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근대사에 관심…산청 동학농민군 학살지 발굴해 달라"
송고시간2022-07-05 13:40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군청서 기자회견…"180여 명 학살"
(산청=연합뉴스) 지성호 기자 = 경남 산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5일 산청군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남지역 동학농민혁명 발상지 내 동학농민군 학살지를 발굴해 달라"고 요구했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1894년 4월(음력) 초순께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에서 백낙도 대접주(大接主. 동학농민혁명의 대단위 조직인 포의 책임자)를 중심으로 500여 명의 동학농민들이 봉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낙도 대접주는 보름여 만에 체포돼 참형을 당했고 이후 동학농민군은 의령, 사천, 고성, 남해, 함안, 진주 등 경남 서부지역으로 확산했다.
기념사업회는 이날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동학농민군 180여 명이 하동에서 지리산 쪽으로 모여들었다가 일본군 등에 학살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주민들이 이들의 시신을 한 곳에 가매장했다고 덧붙였다.
기념사업회는 "우리 주변에 묻혀 있는 근대사의 아픈 부분에 대해 행정기관, 군민 등에서 깊은 관심을 두길 바라는 마음에서 2015년 '동학농민혁명 영남지역 발상기념비'를 세운 산청군과 천도교에 동학농민군 학살지에 대한 발굴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천도교 등에서 요청을 받아들이면 발굴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절차에 따라 발굴 등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동학농민혁명 영남지역 발상기념비 건립은 천도교 진주시교구가 2014년 연 '산청 동학농민혁명 학술강연회'에서 시천면 내대리가 영남지역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임을 확인한 것이 계기가 됐다.
기념비는 산청군 예산 3천500여만원으로 세워졌다.
주탑은 천지인(天地人) 3단으로 하늘과 땅, 사람이 우주와 일체임을 형상화했다.
좌우 보조 탑의 '척양척왜'와 '보국안민'은 당시 농민혁명군의 슬로건이다.
높이는 1천894㎜로 1894년 봉기한 것을 상징했다.
shch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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