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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 "책만 봐도 가슴 뛰어…'작고 귀엽게'는 아이들 대상화"

송고시간2022-04-0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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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그림책 작가 이수지(48)에겐 폭풍처럼 지나간 열흘이었다.

지난달 21일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그는 "실감 안 나는 놀라운 시간"이라고 돌아봤다.

최근 서울 광진구 작업실에서 만난 이수지 작가는 "축하해 주러 온 친구가 돌아가려고 택시를 불렀는데, 기사 분이 차를 멈추고서 저를 보시더니 '축하드려요. 방금 뉴스에서 봤어요'라고 하시더라"고 웃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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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차트 1위 찍고 10일간 2만5천부 판매…안데르센상 수상 효과

이미지 서사 따라가다 반전·위트 묘미…"한국 그림책은 '날것의 아름다움'"

'안데르센상' 수상한 이수지 작가
'안데르센상' 수상한 이수지 작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그림책 '여름이 온다'의 이수지 작가가 서울 광진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작가는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2022.4.1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그림책 작가 이수지(48)에겐 폭풍처럼 지나간 열흘이었다. 지난달 21일 '아동문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은 그는 "실감 안 나는 놀라운 시간"이라고 돌아봤다.

안데르센상 효과는 대단했다. 최근작 '여름이 온다'는 온라인 서점 예스24와 알라딘의 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찍으며 품절 사태도 빚어졌다. 이전 대표작도 같이 잘 나갔다. 그의 책 11권을 출간한 비룡소 관계자는 "'여름이 온다'는 재고가 소진돼 두 번 추가 제작을 했는데도 수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지난 10일간 2만5천 부 이상 판매됐다"고 했다.

'여름이 온다' 이수지 작가, 안데르센상 수상
'여름이 온다' 이수지 작가, 안데르센상 수상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여름이 온다'가 진열돼 있다. 그림책 '여름이 온다'의 이 작가는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2022.3.22 jieunlee@yna.co.kr

그림책 역사가 짧은 우리 시장에 들려온 낭보에 축하 세례도 이어졌다.

최근 서울 광진구 작업실에서 만난 이수지 작가는 "축하해 주러 온 친구가 돌아가려고 택시를 불렀는데, 기사 분이 차를 멈추고서 저를 보시더니 '축하드려요. 방금 뉴스에서 봤어요'라고 하시더라"고 웃음지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축전을 보내 세계적인 성과를 축하했다. 이 작가는 자신의 책 2권과 함께 "항상 굳건하세요"란 메시지로 화답했다. "그림책을 관심 있게 봐주시고, 축전 내용도 책을 보고서 쓰신 것 같아 감사했죠."

작은 거실과 방이 있는 작업실엔 그의 대표작 원화와 제작 과정 단계의 '더미 북' 등이 혼재돼 있었다. 인상적인 건 방 안 벽면을 두른 책장이었다.

이 작가는 "책이란 매체를 정말 좋아해 생긴 모양만 봐도 가슴이 뛴다"며 "보통 사람들이 '난 책을 좋아해'라고 하면 '읽기'를 의미하지만, 난 책이란 물건이 좋다. 책방의 그림책·예술서적 코너에선 늘 흥분의 도가니"라고 웃었다.

그림책 '여름이 온다' 이수지 작가
그림책 '여름이 온다' 이수지 작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그림책 '여름이 온다'의 이수지 작가가 서울 광진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작가는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한국 작가로는 첫 수상했다. 2022.4.1 mjkang@yna.co.kr

◇ 세밀한 구성에 실마리 촘촘히 배치…"이미지 서사는 적극적인 독자 필요"

그의 책들은 '글이 없는 그림책'에 가깝다. "이미지 서사에서 글이 한 줄 들어가면 묘한 긴장감이나 궁금증이 다음 페이지에서 해소되는 과정에서 맥이 빠질 것 같거든요. 사실 이미지 서사는 독자를 힘들게 해요. 그래서 적극적인 독자를 필요로 하죠."

그렇다 보니 그는 세밀한 구성과 흥미진진한 아이디어에 엄청난 품을 들인다. 시각적인 복선과 실마리를 촘촘하게 배치하는 정성은 거의 집착에 가깝다. 그의 책은 단서를 통해 퍼즐을 맞춰가는 놀이 같다. 처음 볼 땐 놓치기 쉬운 위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그는 "전하고 싶은 걸 담는 데 최선을 다한다"며 "어린이에게 주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발상부터 남다르다.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간된 '거울 속으로'와 '그림자놀이', '파도야 놀자', 일명 '경계 3부작'이 대표적. 책을 펼쳤을 때 한가운데 제본선을 현실과 환상 세계를 넘나드는 경계로 활용한 점은 잘 알려졌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자놀이' 속 한 장면
이수지 작가의 '그림자놀이' 속 한 장면

[비룡소 제공]

완벽하게 콘티를 짜고 작업한 '그림자놀이'는 제본선을 가로로 둘 때 위쪽 면을 아이의 세계, 아래쪽 면을 그림자 세계로 설정했다. 아이의 현실 세계 물건들은 처음엔 그림자로 존재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림자 주변이 점점 노란빛을 띠며 아이의 상상대로 자전거의 두 바퀴는 해와 달, 호스는 뱀 등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현실 세계 물건들이 비워지고, 아이가 창조해낸 상상 영역이 가득 채워진다.

그는 "그림책을 쫙 펼쳤을 때 압도하는 느낌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매번 그림 가운데를 드르륵 바느질로 박아버려 싫었다"며 "거슬리는 제본선에서부터 출발해보자 생각했다. 기존 관습을 따라가지만 다시 생각해보고 이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 속 한 장면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 속 한 장면

[비룡소 제공]

매번 꽉 짜인 서사를 두고 창작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들으며 떠오르는 이미지를 붓으로 글 쓰듯이 그렸다. 그는 "제가 저를 기대하는 느낌으로 그림을 그린 뒤, 쫙 늘어놓고 순서를 배치하면서 보충해 그려나갔다"며 "아이가 어떤 경로로 가게 해주자는 큰 틀만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총 3악장으로 구성된 148페이지의 묵직한 책이 됐다.

이들 책의 아이디어는 그가 이탈리아에서 2002년 출간한 데뷔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왔다. 소녀와 토끼가 등장하는 연극 무대 같지만 반전의 묘미가 있는 책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 사진과 그림을 혼용한 환상과 현실의 장치 등이 실험적이다. "석사 과정 졸업 작품으로 반쯤 만들었을 때 볼로냐 도서전에 놀러 갔는데, 덜컥 출간 계약을 맺었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겠구나' 싶었고 지금껏 그렇게 하고 있네요."

이수지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표지
이수지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표지

◇ "책 형태·색감·재료 모든 요소가 작가 의도"…석판화도 1년 배워

이 작가는 책의 형태나 색감, 수채화·크레용·아크릴 등 재료까지 서사의 일부로 본다. 그는 "그림책의 모든 요소에 작가의 의도가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루시드폴의 동명곡을 시각화한 '물이 되는 꿈'은 지그재그로 접힌 책이 아코디언처럼 펼쳐진다. '이 작은 책을 펼쳐봐'에선 무당벌레, 개구리 등이 가진 책을 펼칠 때마다 새로운 책의 커버가 나타나 넘기는 '손맛'이 있다.

바닷가에 놀러 간 소녀가 파도와 노는 모습을 담은 '파도야 놀자'는 파란 색감이 지배하고, 부모의 싸움에 슬픈 아이를 그린 '검은 새'는 석판화를 이용해 온통 검게 채워졌다.

"미국의 한 인쇄 박물관에서 오래된 석판화 프레스기가 전시된 걸 발견했죠. 박물관이 허락해줘 1년을 배웠어요. 초보여서 다른 색깔을 쓰지 않고 먹으로만 작업했는데, 그것 자체로 힘이 있었죠.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슬픈 마음이 표현될 것 같았고, 환상 영역의 화려함을 걷어내니 또 다른 환상이 느껴졌어요."

'파도야 놀자'와 '검은 새' 표지
'파도야 놀자'와 '검은 새' 표지

귀엽고 단순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여느 일러스트레이션과 다른 그림체에서도 그의 생각이 읽힌다. 명쾌한 스케치로 역동적이고 익살스럽게 입체감을 살린다.

그는 "'아이들이 좋아할 거야' 하는 편견 없이 그린다"며 "뭔가를 작고 귀엽게 만드는 건 그걸 대상화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통제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어른들의 불순한 의도처럼 보여서 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여자아이는 호기심이 많고 움직임이 주체적이다. "자기 마음이 향하는 대로 몸이 따라가는 데 주저함이 없는 씩씩한 여자아이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도 어린 시절 그랬던 것 같고요."

'아동문학 노벨상' 안데르센상 영예 이수지 작가
'아동문학 노벨상' 안데르센상 영예 이수지 작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그림책 '여름이 온다'의 이수지 작가가 서울 광진구 자신의 작업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작가는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한국 작가로는 첫 수상했다. 2022.4.1 mjkang@yna.co.kr

어릴 때부터 스스로 품은 꿈도 화가였다.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그는 영국 캠버웰예술대에서 북아트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림책 '나의 명원 화실'이 자전적인 얘기다.

그는 "대학 시절 책으로 만든 예술 작업이 책방에 깔리는 상상만 해도 좋았다"며 "의도를 갖고 예술 작품으로 책을 만드는 '아티스트 북'이란 장르를 알게 됐고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무궁무진한 그림책과 잘 맞아떨어졌다. 아티스트 북은 개념 미술에서 비롯돼 아이디어 자체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올해만 2개의 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 많은 수상을 하며 지난 20년의 작업을 인정받았다.

근래 우리 그림책 작가들의 세계적인 선전에 대해선 "한국 작가들이 (해외 그림책상을) 수상하며 관심과 기대심리가 생긴 지는 좀 됐다"고 했다. "서구나 일본 등 그림책 선진국은 나쁘게 말하면 매너리즘, 좋게 말하면 완숙기에 접어든 듯해요. 반면 역사가 짧은 우리 그림책은 온갖 실험을 하면서도 보조를 맞추고 좀 더 거침이 없죠.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아름다움'이랄까요."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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