 날 것 그대로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오탈자, 내용의 오류, 문장 누락 등 책을 만든 이들의 과오까지 포함한 오롯한 역사가 초판본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도종환의 시집 '접시꽃 당신'(1986년 실천문학사) 초판은 그 사례를 목도하는 즐거움을 준다.

초판에 수록된 시 '아홉가지 기도'가 정작 여덟가지 기도만을 담고 있을 뿐 제대로 된 아홉가지 기도는 재판에서야 등장한다.

편집 과정에서 '나는 지금 깊은 허무에 빠져 기도합니다. 그러나 허무 옆에 바로 당신의 계심을 알게 하소서'라는 세번째 기도가 누락됐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로 평가받는 최인훈의 '광장'은 초판 발행 이후 10여 차례 수정과정을 거친 산물이다.

김 교수는 이 서점을 "추억을 소환하는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책이든 사연이 없는 게 없고, 그 책과 관련된 사람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그래서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책을 팔되 그냥 와서 책만 보는 것도 환영한다고 했다.

또 잡지의 창간사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어 연구 사료로도 가치가 높은 만큼 연구자들의 방문도 환영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얼추 책 분류와 가격표 붙이는 작업을 마무리 짓고 3월부터는 서점 대표인 부인이 직접 고객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그는 "발행 연도, 작가의 명성, 그리고 저자의 서명이나 인지에 도장이 찍혔는지 여부에 따라 가격을 책정할 것"이라면서 "팔고 싶지 않은 책에는 아주 높은 가격을 매기겠지만, 그 가격에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놓아줄 생각"이라며 웃었다.

'처음책방'
'처음책방'

김기태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jus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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