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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빈의 플랫폼S] 뜨겁던 '홍천 민둥산' 공방전 잠재운 '과학의 힘'

송고시간2022-03-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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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 편집자주 :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지속가능을 위한 테크의 역할, 녹색 정치, 기후변화 대응, 이 과정에서의 갈등 조정 문제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충북 제천에 여러 산이 통째로 민둥산이 된 사진과 더불어 공론화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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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속 기념촬영도 못한 민관협의회…환경갈등 조율 '이정표' 돼

과학적 접근으로 '생산적 갈등'…물러선 편에 명분·실리 챙겨주기

벌채현장
벌채현장

[산림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19년 12월

[※ 편집자주 :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지속가능을 위한 테크의 역할, 녹색 정치, 기후변화 대응, 이 과정에서의 갈등 조정 문제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열 번째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지난해 5월 많은 언론과 방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논란이 번진 강원도 홍천군 두천면의 민둥산 사건.

울창한 산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삭발이 이뤄진 듯 벌겋게 흙이 드러낸 모습이 공개됐다. 모두베기가 된 곳이었다.

충북 제천에 여러 산이 통째로 민둥산이 된 사진과 더불어 공론화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이는 정부와 환경단체, 임업계 간에 극심한 대립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사유지 경제림의 벌목 적정성 및 나무의 벌목 연령, 오래된 숲의 탄소 흡수력 등을 놓고 주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당사자들 간 갈등이 조율되고 타협안이 발표됐다. 각 주체의 서명까지 이뤄졌다.

파열음이 컸던 갈등 상황과 달리 타협안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조용한 결말이었지만, 끝없는 대립 또는 힘을 동원한 밀어붙이기로 귀결되는 환경 관련 논쟁에서 타협이 이뤄진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다.

기후변화 대응, 탄소중립을 놓고 정치권, 산업계, 세대 간의 갈등은 복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지속가능성,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 에너지 가격 등을 둘러싼 갈등은 더욱 극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홍천 민둥산 사건을 둘러싼 갈등 조율 과정을 살펴볼 필요성이 있는 대목이다.

홍천군 두촌면 벌채 현장
홍천군 두촌면 벌채 현장

(서울=연합뉴스) 지난해 5월 최병암 산림청장(오른쪽 두 번째)이 강원 홍천군 장남리 입목 벌채 현장을 찾아 현장 점검하는 모습. 2021.5.17
[산림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갈등의 시작…'30억 그루 심기' vs '국민 생명 위협'

당시 홍천 민둥산 사건은 소유자가 자신의 경제림 인근에 재선충이 번지자 선제적으로 나무를 베어내면서 불거졌다. 수익화한 뒤 묘목을 다시 심으려 했다는 게 소유자의 입장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무차별적인 벌목이 기후 재난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왔다.

종합지, 인터넷 언론, 지상파 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 등이 앞다퉈 보도했는데, 언론의 관점도 양갈래였다.

나무들을 베어낸 자리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인근 거주자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비판의 화살은 주로 정부로 향했다. 산림청이 그해 1월 탄소중립을 위한 방안으로 30억 그루의 나무를 새로 심는 계획을 내놓은 탓에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이었다. 다만 산림청의 해당 계획은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민둥산 사건은 오래된 나무, 숲의 탄소흡수량 변화에 대한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산림청은 숲이 오래될수록 숲의 탄소 흡수량이 줄어든다는 입장인 반면, 환경단체들은 나이 든 나무가 탄소를 더 잘 흡수할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벌채를 통해 결국 탄소가 더 배출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재생에너지원의 하나로, 버려지는 잔가지와 재해 피해목 등을 태워 에너지를 만드는 산림바이오매스마저도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꼽히기까지 했다.

몇 달 동안 산림청과 임업계, 환경단체 간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졌다.

양보 없는 공방만 이뤄지다가 지난해 7월 산림청, 환경부, 환경단체, 임업단체, 전문가가 참여한 '산림부문탄소중립민관협의회'가 구성됐다.

그러나, 참여 당사자들 사이에서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기후위기 악화…바이오매스 보조금 중단 촉구' 시위
'기후위기 악화…바이오매스 보조금 중단 촉구' 시위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녹색연합 등이 지난해 7월 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기후위기 악화시키는 바이오매스 보조금 중단 촉구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2021.7.5
mjkang@yna.co.kr

◇ 갈등의 조율 방법…해법의 단초는 '과학' 기반 전문가 간 논의

첫 회의부터 신경전이 벌어졌다. 강영진 위원장 등 20명의 위원은 단체 기념 촬영도 하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의 첫 회의인데도 산림청장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환경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한 탓이었다.

이후 회의는 진통을 거듭했다. 고성이 오가기 십상이었다.

정부라고 단일 의견도 아니었다. 산림청과 환경부 간에 관점도 달랐다. 조율에 난항을 겪으면서 불만을 품은 위원들의 회의 불참이 이어지기도 했다. 열린 회의만 해도 3개월간 총 22차례에 달했다.

돌파구는 과학에서 나왔다. 관계부처와 환경단체 등 이해당사자들이 각각 추천한 연구기관 전문가 및 학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그룹이 산림분야 탄소 흡수량 부분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검증하기로 했다.

물론, 전문가 그룹은 데이터 해석과 연구조사 방식을 놓고 이견을 보이기도 했지만, '과학의 힘'은 컸다. 결국 공동검토 결과 보고서가 마련됐다.

우선 오래된 숲의 탄소 흡수량을 둘러싼 대립이 해결됐다.

5인의 전문가 검토 결과 산림청이 연구 기반으로 삼은 IPCC(기후변동에 관한 정부간 패널) 지침을 인정해 숲이 나이가 들면서 산림의 탄소 흡수량이 감소한다는 데 합의를 이뤘다.

산림청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셈이지만, 이 방법론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대 의견으로 달아 환경단체의 입장도 일부 수용됐다.

산림부문 탄소중립 민관협의회 논의 결과 발표
산림부문 탄소중립 민관협의회 논의 결과 발표

(서울=연합뉴스) 강영진 산림부문 탄소중립 민관협의회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27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산림부문 탄소중립 민관협의회 논의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2021.10.27 [산림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갈등 조율의 결과…실리나 명분 안고 양보

협의회 논의 과정에서 산림청은 '30억 그루 나무심기' 계획을 포기해 환경단체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환경단체 생명의숲 유영민 사무처장은 이메일로 "생태환경의 건강성을 고려한 산림경영과 지역 기반 산림순환경영에 대한 환경단체 제안이 수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의회는 그러면서도 우리나라 산림 연령대가 특정 시기에 몰려있는 문제점을 해소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를 위해 일정 부분 벌채를 지속해야 한다는 산림청의 기본적인 추진 전략에 공감대를 이뤘다.

환경단체와 임업단체가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웠던 벌기령, 즉 나무를 벨 수 있는 나이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졌다.

산림청이 30억 그루 나무심기와 함께 내놓은 벌기령(벌채 가능 나무 연령) 완화 계획도 철회됐다.

임업인들을 위해 20∼30년 된 나무를 벨 수 있도록 한 계획이었는데, 환경단체가 강하게 반발했다.

임업단체는 그동안 벌기령 폐기를 요구해온 반면, 환경단체는 강화를 주장해와 타협이 어려워 보였다.

2019년 12월 독일의 크리스마스 트리 벌목 현장 [EPA=연합뉴스]

2019년 12월 독일의 크리스마스 트리 벌목 현장 [EPA=연합뉴스]

그러나, 임업단체가 협의 과정에서 물러섰다.

이상귀 한국임업인총연합회 정책실장은 1일 통화에서 "산림의 80%가 기존 벌기령을 거의 넘은 점도 있는 데다, 협의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양보했다"고 말했다.

대신, 정부는 임업인들에게 임업직불제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유림의 벌채를 제한하는 데 대한 대가로 국가가 일정한 보상을 해주는 제도다. 임업인들의 숙원이었던 제도로 정부의 추진과 국회의 협조 속에 지난해 11월 관련 법이 제정됐다.

환경단체는 벌기령 완화를 반대한 주장을 관철하고, 임업계는 실리를 챙기면서 '윈-윈'(win-win)한 셈이다.

논란이 됐던 산림바이오매스도 대형 발전소 위주에서 지역별 소규모 발전소로 점차 전환하기로 했다. 버려지는 목재를 활용해 재생에너지를 계속 생산하면서, 바이오매스를 위한 불필요한 벌채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다.

강영진 위원장은 통화에서 "환경 문제는 가치가 충돌하고 전문성의 다름이 크기 때문에 합의하는 게 대단히 어려운데, 이런 갈등이 큰 사안에서 구속력 있는 서명까지 이뤄진 것은 처음"이라며 "이견과 갈등도 생산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는 자신감 속에서 협의에 나서는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광빈의_플랫폼S #홍천_민둥산 #갈등 #탄소중립 #기후변화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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