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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변침 힘든 항모…전력대란 닮은 상하이발 공급망 대란

송고시간2022-04-2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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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역·경제 두마리 토끼 요구해도 현장은 방역 '올인'

중앙, 공급망·물류 정상화 추진에도 '제로 코로나' 장벽 높아

20일 넘게 봉쇄 중인 상하이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
20일 넘게 봉쇄 중인 상하이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

[촬영 차대운]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지난달 28일 시작된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 봉쇄가 20일로 벌써 24일째다.

상하이 봉쇄는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창장삼각주 광역경제권의 공급망과 물류의 심각한 마비를 초래해 중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차원을 넘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 소비자와 기업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애플 맥북의 '고향'은 상하이다. 대만 기업인 광다컴퓨터(Quanta)가 상하이 공장에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만든 맥북이 세계로 팔린다. 광다컴퓨터 공장이 봉쇄로 가동을 멈춘 바람에 소비자들이 맥북을 사려면 두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한국GM 부평 공장도 최근 중국산 부품 수급 차질 문제로 2교대 근무를 1교대 근무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의 일로만 알았던 상하이 봉쇄로 인한 중국발 공급망 대란이 언제쯤 완화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작금의 상황에 비춰볼 때 아직 긍정적 기대를 하기에는 일러 보인다.

중국이 직면한 팬데믹 상황이 심각하다. 3월 시작된 코로나19 확산 규모는 이미 2020년 우한 사태 때를 훨씬 넘어섰다. 가장 상황이 나쁜 상하이 외에도 중국 전역서 코로나19가 동시다발적으로 퍼져 전면 또는 부분 봉쇄되는 지역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문제는 중국이 세계 대부분 국가와는 달리 단 한 명의 지역사회 감염자도 용납하지 않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단 감염자가 새로 발견된 도시는 그대로 멈춰서고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고립된다.

시장에서는 전면 또는 부분 봉쇄가 진행 중인 도시가 40개 이상에 달해 관련 인구 및 GDP 비중이 각 25%, 50%에 달한다는 추산도 있다.

상하이 테슬라 공장 등 봉쇄 지역의 많은 공장이 멈춰서고 곳곳에서 물자가 오가는 길이 막혀 공급망과 물류 대란이 발생했다.

자국 경제가 질식할 위기에 처하자 중국 지도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고강도 방역 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부분적으로나마 공급망과 물류를 정상화해 경제에 숨통을 틔워주는 방안을 우선 추진하고 나섰다.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보자는 취지다. 시진핑 주석도 지난 13일 "방역 작업을 느슨하게 할 수 없다"면서도 "코로나19가 경제·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앙이 내놓은 구체적 해법은 자동차, 반도체 등 중점 분야 기업 666개를 지정해 봉쇄 지역에 있더라도 해당 기업이 '폐쇄 루프'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각종 행정 지원을 집중적으로 해 주겠다는 것이다.

또 중국 곳곳에 지뢰밭처럼 산재한 봉쇄 지역을 막힘 없이 다닐 수 있는 '전국 통용 통행증'을 발급해 물류에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면서 각 지방이 자의적으로 이런 통행증을 갖춘 차량을 막아 세우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막상 정책을 집행하는 최전선 각 지방정부의 처지에서는 방역과 경제라는 상충하는 경제 목표를 동시에 잘 수행하라는 중앙의 요구는 현실과 거리가 멀다.

상하이, 선전, 창춘 등 코로나19 방어벽이 무너진 곳에서 어김없이 관리들이 무더기로 즉각 문책당하는 현실에서 중국 관료들은 자리보전하기 위해서라도 제로 코로나 유지를 핵심으로 한 방역 정책에 올인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국 단위 통행증'보다 더한 것을 내놓아도 막상 현장에서 먹히기가 어렵다.

최근 상하이와 쑤저우 경계에는 수십 미터 높이의 감시용 망루가 설치됐다. '오염 지역'인 상하이에서 넘어오는 사람을 철저히 감시하기 위해 인접한 쑤저우 당국이 설치한 시설이다. 중국 곳곳의 지방정부들은 자기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관내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곳곳에서 막아놓고 있다.

중점 기업으로 지정된 기업도 재가동하려면 수많은 현실의 장벽에 부딪힌다. 당장 직원들을 각 주거단지에서 데려오기가 녹록지 않다. 시 아래의 구(區)·진(鎭)·가도(街道)·주민위 등 층층에 걸쳐 해당 관리들을 일일이 설득하고 예외를 인정받아야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이 늘 순조롭지도 않다.

또한 자동차, 전자 등 산업 공급망은 매우 복잡하고 길다.

테슬라 상하이 공장
테슬라 상하이 공장

[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공급망의 최정점에 있는 완성차 업체 하나를 열어준다고 자동차가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타이어, 차량용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시트, 전선 뭉치, 페인트, 볼트에 이르는 수백개 이상의 협력 업체들이 원활하게 가동되고 또 물류 체계가 완벽하게 작동해야 자동차 생산 라인이 멈추지 않고 돌아갈 수 있다.

이번 조치로 혜택을 받는 현지 업계 사이에서는 아예 가동을 못 하게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봉쇄가 제대로 풀리지 않고서는 정상화가 제대로 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반응이 적지 않다.

19일부터 8천명의 근로자를 불러 모은 테슬라도 부품 조달이 큰 문제다. 테슬라가 현재 가진 부품은 1∼2주치 정도인데 공급망과 물류가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다시 가동이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태다.

작년 가을 중국은 심각한 전력 대란 사태에 부딪힌 적이 있다. 시진핑 주석이 야심차게 제시한 탄소 배출 저감이 중국의 최우선 경제 목표가 되면서 중앙이 하달한 탄소 배출 저감 목표를 무리하게 맞추기 위해 각 지방정부가 기업에 전력 공급을 끊어버리는 극단적 조처를 한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전력 부족 사태가 벌어져 전국적으로 아우성이 나자 중앙이 민생 보장을 강조했지만 전력 대란 사태는 한참 계속됐다. 중앙이 최우선으로 하는 탄소 배출 저감 목표를 맞추지 못하면 당장 문책을 당하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지방정부들이 일종의 사보타주에 나선 것이다.

결국 리커창 총리 등 수뇌부가 나서 탄소배출 저감 목표를 사실상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는 확실한 '약속'을 하고서야 전력 대란 사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소됐다.

전력 대란 사태는 중국이 최우선으로 정한 목표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지경에 이르러도 관료주의가 심한 중국의 체제 특성상 방향 전환이 쉽지 않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코로나발 공급망 문제도 기본적으로 전력 대란과 유사한 구조에서 발생했다. 방역과 경제를 모두 잘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제로 코로나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중국의 관료들은 우선 방역을 지상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전력 대란 사태나 코로나발 공급망 대란 사태는 본질적으로 한 번 방향을 정하면 좀처럼 흔들리지 않지만 상황 변화에 따른 유연한 변침이 어려운 항공모함과 같은 중국 체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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