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순, 한국케인스주의 효시…말년까지 원서 탐독한 '진짜 학자'(종합)
송고시간2022-06-23 18:30
정운찬·김중수 등 수많은 인재 양성…'조순 학파'로 불리기도
이창용 한은 총재 "한국경제에 큰 족적, 어려운 상황에 고인 지혜 새겨"
추경호 "경제계 큰 산…바른 정책 고민하던 모습 선명해"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미국에서 직접 배우고 한국에 전파한 최초의 학자"(주상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케인스 학파로서 거시경제학 프레임을 한국에 처음 들여오신 분"(서영경 금융통화위원)
23일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별세 소식을 접한 두 제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스승의 학문적 업적을 이렇게 소개했다.
1949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조 전 부총리는 196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보오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1968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맡아 강의했는데, 그의 학문적 기조는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을 지지하는 케인스주의에 바탕을 뒀다.
1987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주상영 위원은 "당시 조 교수님은 화폐금융론 등을 강의하셨고, 직접 케인스의 '일반 이론'을 번역하시는 등 사실상 한국에 케인스주의를 처음 전파하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교내외 세미나 등 경제학 모임도 많이 마련해 열정적으로 이끄셨다"고 덧붙였다.
1986년까지 같은 학과에서 수학한 서영경 위원은 "조 교수님은 경제학뿐 아니라 철학, 역사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정통하셨던 분"이라며 "특히 끊임없이 독서를 하셨는데, 고령이신데도 불과 몇 년 전까지 토마 피케티(자본주의 불평등 문제를 지적한 프랑스 경제학자)의 원서를 직접 다 읽으셨다는 얘기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두 금통위원 외에도 조 전 부총리는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는데, 대학 경제학 강의 '바이블'격인 '경제학원론'을 함께 쓴 정운찬 전 총리, 김중수 전 한은 총재, 김승진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이근식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박정희학술원장 등이 있다.
이들을 흔히 '조순 학파'라고도 하는데, 단순히 조 전 부총리를 존경하는 인사들일 뿐 경제학 사조나 사상적으로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조 전 부총리 자신도 특정 학파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따르던 학생이 많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1984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창용 한은 총재도 조 전 부총리의 제자 중 한 명이다.
이날 오전 국제결제은행(BIS) 연차총회 출장을 앞둔 이 총재는 "공항으로 가다가 별세하셨다는 비보를 접했다"며 "경제학자로서는 물론이고, 한은 총재와 경제부총리를 역임하시면서 한국경제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며 개인적으로는 제게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라고 아쉬운 심정을 내비쳤다.
그는 "지금 한국경제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고인이 주신 여러 지혜를 다시 새겨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조 전 부총리를 "한국 경제계·학계의 큰 산"이라며 추모했다.
추 부총리는 조 전 부총리 별세 소식에 "대한민국 경제가 갈림길에 있을 때마다 기본에 충실하며 바르게 갈 수 있는 정책을 늘 고민하셨던 고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1989년 7월부터 1990년 3월까지 8개월가량 조순 당시 부총리를 비서관으로 수행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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