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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에서 변호사로 변신한 이소은 "실수는 내게 자유를 줬다"

송고시간2022-03-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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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1998년 데뷔해 '서방님'·'오래오래' 등으로 사랑받은 가수 이소은은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스쿨에 진학한 뒤 뉴욕에서 변호사로 변신했다.

가요계에서 10년, 그리고 법조계에서 10년가량을 '불태운' 그가 자신의 인생 경험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를 들고 오랜만에 국내 팬들을 찾아왔다.

이소은은 31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실수는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고, 저를 자유롭게 하기도 했다"며 "실수를 통해 배우고, 그 배움을 토대로 경험이 쌓이다 보면 마음의 자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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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경험담은 에세이 출간…"아시아 여성 정체성, 강점으로 이용"

"가수로서 얻은 자산은 '관객 읽기'…은퇴했다고 말한 적 없어"

가수 겸 변호사 이소은
가수 겸 변호사 이소은

[수오서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웃으면서, 그렇지만 당당하게! 직장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다면 이렇게 말하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죠."

1998년 데뷔해 '서방님'·'오래오래' 등으로 사랑받은 가수 이소은은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스쿨에 진학한 뒤 뉴욕에서 변호사로 변신했다.

가요계에서 10년, 그리고 법조계에서 10년가량을 '불태운' 그가 자신의 인생 경험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를 들고 오랜만에 국내 팬들을 찾아왔다.

이소은은 31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실수는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고, 저를 자유롭게 하기도 했다"며 "실수를 통해 배우고, 그 배움을 토대로 경험이 쌓이다 보면 마음의 자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로펌을 거쳐 국제기구인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 뉴욕 지부 부의장으로 일했다. 현재는 뉴욕에서 '뮤직 바이 더 글래스'(Music By The Glass)라는 문화 관련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면서 개인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가다듬고 있다.

이처럼 성공적인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온 그에게 '실수'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지만, 민망한 실수도 잦았다고 한다.

"변호사들 모임 자리에 강렬하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제가 실수로 (주문을 받는) 바텐더에게 제 소개를 한 거예요. 주변 변호사들이 박장대소했어요. 너무 놀라서 표정 관리가 안 됐답니다. 하하."

그는 "변호사라면 날카롭고 이성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결국 다 똑같은 사람"이라며 "저 역시 실수를 굉장히 많이 했지만, 자책하지 말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자는 의미에서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라고 책 제목을 지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많은 실수를 통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이 실수들은 제가 거쳐야 했을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자유로워졌다"며 "젊은 독자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으레 외국 기업이나 국제기구라면 사내 정치나 불합리한 관행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기대하지만, 어디나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히려 국제기구 근무 경험을 통해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타인을 설득하고 나를 단련한다'는 취지의 사내 정치를 배웠다고 했다.

이소은은 "조직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열정적인 사람이 조용해지는 것"이라며 "이런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일을 진행하려면 상대에 따라 소통 방식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가수로 활동하면서 얻은 큰 자산 가운데 하나는 '관객 읽기'"라며 "무대에 서면 관객 에너지를 느끼고 이에 맞추려고 제 템포를 계산하는데, 사회에서 소통할 때도 이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국에 가서야 알았다"고 덧붙였다.

"국제기구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너무나 답답하고 힘든 일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길'이 보였죠. 일을 해내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좋을지 여러 가지를 실험해보는 제게는 무척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소은의 자전적 에세이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이소은의 자전적 에세이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수오서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96년 EBS 창작가요제에 참가했다가 가수 윤상의 눈에 띄어 1998년 1집 '소녀'로 데뷔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가요제 참가 당시 고작 중학교 2학년생이던 그가 보여준 '열정'이다.

이소은은 당시 오선지 음악 노트를 찢어 손으로 직접 음표를 그려가며 작곡했고, 피아노 반주나 컴퓨터 음악 대신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테이프에 거칠게 녹음해 제출했다.

그는 "당시로서는 목소리와 바이올린이라는 제가 가진 최고의 악기를 동원한 나름 창의적인 방법이었다"며 "나중에 들으니 주최 측이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노래한 사람도 처음이고, 이런 종류의 데모 테이프를 낸 사람도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 웃었다.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해 다시 음악을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자 "음악은 늘 관심 있는 분야"라며 "저는 음악에서 은퇴했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음악 역시 나의 '유니크함' 가운데 하나이니, 이를 계속 확장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법조계 엘리트 사회에서 여성이면서, 아시아인이기도 했다. 주류 백인 남성은 겪지 않을 '유리 천장'이 두 겹이나 있는 셈이었다.

이소은은 "미국에서도 종종 유리 천장을 경험하곤 한다"며 "당연히 대놓고 차별을 하지는 않지만, 누구를 스카우트할 때 백인 남성을 선호하는 등 '무의식적인 편견'을 종종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러나 "아시안 여성이라는 '마이너리티'(소수자) 정체성을 오히려 제 강점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며 "회의나 발표 자리에서 제가 유일한 아시안 여성일 때가 많으니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강한 인상을 남겨 나중에 저를 호의적으로 대해주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2030 여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요? 우리 각자 맡은 자리에서 꾸준히 나아가고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 봅시다. 우리가 공간을 차지하고 목소리를 내는 연습을 해 본다면 세상이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요."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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